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부터 5월 11일까지 12일간 일생 처음으로 간병인 체험을 하고 느낀 바가 너무나 많다. 사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병원에서 장기 입원이나 큰 수술을 받지 않은 채 40년 목회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 때문에 나는 수도 없이 병원에 입원한 교우들을 심방하고 때로는 대수술을 앞둔 교우에게 특별안수하기 위해 새벽에 병원을 찾은 적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환자들이나 수술을 앞둔 식구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그러나 은퇴하고 나서 이제 노년의 문을 두드리는 과정인가, 입원하여 수술을 받는 아내 때문에 12일 동안 좁은 간병인 침대에서 웅크리고 자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아내가 폐에 종양을 발견한 것은 작년이었다. 그 동안 봄만 되면 서 너 달 동안 기침으로 고생했지만, 작년에는 이상하게 봄이 지나가도록 기침이 멈추지 않아 인근병원에서 CT와 MRI를 통해서 검진한 결과 우편 폐에 3cm 정도에 둥근 종양을 발견하게 되어 지역 의사의 소견서를 가지고 A병원으로 가서 더 최첨단 의료기구들을 통해서 검진하게 되었고 이번 기회에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수술을 하루 앞두고 아내는 가슴을 절개하고 수술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큰 탓인지 수술을 포기하고 약물로 치료하기로 했다. 특별히 그런 결정은 크리스천인 지역의사의 권고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 년 동안 매주 지역병원에서 주는 약을 투여해 보았지만 기침은 쉽게 치료되지 않았다. 그러한 몸으로 신학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일 년 동안 종양의 크기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가 금년 4월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복강경 수술로 유명하다는 J병원을 찾게된 것이 수술받게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원장님과는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이었는데 그 분의 특별한 배려로 주사침을 통한 경피적 세침흡인 검사를 할 수 있었다. 결과는 암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악성이 아닌, 예후가 좋은 양성이기 때문에 흉강경 수술이 가능하므로 흉부외과전문병원에 가서 폐 일부분을 절제하는 것이 좋다는 당부를 받았다. 그러므로 A병원에 입원하였고 수술하기 전에 일주일 동안 전이(轉移) 여부를 검사받기 위해 여러 번의 X-레이 촬영, CT와 PET(전신양전자 단층 촬영), 뇌 자기공명영상과 전신 뼈 스캔을 받아야 했다. 그 결과 전이된 부위가 없음으로 5월 7일 아침 8시 30분 수술을 받게 되었다. 너무나 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언제나 의사들은 검사나 수술하기 전에 여러 가지 위험요소들을 열거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은근히 가슴을 졸인 것은 사실이다. 수술하는 아침에 아내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하나님, 일생동안 주를 위해 헌신한 여종입니다. 이번 수술을 통해서 반드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만성 기침도 치유될 줄 믿습니다.” 의외로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나는 수술하는 3시간 동안 환자 대기실에서 불안할 때마다 틈틈이 기도를 하고는 했다. “근심하지 말라시니 근심하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감사하라고 명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짤막한 기도뿐이었다.

