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맨 프로젝트’라는 알 듯 말 듯 한 제목의 사회고발성 사기극이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유럽에서 주로 벌어지는 실제 사기극이다. 이 사기극의 전 과정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오늘부터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사실 사기는 범죄이다. 그래서 사회고발의 대상이다. 그런데 예스맨 프로젝트는 상식을 위배한다. 사기를 벌여서 사회고발을 하는 것이다.

사례를 들어보겠다. 2004년 12월3일, 3억 명의 시청자를 둔 영국 BBC에 다국적 기업 다우케미컬의 대변인이 나온다. 마침 그 날은 인류 최악의 산업재해인 인도 보팔 참사가 발생한 지 20년 되는 날이었다. 대변인은 "참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배상과 환경 복원을 위해 12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배상 규모도 엄청났거니와 다국적기업이 해외 공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인정한 전례가 없었다.

다우 대변인의 이런 발표로 1만5000명 이상의 보팔 사망자 유가족과 수십만 명의 피해자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난리가 있다. "아무 이익도 없는 보상에 돈을 써버리는 바보 같은 기업"에게서 20억 달러 어치 투자 금을 회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주가는 폭락했다. 몇 시간 뒤, 다우 측은 BBC 보도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했다. 그렇다면 대변인 발표는 뭔가. 다우 측은 그런 대변인이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 대변인은 누구인가. 예스맨 프로젝트의 구성원들이었다. 이 사람들, 사기극이 발각되고 난 뒤, BBC와 다시 인터뷰를 가졌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보팔 사태에 어떤 책임도 질 수 없다고 우기는 다우야 말로 사기극을 벌인 겁니다. 그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마디로 말해 사기꾼들이다. 그러나 사리사욕을 위한 사기는 아니다. 게다가 선량한 기업을 상대로는 절대 사기를 치지 않는다. 인도적 사회적 책임이 분명히 있으면서도 회사의 영리를 위해 그 책임을 애써 망각 또한 묵살해버리는 기업들, 이 기업들을 망신 준다. 방법은 간단하다. 목표물이 정해지면 그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구분이 가지 않는 가짜 웹사이트를 만든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어수룩한 언론사나 관련 콘퍼런스 관계자가 이메일로 인터뷰나 강연을 요청해 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게임 끝이다.

이런 일이 또 있었다. 2006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 기억하시지? 주로 못사는 동네에 해일이 덮치는 바람에 피해가 컸는데. 1년 뒤,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재건 사업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그 재건은 잘 사는 사람을 위한 재건이었다. HUD라는 회사가 이 일을 맡았는데, 예스맨 프로젝트는 여지없이 이 회사의 가짜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았다. 얼마 후 예스맨 프로젝트 구성원들은 HUD 대변인을 사칭해 피해 지역의 시장이 보는 앞에서 연설할 기회를 얻었다.

재건사업에 나선 기업이 뭔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예스맨들에게 걸렸을까. 이 HUD라는 회사는 원주민을 싹 몰아내고 거기에 뉴타운을 지을 생각을 했다. 임대주택? 그런 집 값 떨어지는 것이라 생각조차 안 했다. 말하자면 건설사의 공적 책임을 망각한 것이지. 예스맨 프로젝트에서 파견된 가짜 HUD 대변인, 개발업자들 앞에서 이렇게 입을 뗐다. “HUD에서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지난주만 해도 임대주택이 범죄와 실업의 온상이라 생각했지만 우리는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숙자로 전락한 주민도 있습니다. 이런 실수가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오늘부터 저소득 임대주택 사업을 재개합니다. 오늘 열리는 임대주택 테이프 커팅식에도 꼭 참석해주십시오”라고. 건설업자들은 놀랐다. ‘HUD가 약 먹었나? 돈 안 되는 사업에 손을 대다니’이러며 술렁였다.

그런 대로 횡포 부리는 기업이나 단체에 대해 골탕 먹이는 것은 그렇다 쳐도, 앞서 인도 보팔 주민도 그렇고, 임대주택 주민들도 실망이 컸을 것 같다. 물론 처음에 주민들은 춤을 추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도 예스맨 프로젝트를 비난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주민이 말한 내용이다. “이런 거짓말이 아니면 우리가 잃은 것을 눈여겨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라고 말이다. 그 주민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우리 같으면 당한 기업들이 영업방해, 명예훼손으로 걸 겠지? 예스맨 프로젝트의 주인공 한 사람이 얼마 전 우리나라에 왔다. 제가 그제 저녁에 이 분을 인터뷰했다. 이런 얘기를 하더군. “한 번도 고소가 들어온 일이 없다. 왜냐. 고소를 하면 고소를 한 쪽만 웃음거리가 되고, 괜히 안 먹어도 될 욕을 더 먹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소송을 걸 건 말 건 신경 안 쓴다는 얘기이다. 명의 도용을 한 것인데, 위법성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상업적 이익을 위해 명의를 도용한다면 모를까, 비판할 목적으로 도용하는 것은 사법적으로 책임을 피할 길이 있다. 그러나 그 책임 피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고소해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슈화되길 바란다”라고 했다. 그래서 이 분들은 스스로를 명의 보정가라고 부른다.

명의 보정은 무슨 뜻일까. 명의 보정이란 우리 모두를 대표한답시고 이런저런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개인이나 단체의 정체를 밝혀주는 일이다. 이런 말도 했다. “악법도 법이니 따르라고? 웃기는 소리이다. 바로 그런 생각이 나치즘의 성공을 만들어낸 거다. 유대인을 다 모아서 학살해버리라는 게 법이라면, 그따위 법을 어기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따라서 착취와 파괴적 체제를 강제하기 위한 법은 따를 필요가 없다”라고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불온한 무법자 같지만, 이런 무법자들의 행각이 당사자 혼자만의 돌출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글쎄, 나만 느끼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