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하(下)’자에 이길 ‘극(剋)’자에 위 ‘상(上)’자를 합친 말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이긴다’ 이런 뜻이다. 다시 이야기해 ‘하급자가 상급자의 말이나 지시에 복종하지 않거나 항명하는 것’을 말한다.

군 형법은 항명, 즉 하극상의 경우 평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 적전(敵前) 그러니까 전투 중일 때는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적전 중인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사령관이 대통령을 비방해 그 자리에서 옷 벗은 일이 발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을 전격 경질한 사건이었다. 매크리스털은 “오바마 대통령이 현안에 대한 준비가 부족해 실망을 느꼈다”라고 대놓고 비판한 것이다. 전투 중에는 웬만해서는 장수를 교체하지 않는다. 따라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을 한국전쟁 중에 해임한 이래 거의 60년 만에 일어난 것이라고 소개했다. <경향신문>은 공교롭게 해임 사유에도 비슷한 부분한 부분이 있다며 몇 가지를 들었다. 우선 맥아더가 만주폭격과 중국연안 봉쇄 같은 강경책을 주장한 것이 트루먼의 심기를 거슬러 경질됐다는 점이다. 매크리스털도 아프간 전략과 관련해 오바마를 화나게 만들었다는 것과 흡사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작심하고 대통령에 대해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문제의 발언은 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었는데. 당시 매크리스털은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때문에 항공기가 뜨고 내리지 못하니까 본의 아니게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발이 묶인 것이다. 그러자 이틀만 취재하기로 한 <롤링스톤>은 두 주 간 매크리스털을 만났고, 이것 때문에 이런저런 속내를 묻다가 쓸데없는 얘기까지 듣게 된 것이다.

사실 군인에게 있어서 상부에 대한 충성은 생명과도 같은 일이다. ‘하극상’의 역사도 짚어보자. 국군이 창설한 이래 최대의 하극상은 역시 ‘5·16 쿠데타’이다. 군인들이 국방의 임무를 거역하고, 총부리를 수도 서울로 돌리고는 권력을 찬탈한 사건이다. 말 그대로 ‘군사 반란’이다. 반만년 우리 민족 역사를 통틀어 최악의 하극상은 아마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이다. 최영장군을 타도하는 하극상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고려를 멸망시켜 조선을 건국한 사건이다. 군주 교체 정도가 아니라 나라를 망하게 한 반란이었으니 그 의미는 매우 크다. 물론 이른바 ‘거사’ 이후에 전개된 역사, 즉 박정희 정권 18년과 조선왕조 500년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지만 당시 상황에 대한 해석은 하극상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국군 창설 이래 최악의 '하극상'은 역시 5.16 군사 쿠데타라 하겠다. 이건 이론의 여지가 없는 군사 반란이었다.

끝까지 신의와 양심을 지킨 충성의 주인공도 찾아볼 수 있다. 고 김오랑 중령이 그렇다. 12.12 당시 반란세력이, 진압군을 지휘하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들이닥쳤을 때, 온 몸으로 맞서 싸우다가 M16 총탄에 복부와 허벅지 6곳을 맞아 그 자리서 숨진 인물이다. 당시 35세.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승리하는 게 정의였던 시절, 김오랑 중령의 가족도 비참했다.

막내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던 김오랑 중령의 어머니는 2년 뒤 세상을 떴고, 삼촌 큰형도 김오랑 중령의 죽음을 원통해하다 세상을 등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인은 남편의 죽음 앞에 충격을 받아 시력을 잃고 군인 아파트에서도 쫓겨났다. 오갈 데 없어진 신세가 되자 불교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는, 1991년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당시 신군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군인정신의 참 표상이다.

하지만 불복종을 통해서도 빛난 업적을 남긴 이들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4년 8월 9일. 독일의 디트리히 폰 콜티츠 중장은 파리 점령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말이 좋아 점령군이지, 이때는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 파리를 향해 진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히틀러는 “파리를 온전하게 넘겨주지 말라”고 주문했다. 쑥대밭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그런 주문을 들은 폰 콜티츠 준장, 어떻게 했을까. 17,000명의 휘하 장병과 함께 연합군에 항복했다. 폰 콜티츠는 훗날 회고록에서 “후세에 ‘파리를 파괴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한국의 폰 콜티츠가 있다. 이 사람 덕에 우리의 국보 팔만대장경은 온전했다. 김영환 장군이다. 이 사람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부터 합천 지역 폭격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거부했다. 전시에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다니 간이 보통 큰 게 아니었다. 김영환 장군은 당시 유엔군 사령관에게 해인사의 가치를 조목조목 설명했다고 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있으니 한국은 운 좋은 나라”라는 칭찬까지 받았단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태우는 건 하루면 족하지만 다시 세우려면 천 년도 부족하다”며 구례 화엄사를 소각령으로부터 지킨 차일혁 총경 이야기가 있다. 오대산 상원사를 태우려는 국군 장교에게 “그럼 나도 함께 태우라”고 맞선 방한암 선사의 이야기도 감동을 전한다. 국군 장교는 이에 대해 법당 문짝만 뜯어 태우고 떠났다고 한다.

'좋은 하극상'은 없으나 '불가피한 하극상'은 있었다. 사진은 영화 '크림슨 타이드'의 한 장면. 좌측은 부함장, 우측은 함장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 ‘나쁜 하극상’ 말고 ‘좋은 하극상’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권위주의가 정점에 있었던 시절에서는 명령 불복은 곧 반역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민주적 소통구조가 자리 잡은 오늘날에는 상급자의 냉정한 현실인식이 전제되고, 하급자와의 충분한 토론이 개입된 명령에 힘이 실리게 된다.

영화 ‘크림슨 타이드’를 기억하는가. 미군의 잠수함장이 직권으로 핵미사일 발사를 명령하지만, 전 세계를 제3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리면 안 된다는 부함장이 충돌하는 사안이다. 함장의 지휘권까지 박탈하면서까지 선상반란을 꾀했던 부함장, 그러나 영화는 그를 ‘악인(惡人)’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하극상에 대한 개념 규정도 달라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 위 원고 내용 중 일부는 <경향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기사 내용에서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