마침내 12시 30분에 스피커에서 아내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수술한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면서 조금 후이면 중환자실에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특별히 절개수술이 아니고 세 개의 구멍을 뚫고 하는 폐강경 수술을 함으로 회복이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환자실에서 만난 아내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 수술 부위에 있는 불순물을 빼기 위해 투입한 30cm의 관이 수술한 부위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고통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한 아내를 두고 중환자실을 나오면서 느꼈던 외로운 심정은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다시 오후 7시 30분 면회시간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옆에 있는 어느 환자의 딸이 옆 사람에게 울면서 말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다. 아내와 비슷한 연배의 그 환자는 폐의 물이 차서 수술할 수도 없어서 몇 달 살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 부부는 그런 불행은 면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역으로 감사한 생각이 드는 것은, 목회자로서 얼마나 모순된 감정인가? 다음날 아내는 중환자실에서 12층 2인실로, 그 다음날은 5인실로 옮기게 되었다. 수술 다음날도 너무나 고통스러워했으나 셋째 날 부터는 상당히 호전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의사나 간호사들이 ‘계속 기침하라. 가래를 뱉으라. 걸어 다니라.’고 강요하는 것이었다. 숨 쉬기도 벅찬데 기침하라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아내는 호소했다. 그 옆에서 수시로 간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배운 것은 ‘간병인의 제일 수칙은 환자의 모든 아픔의 신음, 불평, 신경질을 무조건 참으라’는 것이다. 특별히 간병인에 대해서 병원은 푸대접하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식사 때가 되어도 간병인의 음식은 나오지 않아 여기저기 다니면서 매끼를 사먹어야 한다. 잠자리도 나보다 큰 사람은 발을 뻗을 수 없을 정도의 간이침대에 베개나 담요도 주지 않는다.

수시로 물이나 음식물을 섭취한 양, 소변이나 가래 배출 정도를 기록하는 일에 소홀히 하면 잔소리를 듣기 일 수이다. 한 밤중에도 수시로 간호사들이 드나들며 여러 가지를 검사해 가기 때문에 여러 번 깰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우리가 거하던 5인실에는 밤새도록 무의식적으로 떠들거나 식구들 찾는 할머니와 식도암으로 수술 받은 환자의 기계가 수시로 울리는 신호음 때문에 예민하기 짝이 없는 나는 한번 깼다가 다시 잠들려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12일 중에 가장 힘들었던 밤은 8일 토요일 밤이었다.

9일 주일에는 본교회에서 어버이주일 설교를 2부, 3부예배에서 하게 되었고, 오후 3시에는 본교회 출신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원로목사 추대식과 임직식이 있는데 순서를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충분히 자야할 처지였다. 그러나 수술한 다음날이니 가장 중요한 날이 아닌가? 그렇다고 설교 못한다고 하면 본교회가 알고 얼마나 법석이 일어나겠는가? 할 수 없이 승용차에 양복을 싣고 와 주차장에 둔 다음 주일 아침에는 차에서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교회를 가야 했다. 간병일은 막내 제수씨에게 맡기고 말이다. 별 실수는 없었으나 돌아올 때는 너무나 피곤함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 사이 상당히 호전되어 있는 아내를 보는 순간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이런 시련은 일시적인 것이기에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몇 개월뿐이 못 산다는 췌장암에 걸린 부인, 수술조차 불가능 하다는 의사의 최종 진단을 받고 절망하는 환자나 가족들, 우리 병상 앞에 48일째 입원해 있으면서 치료비만도 수천만 원 들었지만 아직도 말이나 식사도 못한 채, 거치대에 주렁주렁 달린 링거로 버티고 있는 식도암 환자와 그 남편에 비하면 우리 는 2-3일이면 퇴원하지 않는가? 그리고 전국각지에서 모여 들어 응급실에서 한 달 이상 기다리다가 입원실에 겨우 들어온 수많은 환자들이 서관, 동관, 신관까지 8층부터 12층까지 만원이 되어 검사를 받는 중 사형 선고와 같은 언도를 받는 가정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본교회가 칠순을 맞아 해외여행 가라고 준 비용이 결국 치료비가 된 셈이지만, 해외여행에서 감히 체험할 수 없는 경험들을 배우고 깨닫고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 하에 이루어진 병원 여행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병원선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하게 되었고, 아내도 지금 신학교에서 공부하게 만드시는 이유가 졸업한 후에 이런 사역을 하라고 하신 뜻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병원에는 삶이냐 죽음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다만 그들을 전도의 대상으로보다 진정으로 사랑의 마음, 아픔의 마음으로 다가가 그들의 절망적인 호소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위로가 되고 전도의 바탕이 되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홍익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