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08년부터 3년 간 이동원 목사가 시무했던 지구촌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집에서 매우 가깝고 무엇보다도 아내가 일찌감치 터 잡았기에 그랬습니다. 그러나 3만 명 이상 모이는 ‘대형교회’라는 점이 늘 마음속에 짐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뜨기’ 위한 명분을 찾고자 했습니다. ‘내가 왜 저런 설교를 듣고 있어야 하나’라고 할 요량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이동원 목사가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내내 시국 발언을 ‘감청’했습니다. 꼬투리를 잡아서 다른 교회에 나갈 명분을 삼으려 했던 것이지요. 일이 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교회가 분당 수지라는 부촌에 위치한 터라 보수적 지향의 설교를 해도 무방할 환경이니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퇴임하기 3년 이전까지 시사 현안에 대해 조금도 경도됨 없이 자로 잰 듯 한 균형감을 설교 내내 지켰습니다. 저처럼 수구 성향에 진저리 내는 사람이 ‘괜찮다’라고 할 정도이니, 거꾸로 우파적 시국관을 가진 이들은 갈증을 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 ‘검증’ 과정에서 시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개신교계 우파단체인 기독교사회책임이 2008년 7월 10일 개신교 목사 9101명의 동의를 받았다면서 “해소되지 않은 우려는 정부와 국회에 맡기자”는 내용의 촛불집회 중지 촉구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촛불에 찬물을 끼얹는 친정부 성향 목사들의 준동이었지요. 이들이 발표한 명단엔 내로라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총망라되다시피 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그도 일원이었습니다.

납득할만한 후속 조치는 물론 진정성 있는 성찰도 없는 정부. 이 정부의 국면 타개책에 힘을 실어주는 반민주 반민중적 행태에 그도 함께 한 것입니다. 항의의 글을 교회 온라인 건의함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날 당시 비서실장이던 양광모 목사(현 정릉제일교회 담임)가 ‘담임목사를 대신해 보내는 것’이라며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중략) 기독교사회책임에서 발표한 "시국안정을 바라는 목회자 일동" 명의의 촛불집회 중지 호소문과 관련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우리 지구촌교회나 이동원 목사님께서는 동의나 서명을 하신 사실이 없습니다. 물론 기독교사회책임에 몸담고 일하시는 분들도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야 동일하리라 믿지만 그렇다고 동의나 허락 없이 자신들의 주장에 영향력 있다고 판단되는 목사님의 성함을 동원하는 일은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저희 사역조정실에서도 이 일로 인해 공식적인 항의를 하고 우리의 동의 없이 무리수를 둔 사실에 대해 책임을 물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얼마 뒤인 7월 24일자 <한겨레>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독교사회책임(대표·서경석 목사)이 목사들의 촛불중지촉구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명단을 포함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중략) 명단에 포함된 이동원목사가 시무하는 지구촌교회 등에서 본인 동의나 확인 없이 명단에 포함된 데 대해 항의하자 기독교사회책임은 지난 21일 이동원목사와 홍문수 목사(신반포교회), 전성포 목사(이웃사랑교회), 송태근 목사(강남교회), 나핵집 목사(열림교회), 정준경 목사(뜨인돌교회) 등 6명은 실무자의 실수로 잘못 기재됐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하지만 이동원 목사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한 교회 공동의 기도를 수차례 교인에게 요구했습니다. 대통령의 선정(善政)을 위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장로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애정’의 표현으로 봐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부적격 인사 등용으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울 때 했던 언급을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도덕적이고 정직한 인물이 기용되도록 함께 기도 합시다”라는.

이렇게 ‘사찰’하기를 3년. 이동원 목사가 지난 연말로 은퇴했습니다. 그것도 통상 정년인 일흔에서 -5년 되는 시점에. 사실상 본인의 역량으로 세운 교회인데 기득권에 집착 않는 모습은 당연하지만 기이했습니다. 담임목사 이취임 예배. 그는 또 한 번의 파격을 연출합니다.

“다섯 가지 참회합니다. 하나, 조국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방관자로 살아온 일과, 지도하던 청년들에게도 행동을 촉구하지 못한 일.
둘, 목회 마당에서 마음으로 소외되고 연약한 성도들을 돌보는 목회를 하려 했으나, 그들의 눈물과 아픔에 제대로 동참하지 못한 일.
셋, 바로 살아야 한다고 설교하면서도 제가 그대로 행하지 못하여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이지 못한 일.
넷, 올곧게 살아가지 못한 성도들, 교회 내 부유한 기득권층에 대하여 그들이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해 회개를 촉구하고 예언자적인 설교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일.
다섯,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목회하는 동안 나 자신의 부주의한 말과 경솔한 행동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섭섭하게 했던 소소한 일상의 모든 부덕.”

찬사와 격려의 말이 난무할 자리에 자성(自省)의 말로 숙연케 한 그. 그의 목회의 핵심은 ‘염치를 앎’이었습니다.

공교로운 사찰 결과입니다. 그에게는 결벽증이 있습니다. 교회가 결코 책 잡 힐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랄까요. 그의 교회가 대규모인 터라 이런 관념은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목장 교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교회의 대형화로 인해 놓칠 수 있는 공동체성을 붙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목장 교회 출석을 안 하며 지구촌교회 교인이라 말하지 말라”던 그의 언성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돕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등 공익사업에 정력을 쏟는 모습은 제 배 불리는데 급급한 대형교회의 이미지를 씻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납치된 분당 샘물교회 의료봉사단이 풀려나자 석방 협상 과정에서 국가가 금전적 손해를 나누겠다고도 했습니다. (그 후속 과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교회가 온 사회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할 때 그의 목소리는 참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위로가 됐습니다.) ‘돈 바라는 목사’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퇴임하며 자신에게 부여된 주택, 재산을 모두 교회에 내놓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10명의 의인이 아쉬웠듯, 한국의 대형교회에 이런 목사가 10명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보다 앞서 리더십 교체기를 거친 광성교회, 소망교회는 여전히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사이에 틈바구니에서 교인들이 숱한 번민과 갈등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실험, ‘훌륭한 원로목사 되기’의 결과가 주목됩니다. 부디 성공해, 후배들이 헌사(獻辭)한 ‘한국의 스펄전’이라는 명성이 더욱 빛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