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어 '파울'. 월드컵 독일 7경기 모두와 우승팀 결과 예측을 적중시켰다.

국기가 그려진 상자 위에 홍합을 올려놓는다. 홍합을 좋아하는 문어, 상자 위의 어떤 것을 먼저 먹어 치우는지 살핀다. 이걸로 '월드컵 승자 맞히기 점'을 친 것이다. 문어는 독일이 나선 경기에서 모두 독일 상자 위의 것을 먹었다. 독일은 5경기 전승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이 한 달여 일정을 마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런데 독일 오버하우젠 해양생물박물관 수족관에 있는 '파울'이란 이름의 두 살짜리 문어는 여느 축구스타 못지않은 유명세이다.

독일 국민의 열광적 환호를 사던 파울, 그런데 4강전을 앞두고는 스페인상자 위의 홍합을 먹었다. 설마설마한 독일 팬들, 경기 결과, 자기 나라가 진짜로 분패하자 문어에게 괜한 화풀이를 쏟아냈다. “해물 볶음밥 해 먹어야 한다”는 둥 말이다. 그러자 스페인 총리는 "파울을 지키기 위해 경호원을 보내겠다"고 맞받기도 했다.

이런 ‘악화된 여론’을 감지했던 것일까. 파울은 3,4위전을 앞두고는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우루과이상자에 잠시 머물다가 독일 상자 위의 홍합을 먹은 것이다. 이 장면을 TV 생중계로 본 독일 국민들, 그야말로 경기 관람 못지않게 손에 땀을 쥐었다는 후문이다. 경기는 독일의 승리, 또 적중했다. 그것도 역전승으로.

이를 두고 누군가는 문어의 지능에 주목한다. 두 어 신문이 각각 이런 기사를 실었다. “문어는 무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복잡한 뇌를 지녀 장단기 기억을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 해결법을 익힌다. 거울을 보여주면 자신을 인식하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고도 한다. 잡아먹힐 상황에서는 다리를 잘라주는 기지도 있다.”, “문어는 크기가 인간 뇌의 600분의 1에 불과해도 지능은 강아지와 같은 수준이다. 문어가 적에겐 강하게 먹물을 뿜지만 장난칠 때는 약하게 내뿜을 정도의 지능이 있다. 훈련받은 문어는 잼이 든 유리병을 주면 발로 병뚜껑을 열 줄 안다. 색깔이 다른 공도 구별한다.”

기자를 오버하게 만든 문어 못지않게 주목받은 뉴스메이커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축구 황제 펠레다. 이번엔 ‘문어만도 못한 예측의 소유자’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번에도 펠레의 반어법 예측은 적중했다. 1990년대 이후 브라질 축구는 펠레가 강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할 때마다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도 그랬다. 심지어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의 우승을 예측했는데, 결승에는 딴 손님들이 올라가버렸다. (펠레는 원래 스페인도 우승 후보로 꼽았다. 그러다 “취소하겠다”라고 했다. 그런데 스페인은 결승에 올랐다.)

문어의 홍합 먹기 예측 뿐 아니다. 당장 우리 주변을 돌아봐도 이색 점괘는 상당하다. 통상 점이라 하면 손금이나 관상, 명리학(命理學)을 통한 사주풀이 이런 게 정통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종 점괘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우선 실과 실패점을 이용한 점괘를 보자. 역술인이 기도로 손님의 조상신을 불러들이고 이른바 ‘그분’이 오시면 실로 머리둘레부터 손가락, 코 등 신체곳곳의 골상을 재가며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다.

거북점도 있다. 작은 통을 흔들어 그 안에 있는 막대 8개를 여러 차례 뽑은 뒤 괘를 만들어 점을 치는 것이다. 옛날 거북이 등껍질에 팔괘를 그려 통을 만들고 대나무로 만든 막대기를 넣어 흔들어 뽑아 점을 친 것 때문에 거북점이란 이름이 있다고 한다. 그밖에 타로카드를 이용한 점, 동전 던져 확인하는 법 등 다양하다.

사실 점괘는 어떤 정통한 방법이 있다기 보다는 역술인의 안목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매뉴얼이 있어서 그것대로 예측한다면, ‘용한 점집’ 따위가 있겠나? 한 역술인이 어떤 기자에게 털어 놓은 내용을 보면 “절반가량은 역술학에 근거하고, 나머지 절반은 노회한 경험과 인상착의 등 관상에 의해 본다”라는 내용이 있다. 결국 역술가의 능력에 따라 점괘의 정확도가 들쭉날쭉 한다는 설명이다.

이것 때문에 과학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도 역술이 존재한다. 관련해서 미국의 경제학자 갤 브레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경제 예측의 유일한 기능은 점성술을 존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경제 예측이 늘 엉망이다 보니, 이런 것들 때문에 역술이 여전히 존재가치를 발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해의 연초. 전 세계 대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이걸 예측하지 못하고 마냥 낙관했다. 이들이 인상비평을 한 게 아니었다. 나름 기업성장 가능성과 관련시장 전망, 현금 유동성, 환율과 물가, 외국인과 기관의 동향 같은 갖가지 정보를 분석해서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돌출변수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데이터의 예술’로 꼽히는 기상 예측도 돌출변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이러다보니 기상청에서는 징크스에 혹하는 풍토가 있다. 어떤 징크스냐. '겨울과 여름, 개고기를 먹으면 폭설이나 폭우가 쏟아진다'는 것이다. 10년 전, 기상청장이 고생한다며 개고기를 쐈는데 다음날부터 장대비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서울 폭설 때에도 전날 예보관 한 명이 개고기 먹은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고. 기상청은 그래서 여름철 방재기간인 5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겨울철 방재기간인 12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1일까지 개고기를 금한다고 한다.

역술에 의존하기는 정치권도 별 다를 바 없다. 2002년 이회창 당시 대선 후보는 출마를 앞두고 선산을 옮겼다. 정동영, 이인제, 김종필 씨도 부친이나 부모 묘를 소위 명당으로 옮겼다. 그러나 별 무(無)소득이었다. 덕을 봤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손해 봤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상 묘를 옮긴 뒤 대권을 거머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렇다. 또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가지 않고 관운이 뛰어나다는 가회동 한옥마을에 전세 든 이명박 대통령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형인 노건평 씨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개입할 때 한 여자 역술인에게 신세졌다는 후문이 있다.

스포츠야 재미로 그런다 치더라도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가 점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면 과연 그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점술인이 많게는 성인인구 70명당 1명꼴인 55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럴수록 사회는 실력대신 운을 숭상하게 되고, 결국 썩게 될 것이다. 사회 전반에 정정당당함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