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오전. 서울의 한 법원에서 재판이 열렸다. 어떤 내용의 재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판사가 했던 말이거든. 이런 것이었다.

▲"너 이혼했는데 무슨 말을 해. 이혼한 사람은 말하지 마. 이혼했잖아. 말할 권리 없어." ▲"이런 걸로 소송을 해?" ▲"그래서 얼마를 깐다고?" ▲"돈 빨리 안 받고 싶어?" ▲"돈이 얼마나 필요한 건데?" ▲"빨리빨리 가, 가!"

재판정에 함께 했던 딸이 분한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57살 된 어머니에게 40대 판사가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판사는 "그렇게 심한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하더니 "오히려 재판을 빨리 끝내주고 잘 해결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조금 억울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 본인이 그 처지가 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언어폭력이었다. 57살 여성의 가족 구성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판사를 제소했다.

지난 1월엔가는 40대 판사가 70 다 된 노인에게 “버릇없다”라고 말해 물의를 빚은 일도 있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69살 된 노인이 법정에서 말 한마디를 잘못했다. 재판 중에 남의 말에 끼어든 것이다. 사실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런데 판사가 대뜸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느냐”며 질책을 당했다.

이 노인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더니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격권이 침해당했다고 진정을 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인정했다. 공개적인 질책과 연장자에게 쓸 수 없는 언행으로 충격과 모욕감을 준 인권침해라고 말이다. 서울중앙지법은 그 판사에게 주의조치를 내렸다.

그렇다. 이걸 적극적으로 문제 삼는 단체가 있었으니 서울지방변호사회이다. 재판의 질과 법관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베스트 법관 10명과 워스트 법관 10명을 골랐다. 상하위 10명씩 고른 것이다. 그걸 법원행정처에 제출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변호사들에게 낮은 점수를 받은 법관들의 문제점이다. 두 번째로 꼽힌 것이 여기서 언급하는 고압적인 태도와 모욕적인 언사였다. 30%가 이걸 문제로 삼았다.

해마다 선발하는 판사는 100여 명. 사시 통과자가 1000명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판사 세계는 엘리트 중에 엘리트만 모인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환상과 현실은 다르다. 검토해야 할 서류가 태산 같다.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 재판을 앞두고는 더욱 말이다. 법원장이나 부장판사가 평판사에게 판결에 대한 지시는 물론 서류작업조차 부탁하지 않는다. (지금은 대법관이 된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의 경우 다양한 방식으로 재판에 개입하려다 망신 산 일이 있었다.) 게다가 하늘같은 선배가 소집한 회식이라도 빠지면 그만이다. 이런 개인주의가 허락되는 이유, 판결의 공정성 확보 때문이다.

한 신문과 인터뷰한 어떤 중견 판사는 "판사는 매일 심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을 받는 사람"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고 한다. 실체적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는 물론 상급심과 역사로부터 심판을 받는 존재가 판사라며 말이다. 그래서 한 중견 판사는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법 격언을 해가 바뀔 때마다 다이어리에 적어 놓고 산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법정 아래에서는 잘 몰라주는 것도 현실이다. 굳이 통계를 인용하지 않아도 법정에 서 본 사람들은 판사가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법원도 이런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판사 클리닉 프로그램도 운용한다. 사실 이 매뉴얼을 보게 되면 법정 뿐 아니라 사회 각처에서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선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치라 ▲이름을 부를 때 잠시라도 눈을 마주쳐라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라 ▲몸을 앞으로 숙여 관심을 보여줘라 ▲‘그간 별 일 없었냐’는 안부인사로 분위기를 풀어라 이런 것들이다.

법원의 권위주의 깨기 노력은 오래전부터 전개돼 왔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사법고시에 합격해 막 임용됐을 때 일이다. 사람들은 강금실 판사를 저마다 “영감님”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나는 영감이 아니라 미스인데요"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변호사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법원 사무관 시험에 합격해 강원도 정선에서 즉결심판원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박원순 판사는 스물세 살의 나이에 사람들로부터 “영감” 소리를 들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사표를 던졌다고 한다. 영감은 무슨 뜻이냐. 정2품 이상 판서나 당상관은 대감, 그리고 종2품 정3품의 당상관을 영감이라 불렀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피고인에 깍듯이 인사한 후에 존댓말로 재판하는 판사 이야기도 있다. '섬김의 미학'으로 사건 관계인을 설득하는 판사, 그 이름은 서울고등법원에 소속된 성낙송 부장이다. 성낙송 판사는 첫 재판 때마다 피고인에게 깍듯이 인사한 뒤 당부하는 말이 있다. 이건 12년 째 이어온 '다짐'이기도 하다. "저는 법대에서 내려다보는 자세를 버리고 피고인 눈높이에 맞추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경청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부디 피고인의 진심과 재판부 노력이 합해져 선을 이루는 재판이 되길 바랍니다."

성낙송 판사의 재판정은 평화로운 사랑방 분위기를 추구한다. 그래서 사건 당사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털어놓도록 한다. 이래도 될까. 성낙송 판사가 한 말을 소개한다. "법정을 찾는 사람은 모두 억울하고 한 맺힌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누구를 처벌하고 얼마를 더 받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하나라도 더 듣고 어루만지는 게 법의 궁극적인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판사는 법정에서 존경받는다. 그 이유는 정의가 서려 있는 법의 권위를 판사가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 개인이 잘나서가 아니다.

□ 인용 자료

-조선일보 2010. 7. 13자 "[단독] 法服 입으면 상전? 판사 또 '막말' 물의"
-매일경제 2010. 1. 23자 "가장 보수적인 그들이 논쟁속으로…대한민국 판사의 세계"
-법률신문 2005. 10. 26자 “판사님들 목에 힘 뺍시다”
-부산일보 2010. 2. 6자 "[밀물 썰물] 판사의 자질"
-한국경제신문 2010. 1. 21자 "오만과 편견"
-세계일보 2010. 7. 14자 "피고인에 깍듯이 인사 후 존댓말 재판… 12년 섬김 '머슴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