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산정현교회

1936년 4년 동안 산정현교회를 담임한 송창근이 사임하자 산정현교회는 곧 후임자 물색에 나섰다. 산정현교회 당회원들과 교인들은 송창근을 통해 꼭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목회를 잘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래서 후임자는 외국에서 유학을 한 유학파여야 한다는 원칙은 갖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 유학을 다녀온 이들이 갖는 한계를 발견하고 국내에서 수학한 사람 중에서 적절한 후임자를 찾았다.

다만 앞으로 전개할 신사참배의 강요 앞에 당당히 맞설 목회자여야 한다는 한 가지 원칙은 분명했다. 주기철의 산정현교회 부임은 시대의 요청이었고，하나님의 섭리였다. 1936년 산정현교회에 부임한 주기철은 1944년 4월 옥중에서 순교할 때까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앞에 당당하게 맞섰고，이 기간 동안 산정현교회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보루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1936년 주기철 목사가 산정현교회 담임으로 부임한 후부터 1940년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의결하고 배도의 길을 걷기까지 5년간은 참으로 회고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역사였다. 1936년 천주교가 신사참배를 수용한 후 1937년 감리교가 그 뒤를 이었고，다시 1938년 9월 제27차 총회에서 장로교마저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산정현교회와 주기철 목사는 끝까지 참배를 거부하며 맞섰다.

1. 주기철 목사의 산정현교회 청빙 과정  

전체 당회원의 동의를 끌어내고 임시 당회장 박형룡 박사와 전 교인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김요나는 산정현교회가 후임자를 물색하는 과정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936년 4월 송창근 목사는 산정현교회 당회장직을 사면하였다. 이때의 교회는 단 하루도 교역자를 공석으로 둘 수 없는 실정이라 당회원들은 후임자 물색에 몹시 고심하고 있었다. 당시 시국의 추이는 신사참배 문제가 본격적으로 강요되는 실로 어려운 시기였으므로 교회는 우상 앞에 굴복하느냐 일제에 목숨 걸고 항거 하느냐 하는 생사의 기로를 걸어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당회원들은 그 때문에 일제의 신사참배와 맞싸울 수 있는，민족적으로 항일의 사람，신앙적으로는 복음적인 목회자여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팔도강산의 유명한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찾기 시작했으나 산정현에 적합한 목회지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산정현교회는 송창근 이후 교세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강규찬 목사가 산정현교회를 사임하고 송창근이 맡으면서 줄어들기 시작한 교세는 1936년 송창근이 사임하자 더욱 줄어들었다. 당회로서는 속히 후임지를 물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6년 6월 당시 김인서는 산정현교회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실목(失牧)한 산정현교회에는 아직 후임(後任)을 청(請)하지 못하야 교인출석(敎人出席)이 현저(現著)히 주러젓다. 교회(敎會)에 목사(牧師) 있슬 때보다 목사 업슬 때에 더욱 목사의 필요(必要)를 감(感)하게 된다. 사람은 만흔 것 갓흐나 정작 기인(其人)을 구(救)하랴면 구인난(求人難). 경남 주기철 목사{慶南 朱基微 收師)를 교업중(交涉中)에 이스니 일우어지면 조 켓습니다.>

교인 출석이 현저히 줄었다는 김인서의 평가는 정확한 것이었다. 강규찬 목사가 사임한 후 불과 수년 만에 산정현교회는 그 옛날의 영광을 잃어 간 것이다. 숫자가 교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1천여 명의 피세가 불과 몇 년 만에 1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면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산정현교회는 시급히 후임자를 찾아야 했다.

훌륭한 후임을 기다리는 것은 산정현교회 교인은 물론 평양지역의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도 간절히 원하는 바였다. 산정현교회는 시대 앞에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지도자를 찾았다. 신사참배 강요가 몰아치게 될 것을 예견하고 일제 항거 앞에 당당하게 맞설 목회자를 찾기 원했던 것이다. 김인서가 신앙생활에서 밝힌 대로 당회는 경남 마산 문창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주기철 목사를 염두에 두었다.

부산 초량교회와 마산 문창교회 목회를 통해 목회 리더십을 인정받은 데다 이단문제와 신사참배 문제에 있어서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주기철은 산정현교회가 탐낼 만한 인물이 갔다. 이미 그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고난의 시대 한국교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를 강력하게 추천한 사람은 임시 당회장 박형룡이었다.

<임시 당회장이었던 박형룡 목사는 마지막으로 무거운 입을 열었다. “길선주 목사가 가신 뒤 그 유업을 이어 보수할 이는 주기철 목사가 가장 적임자이며，그리고 지금 경남노회에서 신사참배 반대를 가결시켜 놓고 계속 혼자 투쟁하고 있는 이도 바로 주 목사이니 산정현교회가 찾고 있는 인물이 아니오? 이제 나이 40이지만 그 분은 패기가 있고 설교를 아주 잘합니다."

