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에 능하지 못하다. 그래서 설교나 무슨 특강을 하게되면 ‘습니다.’라는 접미사까지 원고로 작성해야 마음이 놓인다. 때로 간단한 메모만 들고서도 달변(達辯)에 가까운 설교나 특강을 하는 분들을 만나면 너무나 부럽다. 여하튼 원고를 꼬박 작성하다 보니 엄청난 설교 노트나 원고가 서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은퇴한 후에 쌓인 원고를 살펴보면서 목회 40년 동안 세 번의 큰 설교 원고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는, 농촌교회(가곡교회)에서 시작했던 초년 목회 시 작성했던 설교 원고였다.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대학노트 6장에 썼던 원고가 지금도 서재에는 보관되어 있다. 처음에는 정성을 들여 쓴 글씨체가 중간부터는 휘갈인 글씨체로, 후반부에는 나만이 겨우 알아볼 정도일 정도로 필체가 변하고 있다. 그 설교 원고를 보노라면 원고를 작성하다가 너무 팔이 아프기도 한 경험, 어느 때는 설교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을 내며 몇 번인가 찢은 기억도 떠오른다.

어느 설교 원고에서는 만년필로 사정없이 그어버린 부분도 보이고, 원고내용을 수정하기 위해서 다른 종이에 수정하여 쓴 글을 오려 붙인 부분도 보인다. 한 마디로 설교준비하면서 고투(苦鬪)했었다는 아픔이 상처처럼 남아 있다. 그런 틈틈이 책을 써내고, 여기저기서 청탁한 원고를 써서 보냈다는 것은 지금 생각에도 대단히 억척스러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게 교육전도사 2년(주일 오후 설교), 담임교역자로서 5년 등 7년 동안 작성했던 설교노트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음으로, 1975년 35세 나이에 농촌목회를 청산하고 홍익교회에 부임한 후에 작성한 설교 원고이다. 처음에는 거의 농촌에서 작성했던 설교 원고를 다시금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달라진 것 있다면, 농촌교회에서 사용했던 대학노트는 볼품이 없는 대신 서울에서 사용한 노트는 상당히 두껍고 품위가 있었다는 점일 뿐이었다. 또한 만년필도 제법 고가품을 사용하게 되니 설교 작성에도 제법 재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기본 골격을 그대로 둔 채 많은 자료를 보충하여 설교를 작성하니 나름대로 제법 마음에 드는 설교가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농촌목회 때와는 달리 영력을 높이기 위해 기도하는 시간들이 많아짐으로 강단에 올라 설교할 때는 교인들 중에 감동을 받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1991년도까지 설교원고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물론, 많은 기독교 서적들을 읽거나 집회에서 말씀을 듣고 감동받은 부분들을 설교로 작성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1991년 본당화재 후, 복구공사에 이어서 1992년 증축한 후에 4층에 당회실 겸 큰 서재를 사용하게 된 후 은퇴할 때까지 작성한 설교 원고이다. 그 전까지는 거의 만년필이나 볼펜을 사용하여 작성한 원고이었으나 1992년부터는 컴퓨터로 설교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전에도 타자기나 워드프로세스를 사용했지만, 문서 작성에만 사용하고 설교 원고 작성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었다. 더 불편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사용한 후부터는 설교나 청탁원고 작성에 날개를 단 느낌이었다. 아무리 좋은 만년필일지라도 컴퓨터로 작성하는 것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만년필로 작성한 원고는 수정이나 삽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다 원고를 작성하고 나서 앞에 부분을 뒤로 옮기려 해도 오려 붙이지 않고는 수정할 수 없다. 그러나 컴퓨터는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어느 부분을 수정이나 삭제하거나, 혹은 인용문이나 예화를 삽입할 때도 순식간에 작업할 수 있으니 이처럼 편리한 기계가 어디 있으랴.

더욱이나 컴퓨터를 사용하기 전에는 무슨 자료를 찾으려면 온 서재를 뒤지다 싶이 고생을 했으나 컴퓨터로는 쉽게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더 요령을 부린다면 다른 이의 설교도 마음대로 인용하여 내 식으로 편집할 수 있으니 너무나 편리한 세상이 된 셈이다. 그런데다가 온갖 자료가 담긴 cd나 usb, 혹은 data station들로 인해서 더 이상 많은 책도 필요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만큼 컴퓨터는 우리 목회자들을 너무 편이하게 해주는 동시에 게으르게 만드는 기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기저기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너무 고맙게 만드는 것이 컴퓨터이다. 과거에는 어디 글을 써서 보내려 해도 반드시 원고지에 옮기어야 한다. 글을 쓰다가 마음에 안 들거나 중간에 삽입할 내용이 생기면 상당 부분 썼던 원고지라도 버리어야 하므로 30매나 40매 정도의 원고를 쓸려면 폐지가 엄청나게 나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탈고한 후에도 원고를 우송하려면 우체국까지 다녀와야 하는 번거러움이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를 사용한 후에는 초안이나 자료만 준비되면 30매 40매의 원고 작성을 너무나 쉽게할 수 있게 되었다. 원고 우송도 이메일로 순식간에 보낼 수 있다. 내가 20대나 30대 나이에 지금처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아마 20여권 이상의 책도 저술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여하튼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던 1992년부터 은퇴하던 2007년 말까지 과거에 손수 써서 작성했던 설교 원고들을 모두 컴퓨터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로 재구성하게 된 것이다. 일일이 컴퓨터로 작업하면서 어느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고 어느 설교는 비슷한 본문의 다른 설교를 함께 편집하기도 하면서 한편의 작품을 만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성경 본문을 다시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여 빈약했던 부분들을 보강했을 뿐 아니라, 이미 지나간 시사(時事)나 마음에 들지 않는 예화는 전부 삭제하고 그 때마다의 시사성 자료나 설교에 적합한 예화를 삽입함으로 설교의 신선도를 나름대로 높였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