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자녀 교육이다. 특별히 교회 구내에 있는 목사관에서 자녀를 교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들락거리면서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주는 일들이 자녀 교육에는 많은 얼룩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교우는 목사 가정의 단란한 시간임에도 아랑 곳 하지 않고 사모를 찾아와서 울고 불면서 자기 가정의 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어느 교우는 목사의 자녀들이 때로 교회 구내나 교회당 안에서 놀이에 깊이 빠진 나머지 자그만 허물을 보이면 목회자 자녀 교육에 문제가 있는 양 수군거림으로 목회자 부부를 상심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중직은 목사관까지 찾아와서 목사에게 거친 말을 함부로 떠들므로 아이들의 여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것이다. 하물며 몇몇이 몰려와서 당장에 사임하라고 고함치는 사나운 모습을 본 자녀들이야 어떠하겠는가?

다행히 우리 자녀들에게 그런 치명적인 기억이 없다는 것, 그리고 비록 교회 형편은 어려웠지만 대신 교우들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성장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사실 홍익교회 부임 당시는 자녀교육에는 거의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개척교회나 다름없는 작은 교회를 성장시키겠다고 하루 종일 목회 일에 우선하다 보면 자녀 교육에는 거의 등한히 하다 싶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려운 교회 재정으로 매달 받는 사례금도 빈약하여 생활비도 빠듯함에도 그 사례비에서 빠져 나가는 목회 활동비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기에 자녀들을 위한 과외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농촌교회 7년, 홍익교회 33년 등 목회 40년을 되돌아보면서 오늘 장성하여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3남매의 모습을 보면 그저 하나님께 감사한 것뿐이다.

홍익교회 33년을 되돌아보면 우리 가정이 옮겨 다닌 사택만도 무려 7번이었다. 처음에는 본당 30평과 교육실로 사용되는 24평 정도의 건물이 전부였던 부임 초기에는 교육실 한 귀퉁이에 있는 두 방에서 할머니와 자녀 셋 등 6명의 식구가 살아야 했다. 그 때는 큰 딸아이가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고 연년생인 두 아들은 아직도 어린 아기 나이였다. 교회가 점점 성장하면서 교회 공간은 너무나 비좁아서 불어나는 교인들과 교회 학교 학생들을 수용하기에 힘에 벅찼다.

주일날이면 교육실은 물론이고 사택도 언제나 교사들과 교인들로 붐비었다. 당시 주일날 식당운영은 엄두도 낼 수 없기 때문에 교회학교 오후순서를 맡았던 교사들이 밤 예배까지 기다리는 동안 저녁식사는 우리 식탁에서 해결해야 했음으로 밤 예배까지 마치고 나면 우리 부부는 완전히 녹초가 되고는 했다. 그런데다가 1979년대 말부터 집사람에게 신유(神癒)의 은사가 나타나서 평일에도 환자들이 교육실이나 사택을 드나드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지방에까지 소문이 나서 병원에서도 포기한 말기 암환자들이 교육실에 와서 잠시 우거하게 됨으로 우리 식탁에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에는 결벽증이 유난스러웠던 집사람은 어린 애들을 염려한 나머지 사택이나 교육실을 더 쓸고 닦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울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져 주셨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겠는가? 교인들의 수가 점점 불어남에 따라 우리 부부는 밤낮없이 목회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환자들을 돌보는 집사람에 입장에서는 한 밤중에라도 심방을 요청하면 자다 말고라도 찾아가야 한 입장에서 아무리 엄마의 손길이 절대 필요한 어린 아이 때라도 일일이 돌볼 수 있었겠는가? 그런 때에는 연로하신 할머니와 주변에 사는 교인들에게 틈틈이 맡겨야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탈선하지 않고 반듯하게 성장해서 자기 분야에서 맹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보호해 주셨다는 고백 외에는 무엇을 내세울 말이 있겠는가? 그렇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우선할 때 하나님은 그 가정을 책임져 주신다는 교훈을 나름대로 체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준 영향이 있다면 우리 부부의 대조적인 성격과 취향이 나름대로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부부는 성격이나 취향에서 너무나 판이한 면이 많다. 나는 아주 보수적인 반면, 집사람은 진취적이다. 나는 아주 정적인 반면, 집사람은 동적이다. 나는 많은 시간 서재에 앉아 있다면 집사람은 늘 무엇인가 활동해야 직성이 풀린다. 시간이 나면 가난한 아이들이 대부분인 교인들의 자녀들을 교육실에 모아놓고 영어성경을 가르치고 암송하게 만든다. 교인들을 데리고 기도원도 자주 가고 혹은 여행의 가이드도 맡고 나선다.

나중에는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서양요리사 자격증도 취득한 후, 빵을 만들어 당회원들이나 교사들, 혹은 원거리 심방이나 여행 시 간식을 담당하기도 한다. 또한 큰 딸아이가 대학 캠퍼스 선교의 간사가 되면서 떼 지어 몰려오는 대학생들, 심지어는 딸아이의 공동체의 멤버들이나 카투사였던 막내가 데리고 미군들 등, 외국인들을 대접하는 일, 교회 일꾼 등, 우리 식탁에는 언제나 손님들이 붐비게 마련이었다.

우리가 7번이나 사택을 옮기어 다니는 가운데 15평짜리 비좁은 사택에서 힘든 때도 있었으나 때로는 25평의 넓은 집으로 이사하여 아이들이 너무나 신나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온 친척 자녀들이 아이들과 함께 거하게 됨으로 아이들의 불평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 부부의 희생적인 삶이 아이들에게는 인격적인 면에서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우리 부부의 다른 재능과 취향을 아이들이 골고루 나누어 가진 듯싶다.

나는 글에는 능하지만 원고 없이는 설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능하지 못하나 집사람은 말에 능하다. 나는 클래식이나 한국 가곡을 즐기지만, 집사람은 세미클래식이나 샹송, 재즈 등 즐기는 음악이 다양하다.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이 달갑지 않지만 집사람은 사람들을 환대하는 것을 즐긴다. 집사람은 즉흥적인 면이 강하여 아이들의 특별한 날은 지나칠 정도로 잔치를 벌이는데 비해 나는 겉으로 감정을 잘 나타내지 않지만 성탄절이나 무슨 특별한 날을 기억했다가 조그마한 선물이나 카드의 글을 남기는 등 자상한 면이 아이들의 기억에는 남아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군에서 휴가 나오거나 제대하면 집사람은 자기보다 큰 아들들을 끌어안고 눈물로 반기지만, 나는 빙긋이 웃고 반기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우리 부부의 대조적인 면이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조화롭게 내면에 심어져서 그들의 신앙과 인격의 자양분인 되어 오늘 각자 분야에서 맹활약하면서 튼실하게 사명의 자리를 넓혀가고 있도록 하나님이 도우시고 계신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