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의 ‘왜 불러’라는 노래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통해 크게 히트했다. 주인공 병태와 영철이 미팅에 가려고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경찰이 쫓아온다. 장발이었던 병태와 영철은 줄행랑을 친다. 그러면서 이 노래가 깔린다.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 왜 불러” 이런 가사로 말이다.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고 줄행랑을 친 것이다.

이 노래는 나중에 금지곡이 됐다. 공식적인 이유는 ‘시의 부적절’ ‘사회 건전분위기 침해’ 이거였다고.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경찰관이 부르는데 도망가는 건 체제에 대한 부정이고 정부를 무시하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너무 얼토당토 않은가.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이 장면이 경찰의 지나친 권한 남용을 비판하려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말한다. 경찰은 이 영화 속 노래 뿐 아니라 이 노래에 담긴 의도까지 붙잡아 낸 것이다.

불심검문(不審檢問). 신원 확인은 물론 소지품 검사도 할 수 있는 내용의 불심검문 강화 법안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개정안은 일본식 표기인 ‘불심검문’이라는 용어를 ‘직무질문’으로 바꾸고, 무기·흉기뿐 아니라 위험한 물건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관이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법에 없는 신원 확인 조항도 들어갔다.

게다가 검문 대상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확인이 불가능할 때는 동의를 얻어 지문 채취까지 할 수 있다. 또 경찰복을 입었으면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경찰의 권한이 커지기만 하고 (불심검문 당하는 사람의) 거부권이 명시되지 않았다.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고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죄 지은 것도 없이 경찰만 보면 일단 긴장하게 된다. 다시 ‘바보들의 행진’ 시대로 돌아가보자. 그때는 뒷머리가 옷깃에 닿거나 옆머리가 귀에 닿으면 단속 대상이었다. 그걸 피하려고 머리를 파마로 말아 올리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준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였다. 고개를 뒤로 조금 젖히면 짧은 머리도 옷깃에 닿는 판이니 처분은 들쭉날쭉 하기 마련이었다.

다 큰 성인의 머리를 거리에서 바리캉으로 고속도로 내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현장처분이 가능했던 것이다. 미니스커트 단속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경찰관들은 가위나 바리캉 뿐 아니라 30cm 자도 가지고 다녔다.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재서 짧으면 처벌하는 것이다. 무릎부터 재서 맨살이 20cm가 넘으면 안 되었다. 치마길이의 마지노선을 법으로 정한 셈이었다. 그래서 경찰만 나타나면 치마를 자꾸 내리는 아가씨들도 생겼다.

불심검문, 이런 거 왜 했을까. 1960년대 미국에서는 전쟁 반대 운동이 확산되면서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 움직임이 히피 문화를 통해 번지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도 저항 문화의 상징이다시피 한 6.8혁명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4.19혁명의 여진은 남아있었다. 권력기반이 취약한 군부정권으로서는 청년 대학생들을 어떤 식으로든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대학가에서 수시로 불심검문을 벌였다. 젊은이들 서넛만 함께 지나가도 불심검문을 피하기 어려웠다.

장발, 미니스커트는 애교였다. 수시로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았다. 조금 수상하다 싶으면 손이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가방 속의 내용물이 길바닥에 나앉는 건 예사였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지도 선생님이 학생이 담배와 술을 소지했는지 살피는 건 정당하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된 대학생에게 소지품 검사는 굴욕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경찰은 불심검문을 통해 범죄예방 및 수배자 검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휴대용 조회기를 통한 월 조회 건수는 2005년 3월 626만건에서 2009년 5월 7797만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렇게 촘촘하게 조사하면 범죄 근절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 관계자는 “범죄예방도 좋지만 전체 인구가 5000만명인데 한 달에 7000만건을 조회하는 건 사실상 무차별 감시”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술에 취해 공공장소나 공공기관, 대중교통수단 등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제지, 격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현재는 경범죄처벌법을 적용, 범칙금을 물리거나 즉결심판에 넘기는 것 말고는 제재할 방법이 없다. 시대착오적인 공안국가로 가는 것인가, 선진화된 치안국가로 가는 것인가,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