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월간「복음과상황」94.9월호)

김연중
(미국 남일리노이 주립대학 신문방송학 박사,
현 서강대 신방과 강사)

대중문화 시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는 어느 때보다 대중문화에 대한 논의를 많이 듣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중문화에 대한 특강이나 세미나 등이 눈길을 끌고, 언론에서도 대중문화에 대한 특집을 마련하는 등 바야흐로 대중문화라는 주제는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 말하는 학자들은, 현재가 '경제전쟁' 시대라면 다가올 미래는 '문화전쟁' 시대라고 예고하고 있다. 왜 이토록 대중문화가 붐을 이루로 있는 것일까?
우선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현상적인 측면에서 대중문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날마다 새롭고 다양한 문화적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들에 대해서 알고 싶고, 왜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대중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특히 문민정부 이후 민중 중심의 시각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대중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서 그들의 기호나 문화 등이 관심을 끌리게 된 것이다.
셋째는 대중문화 확산의 중심부에 있는 대중매체에 대한 관심을 들 수 있다. 신문, 방송, 영화, 비디오, 광고 등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스레 대중문화로의 흥미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로는 문화의 국제화 개방화로 인한 외국 문화의 유입과 우리 문화에 대한 위기감을 들 수 있다. 기존의 서구 문화의 영향에 덧붙여 일본 문화의 유입까지도 예정되어 있는 차에 가뜩이나 주눅들어 있는 우리의 현 문화나 전통 문화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걱정이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컴퓨터, 통신 기술이나 영상 매체의 발달로 인한 뉴미디어의 등장에서 비롯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 '95년 CATV와 방송위성으로 맞게 될 다채널 시대에 앞으로의 미래 사회와 대중문화에 대한 궁금증들이 증폭되어 가고 있다.
여섯째는 현대 사회와 문화 현상들을 설명하고 있는 문화 이론이나 학문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문화 이론가들은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에 대해 갖가지 이론들을 쏟아 놓고 있는데 이것들이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계되어서 공감을 일으키고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와 문화이론들
문화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좁은 의미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가 포함되지 못하는 나머지 부분이요, 넓게 말하면 우리 삶의 전반을 포괄하는 말이다. 현대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과 이론의 전개는 이 두 가지 관점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왔다.
오늘날 대중문화에 대한 논의가 끝없이 확산되는 이유는 대중문화에 대한 불분명한 개념과 그것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첫째, 현대 사회에서 문화는 우리의 일상이나 사고나 행위 전체를 포함하는 일반적이고도 매우 광범위한 개념으로 확산, 사용되고 있는 까닭에 대중문화의 실체 파악이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멋대로 해석이 가능하고 자의적인 설명이 행해질 수 있다. 실제로 현대사 회의 문화 현상을 진단하는 이론이나 시각들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엄청난 간극을 보여 주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문화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삶이나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처럼 문화도 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번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현재 대중문화에 대해서 갖가지 주장과 논의가 난무하고 있는 것은 위의 두 가지 특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문화 변동의 주도자는 대중매체
그런데 문화는 시대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바뀌어 가는 것일까? 세 번째의 특징과 관련시켜 설명하면 문화는 인위적으로 바뀌어 가는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에 의하면 대중문화의 변천에 큰 몇 가지 이론이 있는데, 소위 '문화 접변' 이니 '문화 변동 이론'이니 하는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 최근 설득력 있는 이론은 이 문화의 변동이 누군가에 의하여 주도되고 이끌려진다는 것이다. 주도자는 대중매체이며 이 대중매체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만들고 문화를 바꾸어 가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비판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들 대중매체는 일부 계층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고, 따라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중문화는 그들의 입장이 반영되고 인위적으로 조종되는 문화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적인 관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 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자본주의에서 대중문화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기 위한 상업적 전략이 교묘히 숨겨져 있는 상품이다. 대중문화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고,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것이 개발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흥미를 돋구어 상품으로 팔기 위한 전략으로 기획.