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만든 제3대 국새(國璽)에서 균열이 발견돼 2007년 제4대 황금 국새가 제작됐다. 그런데 제작단장인 민홍규 씨가 전통방식으로 국새를 제작할 기술력이 없는 인물'이라거나 '순금은 3㎏ 중에 쓰고 남은 순금 800~900g으로 황금도장을 만들어 참여정부의 정·관계 실세들에게 로비용으로 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 수사까지 벌어지고 있다. 민홍규 씨는 여기에 더해 "국새 제작 기법으로 만들었다"며 황금 골프 퍼터를 만들어 20억 원 안팎에 파는 사업에 참여한 사실도 밟히고 말았다. 수사는 진행 중이다.

예전에는 왕의 도장이라 해서 옥새(玉璽)라는 말이 쓰였다. 워낙 권위 있는 물건이라 제작 방식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왔다. 조선 초기만 해도 옥새 제조 비방을 적은 영새부(榮璽簿)란 장부가 전해졌지만 옥새 위조사건이 발생하면서 나라가 지정한 옥새전각장 1인에게만 그 비법이 전수됐다고 한다.

사실 옥새든 국새든 국가 권위의 상징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하늘로부터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받아 국가를 열었다’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경복궁 경회루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원래 여기는 연회 장소였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겨준 곳이기도 하다. 옥새 전달은 왕위 이양을 공식화하는 절차였다. 이처럼 왕조시대엔 국새는 임금이자, 국가였다. 지금도 국가의 표상(表象)이다.

그러나 옥새 속에 감춰진 사대주의의 잔재는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고려 때에는 중국 황제가 내려준 국새를 받아썼다. 그래서 ‘고려국왕지인’이라고 했다. 조선도 마찬가지다. 태조는 고려 국새를 명나라에 반납하고 새것을 요청했지만 태종 때 가서야 ‘조선국왕지인’이란 황금 국새를 하사받았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청나라로부터 국새를 받았다. 그러나 조선은 명나라 국새 모조품을 숨겨두고 왕위 계승 때 청나라 몰래 사용하기도 했다. 어떤 것이든 명실상부한 국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다 구한말에 이르러 ‘도장의 주권’을 회복한다. 정확히 그 시점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른 이후였다. 모양도 제후를 상징하는 거북에서 황제를 상징하는 용으로 바꾸었다. 이보다 과거에는 중국 눈치 보여서 거북으로 했었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한일병합 후 일본은 옥새 8점을 빼앗아 도쿄(東京)로 가져갔고, 광복 후 맥아더 원수를 통해 반환했으나 6·25전쟁 와중에 전부 분실했다가 용케 3점을 되찾았다.

8월 22일이 한일병합 100년 되는 날이다. 그 병합에도 국새가 쓰였을까. 구한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민들이 발행한 신문 <신한민보> 1926년 7월18일자에는 ‘순종 황제의 유조’로 해석되는 기사가 실렸다. “병합 인준은 일본이 제 멋대로 한 것이요.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여. 노력해 광복하라. 짐의 혼백이 명명한 가운데 여러분을 도우리라”라는 내용이다. 한일병합조약을 보면 일본 측 문서엔 국새(國璽)가 찍혀 있고, 일왕의 서명도 있다. 우리 측 문서엔 국새도, 이척(李拓)이란 순종의 서명도 없다. 대신 칙명지보(勅命之寶)란 어새가 찍혀 있을 뿐이다. 어새란 황제의 행정 결재용이다. 국권을 넘겨주는데 결재용 도장을 찍을까? 문서를 입수한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순종 황제가 병합조약에 동의하지 않은 증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다른 나라에도 국새 또 국새로 인한 논란이 있을까. 흔치 않은 것 같다. 한 신문은 현재 유럽에서 국새를 사용 중인 대표적인 국가는 영국·프랑스·로마교황청 등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에선 국왕이 바뀔 때마다 새 국새를 만들어 사용하고 옛 국새는 폐기처분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선 5세기 후반 시작된 메로빙거 왕조 때 처음 국새가 등장했다고 한다. 로마 교황청에선 교황이 바뀔 때마다 '어부의 반지'로 불리는 새 국새를 만들어 사용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중국은 1949년 10월 건국 당시 국새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국새를 곧 국가 그 자체로 인식하는 나라는 몇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서는 국새가 필요하냐는 의문도 표한다. 사실 세계 200여개 국가 중 국새가 있는 나라는 10여개밖에 안 된다. 국새란 없어도 되는 것이다.

사실 국새 한 방으로 모든 게 다 성립되는 세상이 아니다. 국새는 헌법 개정 공포문 전문, 대통령 명의의 비준서, 훈장 및 포장증, 고위 공무원 임명장 등에 쓰인다. 하지만 국새가 찍히는 문서에는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직인(職印) 등도 찍힌다. 이런 게 없으면 신빙성을 의심받게 된다. 어쩌면 국새 날인은 그저 폼의 의미가 크다. 앞서 언급한 중국도 이젠 국새를 박물관에 모셔놓고 주요 문서엔 국가주석·총리·외교부장 등의 서명을 넣고 있다. 나라 재산을 허투루 만든 의혹, 말끔히 규명돼야 하겠지만, 국새에 국가적 혼을 불어넣는 태도 역시 곱씹어 봐야 할 문제라고 판단한다.

□ 인용 자료

조선일보 2010. 8. 27자 “[조선데스크] 국새, 필요합니까”
조선일보 2010. 8. 26자 “[한국 '국새 파문'… 세계의 국새 문화는?] 로마교황청, 교황 반지(어부의 반지)를 국새로 써… 英, 왕 바뀔 때마다 새 '銀국새' 사용”
한겨레 2010. 8. 24자 “[유레카] 국새와 어보 / 정남기”
서울신문 2010. 8. 20자 “[씨줄날줄]국새용 황금도장 / 박대출 논설위원”
동아일보 2004. 4. 2자 “[횡설수설]오명철 / 옥새(玉璽)”
국민일보 2003. 1. 4자 “[한마당] 국새(國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