박형룡 목사의 주기철 목사에 대한 소개가 있은 후 당회원들은 이제 겨우 마흔밖에 안 된 젊은 목사가 일제하의 이 험난한 목양의 길을 굽히지 않고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을까 염려하고 만일 일제의 탄압에 꺾이기라도 한다면 산정현교회는 물론 당회원인 자신들의 면목이 어떻게 되겠느냐로 의견을 나누었다. 이때 박형룡 목사는 당회원들의 염려하는 소리를 다 듣고 난 후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쉽게 항복할 인물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주기철 목사는 오산학교 출신입니다” 박 목사가 이렇게 말하자 유계준 장로는 “오산 출신이라! 그러면 조 장로가 알겠구료” 조만식 장로는 그제야 주기철 목사는 자신이 아끼던 제자라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알 알디，참 그는 총명하고 신앙에 뼈대가 있디” 평소 당회에서 발언을 별로 하지 않는 조 장로이지만 이 말엔 상당히 무게가 있었다.

거기다가 그분을 우리 교회 후임자로 모시면 어떻겠느냐고 박형룡 목사가 묻자，“그렇게 합시다. 아주 똑똑하외다. 괜찮을 거요” 하며 거들었다. 이날 당회 결의는 김찬두 장로와 홍정락 장로가 청빙위원으로 마산에 내려가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실제로 그런 대화가 당회에서 오갔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임시 당회장 박형룡 박사나，대부분의 당회원들이 소양 주기철 목사를 산정현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기를 원한 것은 사실이다. 산정현교회가 주기철 목사를 섭외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그가 이단과 자유주의 앞에 분명한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송창근과 김재준 채필근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산정현교회로서는 또다시 이 일로 어려움을 겪고 싶지 않았다.

둘째，뛰어난 영성과 경건에 기초한 그의 힘 있는 메시지다. 주기철은 깊은 기도와 경건이 어우러진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고 교인들에게 대단한 도전과 감동을 주었다. 셋째，신사참배의 도전 앞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변호하려는 태도였다. 신사참배의 도전이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에서 평양교회를 이끌어 갈 차기 지도자는 신사참배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2. 점차 거세지는 신사참배 도전

한국교회사를 한 번이라도 연구한 이들이라면 신사참배 문제는 1930년대 접어들어 한국교회가 만난 최대의 위기였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국에 신사를 건립하며 용의주도하게 신사참배를 준비해 온 일제는 1931년 6월 만주사변이 발생하고부터 신사참배를 노골적으로 강요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일제의 깊은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혹은 거울로, 혹은 구술로, 혹은 칼로…… 모양을 만들어 모셔 두고 신이 여기에 있다 하여 이에 대하여 숭배하며 또는 기도함은 모두 우상숭배”라며 일본의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을 가하다 정간을 당했다. 하지만 동아 일보는 일제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속간하자 1925년 3월 18일 사설에서 신사참배 강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사에 대하여 일본인이 “숭고한 경의를 표하는 것은 일본민족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일본인만 위하는 신사에 대하여 일본인 이외에 민족이 일본인과 같은 감정으로 신사 존중하기를 바라지 못할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고 외쳤다. 일제는 누누이 신사가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고 단지 국가에 대한 예식 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동아일보는 신사참배가 단지 국가에 대한 예식에 불과하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제의 검열과 통제 아래 언제나 폐간의 위협을 받고 있는 언론이 국민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일하게 일제에 대항할 조직은 교회밖에 없었다. 장로교 총회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앞에 결집된 의견을 피력했다.

1932년 9월 17일 일제가 평양의 “만주출정용사 위령제”에 미션스쿨 전 학생들이 참배할 것을 지시하자 총회는 “기독교학교 생도는 타종교식전에 참여함을 불허(不許)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총회적인 차원에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선 것이다. 총회는 1935년 정인과，염봉남，이인식，정규명，관신근，이학봉，오천영을 연구위원으로 임명하였다.

일제의 신사참배 앞에 소양 주기철 목사는 분명한 입장을 피력했다. 신사참배의 도전 앞에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었다. 그는 성서대로의 신앙，성서가 가르치는 대로의 사역을 통해 암울한 역사적 현실을 넘어 조국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직시하였다. 소양에게 불의와의 타협은 곧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신앙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교회가 이런 역사적 섭리를 거슬러 올라가 타협한다고 해도 소양만은 결코 그럴 수 없었다. 1934년의 설교，“죽음의 준비”는 이런 소양의 신앙적 결단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매일 매일 자기를 쳐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복종하는 것，불의한 시대에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죽음을 미리 준비 하는 것，조국의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이 민족을 힐f한 하나님의 섭리를 역사적 혜안으로 관조하는 것，바로 이런 것들이 진정한 이 시대의 예언자 의 모습이리라.