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비판론자들의 시각은 공감을 얻고 있다. 마르크스로부터 뿌려진 씨앗은 아직도 많은 문화 이론가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므며 특히 현대의 대중문화 이론들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마르크스는 경제를 중심으로 1800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진단했지만 오늘날 후세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문화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적인 시각을 개진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제창했던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들을 이제 그들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투쟁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살 맛 나는 싸움터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대표적인 이론은 프랑크푸르트 학파나, 알튀세 , 그람시 등 마르크스주의자들뿐 아니라, 문화 연구의 시발을 이루는 레이몬드 윌리암스, 리차드 호가트, 프랑스 중심의 구조주의, 기호학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탈구조주의나 보들리야르를 비롯한 소비문화 중심주의 등 포스트모던론자들의 논의가 대중문화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한 이론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 다양한 대중문화 이론가들은 종래 경제 논의를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던 젊은 엘리트들을 문화 분야로 이동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들은 관심 영역인 문화 현상이나 영화, 광고, 또는 대중매체 등에 이들 이론가들의 생각을 무차별적으로 도입 적용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문화이론에 매혹되어 연구에 몰입하고 있으며, 이제 문화는 '살 맛 나는 싸움터' 이기도 하다.
비판 문화 이론가들의 주장에는 관점은 다르다 하더라도 몇 가지 주요 흐름이 지배하고 있다. 첫째는 인간 해방의 휴머니즘이요, 둘째는 진보주의 사관이며, 셋째는 개인주의 , 넷째로는 자유주의이며, 다섯째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대중문화 이론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 시각은 대부분 오랫동안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사상이요, 논리 체계이다. 따라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들이 오늘날도 사람들을 부추기고 신나게 하고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욕구들과 결합하여 젊은 엘리트와 지식인들에게 세계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된다.

대중매체의 영향
한편 비판 이론가들과 달리 대중 문화를 문제삼는 다른 부류는 대중 매체가 미치고 있는 현실적인 영향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중매체의 영향은 기존에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간에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는데, 이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중매체에 나타나고 있는 극단적이고 과다한 폭력, 또는 선정적이거나 퇴폐적인 내용의 문제이다. 이들은 대중매체가 등장한 이후 끊임없이 문제가 되어 왔고 지금도 기독교 윤리 차원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폭력이나 섹스물 등은 청소년들에게 모방 심리를 자극할 뿐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불감증을 유발, 보다 더 강한 자극을 찾게 할 것이고 결국은 사회 문화 전체를 오염시킬 것이다.
둘째는 대중매체가 제시하고 있는 반그리스도적인 내용들의 확산을 들 수 있다. 무당, 점성술, 역술 등 전통 문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보존이 장려되고 있는 미신이라든가, 드라마 등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대한 비하 또는 격하 등이 그것이다.
셋째는 이에 결부하여 대중문화 가운데 침투해 있는 뉴 에이지적인 요소에 대한 경계심이다. 뉴 에이지가 그리스도인의 문화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나라 확산에 부정적이라는 견해가 대중매체를 보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각심으로 다가서고 있다.
넷째, 매체 자체의 등장만으로도 문제를 삼는 견해이다. 텔레비전 시청 때문에 가족들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교회에 가지 않는다는 아이들의 얘기가 구체적인 실례가 된다. 맥루한의 '매체 결정론'도 이 부분에 속한다. 그에 의하면. 영상 시대와 인간들은 보는 것, 즐기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사고가 다르다고 한다. 대중매체의 변화로 인해 인간형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케이블TV로 인한 다채널 시대 뿐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뉴 미디어 시대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는 대중매체가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대중매체를 보면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이 혼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기존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달리 새롭고 다양한 가치들이 미디어를 통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 TV는 여성상이 고정되어 있었지만 근래에는 종래와 전혀 다른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 일하는 여자가 아름다운 여성으로, 가정일을 돕는 남편이 좋은 남편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전에 볼 수 없던 가치관이나 모습들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을 말한다.

