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여담)
구경꾼신자가 되어 가는 원로목사

목회일선에서 은퇴한 목회자들이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주일날 어디에서 예배야 할까?’이다. 본 교회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대부분 은퇴 목회자들이 본 교회에 참석하기를 꺼려하고 있다.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인가, 원로목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은 대부분 총회에서도 큰 역할을 하던 분들이었다. 식사 중에 어느 분이 말하기를 은퇴 후 어느 주일날 잘 아는 후배가 목회하는 교회를 찾아 아침예배에 참석했더니 축도를 시키고 교통비를 주더란다. 그러나 받기는 받았지만 왜인지 찜찜한 기분이 들더라고 했다. 그러자 어느 분이 농담반 진담반 말하기를 “교통비를 주는 것은 다시는 나오지 마시오.”라는 사인이라고 했다. 모두는 한바탕 웃었지만 표정들은 씁쓸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처럼 자기가 인도하는 예배에 선배 목사가 참석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면, 수십 년 동안 목회하면서 많은 영향을 주었던 전임자 앞에서 후임자가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임자가 매주 본 교회 출석하는 것은 교회 발전을 위해서 덕이 안 된다는 것이 은퇴한 목회자들의 지론이다. 후임자가 전임자 때보다 교회를 발전시키려면 전임자의 업적보다 능가해야 한다. 그러므로 때로는 비정한 모습이지만, 전임자의 부족을 비판해야 할 때도 있고 목회사역을 전임자 중심에서 자기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신앙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고 가족 이상의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 전임자가 매주 본 교회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끝난 후에 교인들과 여전히 교제를 계속한다면 교회는 후임자 중심이 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전임자 때보다 교회가 더 발전하기가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생각 때문에 나는 일 년에 몇 번 외에는 본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도 그런 원칙은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은퇴 즈음에서 그런 원칙을 더욱 분명하게 된 것은 종암교회 김윤식 원로목사의 솔직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탓이라 할 수 있다. 김윤식 목사는 말하기를 “원로목사가 본 교회 출석하면 이래도 저래도 서운한 감정을 가지게 마련이다. 후임자가 설교할 때마다 은혜를 받은 교인들의 아멘 소리가 커지면 ‘내가 시무할 때는 아멘 소리가 적더니’라는 생각으로 섭섭해지게 된다. 또한 후임자가 부임하여 3-4년이 되어도 교인수가 자기가 넘겨준 수보다 증가한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어떻게 목회했길래 이 모양인가?’라는 생각으로 언짢은 생각을 품게된다.”고 했다.

물론, 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전임자가 하루아침에 정을 끊고 교회 제반일이나 자기들의 가정대소사를 멀리하는 것은 너무 매정하다는 생각을 품게될 것이 분명하다. 수십 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신앙과 인정으로 맺어온 교인들이 때로 자녀의 결혼 주례나 부모님의 장례 집례를 부탁할 때 허락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교회 발전을 위해서는 사감(私感)보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원칙을 우선하다 보면 매주 예배에 참석할 교회가 마땅치 않은 것이 문제이다. 잘 아는 후배 목회자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처음 은퇴하고 나서는 설교를 부탁한 교회가 없을 때에는, 한국교회의 목회 방향을 탐색한다는 명목으로 제법 큰 교회들이나 특징 있는 교회들을 찾아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그런 일도 너무 번거럽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큰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려면 여러 시간 오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주차 문제가 피곤하게 만든다. 그리고 몇 부 예배에 참석하여 자기 자랑 비슷한 담임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도 불편하지만 예배 후 교인들에 밀려나오면서 언제나 느끼는 것은 극장에 왔다 가는 기분이라는 점이다.

결국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여 이층 한 귀퉁이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차츰 익숙하게 되었다. 같은 교단 목회자이기 때문에 내 이름을 밝히면 그 교회 담임목사도 잘 알겠지만, 그냥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예배만 참석하고 뒷 출구 계단을 통해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처음에는 ‘주일날 이렇게 편하게 지내도 되는 것인가?’라는 죄의식 비슷한 생각에 시달렸다. 그러나 반복이 되다 보니 어둔 의식도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이런 생활이 굳어지면 내가 그렇게 비판했던 ‘구경꾼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과거 시무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백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 부교역자 없었던 40대 중반까지의 목회 사역은 눈 코 뜰 새 없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새벽예배, 밤9시기도회는 물론이고 주일날도 아침저녁으로 설교하고,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담당, 봄대심방 3개월. 가을대심방 3개월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해야 하고 성경공부반 강의, 각기관수련회 설교나 특강, 결혼, 장례, 돌, 회갑 등 교인들의 대경소사를 따라 활동하다 보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을 정도이다.

그런데다가 50대 들어서는 1991년부터 노회부회록 서기(2년)로 임명된 때부터 회록서기(2년), 서기(2년), 부노회장(1년), 노회장(1년) 등 8년과 노회 안에 있는 문제교회들(6교회) 수습위원과 노회지편집위원장 활동, 그리고 총회에서 총대활동(20년), 총회출판사 서기 이사(2년), 가정위원회 위원, 역사위원장 등, 1990년대는 외부활동으로 정신없던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바쁜 틈틈이 책을 8권을 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안식년도 없이 그런 바쁜 세월을 보내던 때에 비하면 지금의 시절은 너무나 놀고먹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보너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처럼 공기 맑은 곳에서, 예전의 사택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은 아파트에서 많은 취미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상의 황금기가 아니겠는가? 더욱 감사한 것은 한국과 한국교회, 세계선교를 위해 마음껏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인 ‘크리스천웹진 소리’라는 컴퓨터 공간을 허락하셔서 나름대로 보람 있는 사역을 하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노욕(老欲)을 절제하지 못함으로 후임자나 후배 목회자들이 하고 있는 교회와 노회, 총회 사역을 공연히 끼어들므로 그들의 사역에 방해꾼이 되는 대신에, 남은 세월 동안 남들이 쉽게할 수 없는 문서사역에 전념함으로 좀 더 큰 세계로 유영(遊泳)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홍익교회 원로목사,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