1935년 5월 1일부터 5일까지 약 200여 명의 장로교 목사, 선교사들이 일제 총독정치의 식민화 정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금강산에서 모였다. 여기서 소양은 “예언자의 권위”라는 설교를 통해 예언자적 혜안을 가지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의 횡포에 항거했다. 구약의 참 선지자들은 불의의 세력 앞에 타협하지 않고 문제들을 고발했던 시대의 선각자들 이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황폐를 고발한 구약의 엘리야가 그랬고，“평안 하다，잘되어 간다고 집권당국에 아부하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당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대를 고발하고 경계했던 예레미야가 그랬으며，“생살여탈의 대권을 잡은 임금 앞에서 그 죄를 책망”했던 세례 요한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기독교 2천 년의 역사 속에 불의를 불의라고 외쳤던 일사각오의 신앙인들，피의 여왕 메리 앞에 굴하지 않았던 존 낙스，교황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성경과 신앙의 양심을 따라 종교개혁운동을 전개했던 마르틴 루터，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실현했던 존 칼빈，모두 시대에 살면서 당대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들이었다. 일본 천황의 숭배 곧 그것은 배도의 길이며，망국이라고 외쳤던 주기철의 용기，그것은 엘리야, 예레미야 그리고 세례 요한의 용기，바로 그것 이었다.

경계의 태세를 늦추지 않으며，목사 수양회를 감시하던 일제 경찰관이 “중지"라고 외치자 소양의 설교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소양은 “천황제의 사신 우장성，그리고 그 국체의 독신성(灌神性)을 고발하는 하나님의 종의 자세，거기에 비로소 진실한 목사, 충실한 예언자의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교계 지도자들과 일경 앞에 천명해 모인 이들의 의지를 새롭게 결집시켰다.

1933년 5월 조강지처 안갑수와 사별한 소양은 2년 후 1935년 11월 우여곡절 끝에 그가 시무하던 문창교회의 집사로 있던 강직한 여인 오정모와 재혼하고，바로 그 다음 달 평양신학교 사경회 강사로 초빙 받아 후배들에 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순교자의 결단을 담은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1935년 12월 평양장로회신학교 사경회 때 한 “일사각오”의 설교는 소양의 예언자 적 혜안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설교다.

예수를 따라서 일사각오，타인을 위한 일사각오, 부활진리를 위한 일사 각오，그것은 예수 안에서의 죽음이 진정한 생의 출발이며，부활을 위한 입문임을 선포한 것이다. 예수를 버리는 것이 죽는 길이며，오히려 예수를 따라 죽는 것이 “정말 사는 것”이며，죄인을 위해 죽기까지 피 흘리시고 자신의 생명을 주신 그 남을 위한 희생，그것이 바로 이 시대 우리가 따라야 할 가르침이다.

죽음 저 너머에 보여 주시는 부활의 희망 바로 그것이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이유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설이 그리스도 생애 속에서 살아 있는 진리로 승화되었듯이，죽음과 그 너머의 부활이 소양의 전 인격 속에 완전히 용해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 박용규 목사 저 '평양 산정현교회' ⓒ생명의말씀사

소양은 예수의 말씀 그대로를 자신의 주어진 실존 속에서 행동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남을 위한 희생”을 본받아 타인을 위한 일사 각오의 신앙구현，불의의 도전 앞에 순교를 각오하고 외치는 진리의 소리，그것은 이 시대를 찬란하게 여명하는 광야의 소리이며，잠들어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각성시켜 하나님의 섭리를 조망하게 만드는 이 시대의 나팔 이었다.

그의 순교자적 결단의 신앙은 평신의 학생들만 아니라 그곳에 참석한 평신의 교수들，특히 박형룡에게 엄청난 도전을 주었다. 이 소식이 산정현교회 당회원들에게도 알려졌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형룡이 볼 때 산정현교회를 지켜 줄 적격자는 주기철 밖에 없었다. 박형룡은 이미 3년 전 경남노회 신학수양회를 통해 소양이 이단과 지유주의 사상에 대해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복음적인 신앙의 목회자임을 확인했었다

또한 최근의 초량교회와 문창교회에서의 목회，그리고 총회에서의 그의 지도력으로 이미 교계에 잘 알려진 차제에 산정현교회 후임자로의 추천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당회에 산정현교회를 살릴 수 있는 유일 한 지도자가 바로 주기철 목사라며 그의 청빙을 강하게 권했던 것이다. 몇 년 전 교역자 수양회에서 다시 평신의 사경회에서 소양의 예언자적 혜안과 순교자적 결단，탁월한 인격，그리고 보수 신앙의 뿌리를 재확인한 박형룡은 몇 개월 후 소양에게 한 통의 편지를 발송했다.

1936년 3월 한 달간의 일본 순회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소양에게 평신의 박형룡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송창근 목사가 사임했으니 후임문제를 상의했으면 좋겠다며 산정현교회 담임목사로의 청빙을 타진하는 편지였다. 산정현교회로부터 청빙 요청을 받은 소양은 그를 향한 거룩한 부르심으로 받아들이고 주저하지 않고 문창을 떠나 평양으로 올라왔다.

박용규 목사의 저서『평양 산정현교회』(생명의 말씀사, 2006)에서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