휴대전화기를 손에 들고 있다. ‘집 전화번호가 뭐였지?’ 이런 적 없으셨나? 또는 ‘내가 지금 어디에 전화를 하려고 했지?’ 이런 적은 또 없으셨나? 때론 나누기, 곱하기는 고사하고 덧셈, 뺄셈 방법도 까먹어 황당한 적은 없으셨나?

비밀 번호 외우는 것도 고역이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비밀번호와 ID를 기억하지 못해 주민등록번호 입력하고, 이메일로 비밀번호 답변 받는 분들이 많다. 그렇다면 휴대전화, 노트북, 내비게이션 같은 최신형 디지털기기에 의존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른바 디지털 만능 시대가 현대인의 기억력과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역기능을 낳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관련한 통계도 있다. 한 취업 포털 사이트가 지난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런 증상을 경험한 직장인이 10명 중 6명 이상 즉 63.5%에 이르렀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것 말고도 △가사 없이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별로 없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것보다 내비게이션을 더 신뢰한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 키보드 입력이 더 편하다면 디지털 치매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게 노인성 치매와는 다른 종류인가? 아니면 노인성 치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가? 엄밀히 이야기해 치매는 뇌 기능의 이상을 뜻하는 거지? 뇌 손상에 의해 단기 기억 세포가 아예 죽어버린 경우를 말한다. 디지털 치매는 그런 의미에서 치매가 아니다. 기억 인출 기능이 활동을 안 하고 잠자고 죽어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만 정신과 전문의들은 “뇌는 사용하면 발달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원칙이 있다”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요즘 검색 기술이 너무 좋아져서 그런 면도 있다. 좀 더 의학적인 용어 좀 써가며 풀이 해보겠다. 뇌가 알고 행동하는 인지기능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본다는 것이다. 뇌가 할 일이 참 없어진다. 실제 이름을 검색해 통화버튼을 누르는 일처럼 단순한 정보를 처리할 때는 대뇌의 피질에서 손가락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운동영역과 시각영역을 담당하는 영역만 쓴다. 기억저장소인 해마와 전두엽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치료 원리는 역시 머리 굴리는 일을 많이 해야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를 많이 사용할수록 검색의 편리성은 커지지만 기억의 중요성은 낮아지기 때문에 흔히 체력 단련을 위해 에어로빅을 하듯 두뇌를 훈련하는 ‘뉴로빅스’(Neurobics)를 실천하라는 얘기다.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는 쓰면 쓸수록 뇌세포가 증가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이렇다. 가족이나 친구 같은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번호나 좋아하는 노래 몇 곡 정도는 외우는 게 좋다. 또 신문이나 잡지를 매일 한 두 시간 꼼꼼히 읽는 것도 유익하다. 생각하면서 읽는 기사는 기억력과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 한 연예인은 오프라인 신문 잡지를 구독해, 중요한 수치는 외우고 다닌다고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뇌의 건강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항상 필기구를 들고 다니며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울러 그 날 겪은 일들을 다시 꺼낸 다음 자신의 감정을 싣는 작업인 일기도 좋다.

디지털 치매 말고 ‘리셋증후군’이라는 증상도 대두되고 있는 모양이다. 컴퓨터가 느리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리셋 버튼만 누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도 ‘리셋’이 가능할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이다. 무슨 관계가 꼬이고 그 판을 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 이게 바로 리셋이다. 일부 젊은이들이 온라인 게임속 공간처럼 친구를 살해하거나 대규모 총격을 벌이는 일, 미국에서 흔하지? 게임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디지털 증상 중에는 정신 뿐 아니라 육체적인 고통도 있지? ‘근막통 증후군’ 같은 육체적인 트러블 역시 ‘중독’과 같은 정신적 트러블 못지않게 흔한 현상이 됐다. 장시간 PC사용자라면 흔히 겪는 통증증후군이라 할 수 있는데, 흔히 뒷골 쪽으로 뻗치는 통증. 목을 돌릴 수 없는 증상. 어깨를 짓누르는 듯 한 통증. 손에 힘을 줄 수가 없는 증상 이런 것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외에 휴대폰 문자메시지에 빠져 지내는 엄지족들이 흔히 겪는 ‘손가락 통증’과 ‘건초염’.‘손목증후군’같은 것도 디지털족이 자주 겪는 대표적인 건강트러블의 사례들이다.

디지털 문명의 또 다른 함정이 바로 중독성인 것 같다. 따라서 이걸 극복하려면 인터넷 하는 시간을 조금 줄여가며, 생각하는 시간을 크게 늘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