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선거 참모였던 베라 베이커라는 여성과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보도, 어제 한 스포츠신문이 미국 신문을 인용해서 전했다. 규명된 진실은 아직 없다. 또한 오늘의 주제는 불륜 이게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대상은, 이 기사를 실은 미국 신문이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콤팩트판 주간지 ‘내셔널 인콰이어러’라는 점이다.

이 신문은 얼마 전 타이거 우즈의 불륜을 폭로해서 유명해졌다. 이뿐 아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던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의 스캔들을 폭로했다. 부하직원이 낳은 딸, 이 딸의 아버지가 자신이라고 밝히도록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궁지로 몰고 갔던 것이다. 에드워즈는 처음엔 부인했지만, 파장이 확산돼 가자 이실직고하면서 경선 출마 포기도 결행했던 것이다. 늘 이런 식의 가십 기사로 유명한 미국의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그래서, 올 초에 퓰리처상에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었다. 내용이 하나같이 불미스럽고 말초적인 것이긴 하지만 세기의 특종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늘 이런 진실 보도만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런 기사도 실렸다. △ “‘1947년 뉴멕시코주에 미확인 비행 물체가 추락했으며 이때 우주인의 시체가 수거됐다’는 내용의 기밀문서가 발견됐다.” △ “충격폭로, 우리 남편, 알고 봤더니 좀비였다.” 이런 시덥 잖은 뉴스도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내셔널 인콰이어러’ 말고도 미국에 ‘드러지 리포트’라고 또 다른 황색 언론이 있다. 기억할 것이다.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 말이다. 백악관의 인턴 직원이던 모니카 르윈스키가 빌 클린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내용의 보도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데. 이걸 단독 보도한 언론이 바로 ‘드러지 리포트’였던 것이다. 만약 진실과 거짓 모두가 다 특종이 된다면 이제 소개할 ‘드러지 리포트’의 기사도 특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클린턴, 힐러리를 강제 성추행하다”, “미국 한 초등학교 여성 교사가 남자 어린이인 제자를 일주일 동안 28차례 성폭행해” 이게 말이 되는 기사인가. 소위 특종이라고 하는 것들 중에 어쩌다 한 번 진실이 나왔다, 이런 얘기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클린턴 재임 기간 동안, 대통령 가문을 풍비박산 상태로 만든 ‘드러지 리포트’에다, 힐러리가 지난 대선 기간 때 자주 특종을 물어다줬다는 점이다. 경쟁후보인 오바마가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정책연설을 하려고 했다. 언론이 오바마를 주목할 상황이었다. 이때 힐러리는 ‘드러지 리포트’에다가 자신의 선거자금 모금 자료 일체를 건넸다. 이러다보니 오바마의 연설 뉴스는 힐러리의 자금 공개 소식에 묻히고 말았다. 영국 ‘가디언’지는 그때, “힐러리가 남편을 몰락시킨 매체에 구애를 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주류 언론들, 이런 황색언론 보도를 여과 없이 인용하다가 민망한 꼴을 많이 당했다. 콤팩트판 주간지 '위클리 월드뉴스'가 1998년 10월, 이런 내용의 보도를 냈다. “남편의 그칠 줄 모르는 불륜 보도에 지친 힐러리가 백악관 집무실에 갑자기 들이닥쳐 서류결재 중이던 클린턴의 얼굴을 휴대전화기로 때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닥에 주저앉은 클린턴의 왼쪽 눈가와 콧잔등에서 피가 흘렀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내용은 거짓이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나라에서 최정상급 신문이 그대로 받아썼다가 큰 망신을 사기도 했다.

이 '위클리 월드뉴스'가 그동안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인간보다 큰 파리 발견’, ‘경악! 악어인간 출현’, ‘다리가 네 개인 여자 등장’, ‘후세인 동성연애자로 판명, 에이즈로 위독’ 이런 기사들이었다. 문화면을 펼쳐보니 ‘사마귀가 피아노 독주회를 열다’ 이런 전무후무한 대특종을 실었다.

'위클리 월드뉴스‘가 10년 넘는 오늘까지 존재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엔 타이거 우즈의 불륜과 관련해 새로운 루머를 양산했다. “타이거우즈와 베티가 따로 만나 창고로 갔다. 거기서 불륜을 벌였다." 이런 기사였다. 그런데 타이거우즈가 만났다던 베티라는 여성은 아흔 살 가까운 할머니였다. ‘위클리 월드뉴스’ 편집국에는 이런 강령이 있다고 한다. '사실 보도를 신문의 수치로 생각하며 단 한 줄이라도 사실을 보도할 시 편집진 전원이 자폭할 각오가 돼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신문도 팔리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뉴스는 엄숙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인상이 있는데, 미국 사회는 완전히 딴 판이다. 19세기 미국에서는 신문이 유일한 정보 수단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문의 대다수 지면을 차지하는 건조하고 딱딱한 정치 기사 보다는 좀더 일반인에게 자극을 주고 흥미를 유발하는 주제를 원했다. 사실을 근거로 하면서 좀 더 자극적이고 흥미 중심의 기사들만으로 지면을 채운 신문들이 탄생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황색 경쟁에 몰입한 두 신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 신문들이 공교롭게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옐로우 키드(Yellow Kid)’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를 동시에 선택하게 되었다. 인기몰이를 위해 한치의 양보도 없었던 두 신문사는 결국 그 만화를 동시에 싣게 됐다. 그래서 이때부터 ‘황색 언론’, ‘옐로우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오랜 전통 속에 신문에 헛소리가 담겨도, 만우절에 장난 기사가 실려도 독자들은 너그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우리 언론은 어떨까. 백색 신문이 황색을 자임할 때가 많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는 일간지에서 음란소설이, 스포츠신문에서는 음란만화가 판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신문지에다 비닐을 감싸야 한다는 말도 나올 정도였다. 신문 시장이 갈수록 사양화돼간다는 말, 많지? 사실 눈요깃감을 구할 생각이라면 신문 대신 인터넷을 찾아보는 게 낫다. 따라서 신문은, 가볍고 신뢰성 떨어지는 정보가 판치는 인터넷과는 다르게, 무게 있고 균형감 있는 정론으로써 승부해야 옳다. 이게 한국적 가치이다. 신문이 진지한 태도를 유지한다고, 사회가 경색되거나 문화가 퇴보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