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포츠신문에 실린 기사이다. 네 남매를 둔 한 아버지의 '현명한' 상속 이야기인데 들어보라. 수도권 한 도시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힘들게 사업을 일궈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다. 이젠 부인과 해외여행도 다니며 가끔 찾아오는 자식과 손자·손녀를 보는 낙으로 살았다. 그런데 김씨는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됐다. 그것도 갑상선 암으로 몇개월밖에 못산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병실에서 곰곰이 생각하던 김씨는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

병원에 온 네 남매는 마지못해 온 표정이 역력했다. 며느리 사위는 아예 오지도 않았다. 김씨는 "내가 너희들을 키우고,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느라 7억 원 정도 빚을 좀 졌다"며 "너희들이 알다시피 내 건강이 안좋고 이제 능력도 없으니 너희들이 얼마씩 좀 갚아라"고 말했다. 그리고 종이를 한장씩 주며 "너희들이 아버지의 빚을 갚을 수 있는 만큼 금액을 적으라"고 말했다.

그래도 재산이 좀 있을 것으로 생각한 자식들은 유산을 물려주기커녕, 빚을 떠넘기려는 아버지의 태도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형편이 그리 좋지 않은 둘째아들이 5000만 원을 적었다. 그러자 큰아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2000만 원을 적고 셋째아들은 1500만 원, 딸이 1000만 원을 적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이 적은 액수의 5배를 유산으로 준다. 내가 죽으면 너희들이 유산으로 싸우고 형제간에 반목할까봐 전 재산을 정리해 공증까지 마쳤다. 이것으로 재산 상속은 끝이다."

바다 건너 사람 이야기를 해 본다.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투자회사의 이름, 많이 들어보셨을 거다. 얼마전 미국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 1위에 선정됐지? 주가가 1억2천만 원이 넘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주식인 삼성전자는 80만 원대이다. 이 회사보다도 오너의 이름이 더 유명하다. 워런 버핏 말이다. 버핏이 자신의 후계자로, 사진작가이자 환경운동가로 활동해온 아들 하워드 버핏을 전격적으로 지명했다.

오래 전부터 버핏이 자녀에겐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회사지분을 자선재단에 대부분 기부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사실 그래야만 회사가 꾸준히 표방해 온 가치경영 또 주주중시 전통이 힘 있게 이어질 수 있다고 봤고 말이다. 그런데 주주들은 뜻밖에도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버핏이 재산 물려주려는 얄팍한 뜻을 갖고 그런 거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시 행정부의 상속세 폐지 움직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버핏이 진정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예전에 ‘부자가 되는 길은 근면과 증여와 도둑, 세 가지밖에 없다’는 말이 있는데. 상속이 이제는 더 이상 ‘무조건 주는 또 무조건 받는 눈먼 돈’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힘들게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졸부들의 쉽게 번 떼돈, 자식이 감당할 수 없는 유산이 자식들을 망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가운데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2년 전 평생 모은 재산 270억 원을 선뜻 사회에 내놓은 80대 실향민 강태원씨는 “자식들 대학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아파트 한채 사주었으니 더 이상 물려주면 자식 미래를 망치는 짓”이라고 해 눈길을 모았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상속은 자식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망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엔 유산을 자녀가 아닌 사회에 기부하는 풍조도 자리잡히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최근 아름다운재단이 "'계획기부'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계획기부는 중산층 자산가를 대상으로 해서 현금, 부동산, 보험 같은 여러 형태의 자산을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사례를 들어본다. 한국의 중산층 은퇴자 김철수 씨가 현재 살고 있는 집과 향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생활비로 활용할 수 있는 현금자산이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기부를 통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집과 현금자산을 기부한다면 생활이 담보되지 않는다.

하지만 괜히 자녀들에게 법적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되지는 않을지, 자신의 기부 약속이 실제로 이행될지에 대한 고민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계획기부를 한다면, 일단 집과 현금자산은 기부된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 집에 산다. 세액공제를 여러 해에 걸쳐 나누어 받을 수도 있다. 기부한 재단으로부터 생활비를 위한 연금도 제공받을 수도 있다. 이게 계획기부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상속세가 여전히 정직하게 낸 사람이 되레 바보 취급당하는 ‘바보세’쯤으로 여기는 풍토이다. 상속세 납부 순위를 보면, 이런 모습은 여실이 드러난다. 역대 최고액 납부자는 누구일까. 이름만 대면 알면한 재벌가가 아니다. 1위는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 유족이 신고한 1355억 원이고, 2위는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 유족이 낸 1338억 원이다. 어떻게든 상속세를 내지 않고 재산을 대물림하려다 보니, 법 경계선을 넘는 무리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