TV가 교과서로 작용
대중매체가 미치고 있는 영향을 눈치 채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며 어디서부터가 영향이고 어디서부터는 아닌지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매체의 영향으로 내가 바뀌어 간다고 사람들은 인식하지 않는다. 대중매체의 영향은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매체가 미치고 있는 파급 효과는 엄청나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급속히 전파되고 한 시대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 그것이 대중문화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광고나 영화만 하더라도 그것이 미치고 있는 영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또 텔레비전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세상에 대해 가르치는 교과서로 기능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는 장소와 시간은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세상과 삶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대중 매체와의 접촉을 통해서이다.
대중매체의 메시지가 더욱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그것들이 고답적이거나 훈계조가 아니라 감정 이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설득 방법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매체가 유포하는 가치관은 멋진 주인공을 통해서 자연스레 전달되기 때문에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본받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대중매체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우리는 결국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나 인식 틀을 형성 당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는 방법이나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전폭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배운 대부분이 세상적인 가치관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의 무관심
여기서 우리는 대중매체와 대중 문화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볼 수가 있다. 먼저 우리는 대중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중매체에 대해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무지하다. 일본처럼 고교 졸업 전까지 학교 교육 시간의 두 배를 보내고 있는 텔레비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텔레비전 때문에 교회가 비어도 "설마 그것 때문이랴" 라고 생각하거나 별다른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 매일 라디오와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그것은 젊은이들의 문화라고 용인되고 있다.
단편적인 대응 방법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대중매체나 대중문화를 아직도 세속적인 것으로 보는 교회와 세상과의 분리관이다.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사고는 오히려 일부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대중문화가 영적인 성장이나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이를 절연하거나 될 수 있으면 멀리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아직 영적으로 미숙하고 자기 의지가 불확실한 청소년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셋째는 완벽한 분리관은 아니더라도 대중문화의 내용에 대해서 끊임없이 회의를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이들은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반그리스도인적인 요소를 지적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유행가 가사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내용 가운데 반그리스도적인 요소를 찾아내서 그것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해악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중매체에 쉽게 노출되어 영향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위기감을 갖고 있고 따라서 대중매체의 내용을 문제삼는다. 이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체에 의한 영향은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강력하게 미칠 수도 없고 어느 날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볼 때 일방적이고도 지나친 발상일 수 있다.

인간 질서의 붕괴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와는 별도로 우리는 대중매체가 유포하는 가치관의 문제를 다시 한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 시대의 가치관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유포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들이 대단히 세속적이고 반그리스도적이라는 데 있다. 이 경우 '반그리스도' 라는 것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요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간접적이지만 은근한 방법으로 접근해서 하나님의 법칙을 거스르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물질적이며 자의적인 요소들이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오늘날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가정은 매우 파격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가정에서의 가장의 권위와 전통은 가부장 이데을로기라는 이름으로 부정되고 있다. 가족 구성원간의 어법은 자유로운 대화를 빌미로 부정되고 가장을 중심으로 한 가정의 질서는 가족 구성원간의 바람직한(?)관계에 역행하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가정만 붕괴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오래된 사고는 낡은 것, 나쁜 것이고 새로운 사고는 좋은 것이라는 새로운 등치법이 횡행하고 있다. 남녀간의 순결은 불필요한 보수로 인식되고 있으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가치관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다양성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
이러한 가치관이 하나님의 나라에 반대되는 것인지를 꼭 집어서 보여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종래의 인간 질서가 붕괴하고 사회적, 도덕적 윤리의식이 몰락하고 있는 저변에는 우리 사회를 점차 좀먹어 가는 새로운 사고와 가치관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문화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고 부추겨지는 사회현상들 가운데는 술 문화, 음주 문화, 신세대 X세대, 오렌지 문화, 압구정 문화, 종로 문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이름들이 있으며, 이렇게 가다 보면 도둑 문화, 강간 문화라는 표현까지 나올 법하다.
