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저주’라는 말,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펠레. 현역 시절 서너 명의 수비수를 손쉽게 따돌리는 화려한 드리블로 전 세계 축구계를 평정했던 인물이지. 올해 칠순인데.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어김없이 그 대회 우승팀을 예측해서 화제를 모았다. 용해서 화제였을까? 아니다. 그 반대이다. 펠레가 지목한 팀들이 월드컵에선 재미를 못 보고 있다는 것이다.

1974년부터 지난 2006년까지 펠레가 꼽은 우승 후보가 트로피를 품에 안은 것은 1982년과 지난 2006년 이탈리아뿐이었다. 그것도 3~4개 나라를 언급해 하나를 맞힌 것이다. 요행이었던 것이다. 그의 어긋난 전망이 이어지자 처음엔 설마 하던 팬들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펠레의 저주'를 입에 올리고 있다.

펠레가 본격적으로 월드컵 우승 후보를 꼽기 시작한 것은 1974년 월드컵 때부터다. 펠레는 그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 후보로 지목했지만 결과는 8강탈락이었다. 이어 1978년의 독일·페루, 1986년 프랑스·잉글랜드, 1990년 우루과이·이탈리아, 1994년 독일·콜롬비아, 1998년 브라질·스페인, 2002년 프랑스·아르헨티나 이런 팀들이 펠레로부터 지목당한 우승후보였다. 하지만 맥없이 중도 탈락해 버린 비운의 팀이었고.

게다가 혹평을 한 팀이 덕 보는 일도 있었다. 1994년 대회 때 펠레는 고국 브라질에 대해 '우승 자격이 없는 팀'이라고 혹평을 했다. 브라질은 그 대회에서 보란 듯이 통산 네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편 펠레의 저주에 우리나라도 유탄을 맞았다. 펠레는 2002 월드컵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을 앞두고 "한국이 결승에 올라 브라질과 맞붙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0대1로 패했다. 펠레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한국이 16강에 진출한다'는 덕담을 건넸지만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펠레가 며칠 전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할 팀을 예측했다. 지난 1월엔 스페인과 브라질을 우승 후보로 꼽았고, 며칠 전에는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우승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자 지금 거론한 이 나라들, 초상집 같은 분위기이다.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우승 후보로 지목한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현재 초비상이다.

잉글랜드의 경우, 최근 ‘정신적 지주’ 데이비드 베컴의 부상과 주장 존 테리의 성추문 그리고 뺑소니 교통사고로 매우 어수선한 상태라는 점. 아르헨티나 역시 선수들이 감독 마라도나와의 불화로 몸살이다. 리켈메 같은 실력 있는 스타들이 떠나면서 제 실력을 못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대회도 안 열렸는데 벌써부터 ‘펠레의 저주’는 맞아 들어가고 있다.

펠레가 일부러 약체를 알고 그 약체를 우승팀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전문가들은 “설마 그럴 리가” 이러고 있다. 그러면서 “과거의 성적에 집착해 현재 팀의 상태를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진단한다. 여하간 펠레는 자신의 예측이 계속 빗나가 ‘펠레의 저주’라는 말이 나오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하는 예측마다 빗나가 머쓱해지는 사람이 펠레만은 아닌 것 같다. 대한민국 땅에서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있다. 이분은 축구 전망이 아니라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마다 낙선돼 뒷말을 자아냈던 주인공이다. 1987년 김영삼 후보를 지지했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지? 1992년에 정주영 후보를 밀었는데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됐다. 1997년 이인제 후보를 지지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 2002년에는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 한 사람만 꾸준히 지지했어도 이런 얘기는 안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는 모처럼 뜻을 이뤘다.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많은 표차로 낙승한 경우이다. 그러나 낙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 분은 일찌감치 차기 유망주로 박근혜 전 대표를 꼽았다. 박근혜 전 대표 역시 큰 퍼센트 차이로 차기 대선 후보 인기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정말 차기 대권을 쥔다고 해도 ‘김동길 박사의 혜안은 정말 대단해’ 이런 평가받기는 쉽지 않을 거란 얘기다. 반대로 만약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떨어지면 그때는 ‘김동길의 저주’라는 말이 또 나올 가능성이 있다.

전망, 예측, 이게 참 어려운 것이다. 김 모 게임방송 해설위원의 별명은 ‘김캐리’이다. 캐리어를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지어준 별명인데. 어떻게 된 것이 이 분이 우승자로 지목하는 선수마다 부진을 겪었다고 한다. 또한 프로리그 결승전에서도 이 분이 예상 우승팀으로 지목한 팀 상당수가 준우승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런 정도가 아니다. 예를 들면 A, B선수가 경기를 치루는 중 A선수가 유리하다고 하면 몇 분후 바로 B선수가 유리했다가 B선수를 응원하면 다시 A선수가 유리해지고, 게다가 마지막에 응원할 경우 역전패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해설하는 사람들 중에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고수’들이 많은 것 같다. 누가 유리하다, 불리하다,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전력 평가를 통해 최종 판단은 독자나 시청자가 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앞질러가는 해설보다는 바짝 뒤쫓아 가는 해설을 하게 된다. 물론 너무 추종만 하면 안 된다. ‘A를 하면 B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식으로 해서 소극적이지만 지엽적인 전망도 한다. 시사평론하는 나에게 ‘다음 대선, 누가 될 것 같냐’고들 물어본다. 나는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다. 다만 알듯알듯하게 ‘예측 가능한 정치인, 국민을 존엄하게 여길 줄 아는 지도자’라고 말한다. 어떤가. 적중할 것 같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