이들 각 문화(?)는 다양성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되거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각각의 문화나 사고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인정되고 상대적 가치 판단에 의해 용인될 때 절대 주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많은 가치 중의 하나이거나 상대적인 위치로 전락될 수 있다. 새로운 가치관은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절대부정에서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진취적이고 자유롭고 멋있는 가치관으로 포장되어 대중매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

학문이라는 이름의 가면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대중문화 이론이 미치고 있는 문화에 대한 영향이다. 대중문화 이론가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기호인지도 분명치 않은 시대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은 본래 존재하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라는 것도 어쩌면 기호가 만들어 놓은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들리야르에 의하면 우리는 이제 기호가 실재를 죽이고 실재가 가졌던 권리를 획득하고 다시금 또 하나의 실재로 부활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허상이 본질을 대신하고 이들 간의 구분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따르다 보면 우리는 극단적인 사고에 이르게 된다. 즉 하나님도 본래 존재하는 분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오늘날 가치 혼란의 소용돌이를 몰고 온 주범으로 구조주의라든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은 혼돈을 찬양하고 다양성의 시대니 개성의 시대니 해서 자유로운 가치관들을 부추긴다, 절대는 부정되어야 하며 그것은 우리 를 구속해 온 속박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척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서 구속받지 않은 본래적인 것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위치 지워지거나 규제되지 않은 혼돈이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직접적으로 거부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이 종국에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고와 맞닿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책임은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대중문화의 타락이나 비속화의 문제가 단지 매체 자체의 책임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타락해 가는 매체만큼이나 수용자인 우리들의 책임도 만만치 않음을 알아야 한다. 대중문화의 질적 타락은 이미 그것에 길들여져 있는 소비자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지면서 더욱 가속화된다. 사람들은 매체를 통해 휴식과 오락과 안식을 찾고 있으며, 보다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내용을 기대하고 있다. 대중매체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기호에 영합하여 결국은 이들이 만나서 대중문화의 방향을 결정해 버리는 상승 작용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대중문화는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결과물이다. 만약 우리의 대중문화가 저질이고, 문제가 있고, 반그리스도적이라면 우리 사회의 전체 풍토가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체를 말할 때 주로 방관자의 위치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멀리서 바라보고, 비판하고, 손가락질한다. 자신은 마치 그 탁한 물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외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자리 매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심하다, 이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믿음이 세속적이지 않은 때문이지만 대중문화라는 것에 대해서 지나친 비하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문화는 결국 우리가 만든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문화가 저질이라면 그것은 곧 우리 사회가 그렇다는 것이요, 그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자기 구원의 개인주의를 극복할 때
문화는 물과 같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우리 모두가 몸담고 있는 양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깨끗하면 우리가 깨끗하게 자랄 것이요, 더러우면 더럽게 자랄 것이다. 따라서 그 물을 어떻게 가꾸느냐 하는 문제에 이르면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 물이 미치는 영향은 개인에게만 또 이 시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우리의 자녀들에게까지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물을 맑게 하는 데, 그리고 깨끗하게 보존하는 데 그리스도인은 남다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교회가 세상과 담을 쌓고 교회 문화를 만드는 데만 주력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교회도 세상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세상 문화를 바꾸고 개혁하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하고 그 길이 종국에는 교회 문화를 가꾸는 길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교회 밖에만 나오면 힘을 못쓰는 것은 한마디로 교회와 세상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인정되는 가치관과 교회에서 가르치는 가치관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중의 잣대를 갖고 살고 있다. 교회에서의 잣대와 세상에서의 잣대를 달리함으로써 마음의 갈등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교회가 앞장서서 세상 문화와의 거리를 좁히거나, 바꾸지 않을 때 우리는 영원히 교회라는 작은 공간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작은 그리스도인으로 머물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스스로에게 주어진 권위와 책임을 행사하고, 그리스도인이 자기 구원의 개인주의를 극복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문화는 허상이 아니다. 각 사람사람이 살며 생각하며 행위하며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한사람 한사람이 깨어서 책임을 갖고 작은 일부터 실천할 때 우리의 문화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