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로 치킨, 피자 등을 배달하던 10대 아르바이트생의 교통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의 폐단이 아닐까 한다. 며칠 전 한 조간신문에서 소개한 배달 아르바이트생 이야기를 소개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3년째 서울 신정동의 한 치킨 전문점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19살 김 모 지난 월요일 저녁 8시쯤 치킨 배달을 나갔다가 신정동사거리에서 택시와 부딪쳤다. 사고로 택시는 오른쪽 앞 범퍼가 찌그러졌고 김 모 군은 팔목과 발목을 다쳤다. 헬멧을 쓰지 않았더라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김 모 군은 “배달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직접 전화를 걸거나 배달 온 아르바이트생에게 짜증을 낸다”고 말했다. 가게 주인도 속도전을 강조한다. 김 모 군은 “사장이 헬멧도 챙겨주지 않고 그냥 나가라고 말하는 업소도 있다”며 “손님이 아니라 사장 때문에 빨리 간다고 할 정도”라고 했다. 또 ‘30분 배달제’를 내세우는 피자 전문점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배달이 늦으면 손해만큼 월급에서 깎여 신호나 속도 위반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헬멧 미착용이나 교통신호 위반 벌금? 전부 아르바이트 학생 몫”이라고 한다. 지난 일요일, 예비대학생 김 모 씨, 지난해 12월 최 모 씨, 배달하다가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한국의 ‘빨리빨리’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속도의 대명사다. 양면의 평가가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동력이라는 찬사가 있고, 삼풍백화점·성수대교의 비참한 붕괴를 부른 조급증에 대한 폄하도 무성하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빨리 배우는 말이 “안녕하세요”고 다음이 “빨리빨리”라고 한다. 단어다. 양반 문화가 지배하던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느긋함과 여유’가 한국인의 정서였지만, 1960년대 이후 ‘초고속 압축성장 시대’ ‘개발 시대’가 진행되면서 조급함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세계인의 인식은 갈수록 긍정보다는 부정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교통안전공단에서 발표한 자료인데,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꼽은 ‘빨리빨리 베스트 10’이다. 이런 사례가 꼽혔다. 우선 “커피 자판기에서 컵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린다”거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와 추격전을 벌인다”는 사례가 눈에 띠고, 여기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닫힘’ 버튼을 누른다”거나 “영화의 마지막 스크롤이 올라가지 전에 나간다”는 등 우리가 생각해도 고개를 끄떡일 일들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양은 냄비처럼 빨리 끓고 식는 것에 빗대 ‘냄비 근성’이라고도 표현하는 ‘빨리빨리’ 문화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며 서두르는 바람에 적잖은 폐단을 낳고 있다. 앞서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이야기를 했지만, 이보다 앞서 ‘가장 빠르고, 가장 저렴하게’ 건설됐다고 자랑하던 경부고속도로는 유지·보수비가 공사비의 몇 배를 넘는 날림 공사로 드러나면서 ‘빨리빨리’ 후유증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됐다. 엉뚱한 것 같지만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사건 때에 AP통신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같은 해외 언론들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최근 5년간 오토바이 사고 산업재해자가 7081명에 달한다는 노동부 통계가 나왔다.

긍정적인 성과를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세계 시장 1등 품목 121개를 보유한 나라가 됐고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 경제규모 15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것도 ‘빨리빨리’주의, 누군가는 ‘빨리빨리즘’이라고 하던데, 이게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작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관련 기사를 보다가 특유의 '빨리 빨리 문화'와 '대담한 성격'이 한국을 세계 정상급 스포츠 강국으로 키웠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 야구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고, 양궁도 잘하고, 수영도 잘하고, 피겨스케이팅도 잘 하는 나라, 많지 않다.

세계일류 국가가 되려면 물질적인 면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선진화를 이뤄야 할 텐데, 속도지상주의는 개선해야 할 과제 아니겠나. 외국 사례를 소개한다. 먼저 미국. 디즈니랜드의 줄서는 대기 시간은 길기로 악명이 높다. 한 시간은 비교적 짧은 축에 속하고, 두 시간 심하면 세 시간까지 길게 서 있다. 미국은 예약의 나라라고 하지? 당장 아파 죽겠어 병원에 전화를 하면 빨라야 일주일 보통은 열흘 정도 후로 예약을 잡아주는 게 흔한 예이다. 물론 의료보험 적용 문제 같은 복잡하고 골치 아픈 절차 때문인 면도 있지만 말이다. 주식시장에서도 보면 초단기 투자 사례가 우리만큼 흔하지 않다. 확실한 우량주식을 사서 수(십)년 이상 우직하니 묻어두는 장기투자를 선호한다. 단타에 울고 웃는 우리네 주식시장의 일희일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슬로시티 운동도 주목받는 새로운 흐름 가운데 하나이다. 1999년, 이탈리아 중북부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비롯됐지? 자판기, 냉동식품, 패스트 푸드점, 백화점, 할인 마트가 없어지고 주민들은 토속 음식들을 먹고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탄다. 14,000여 주민들 삶을 바꿔놓았던 이 운동은 전 유럽으로 전파됐고 현재 10개국 90여개 도시가 슬로시티 국제연맹에 가입했다. 여기 파올로 시장이 한 말이다. “빨리빨리 살 것을 강요하는 바쁜 현대생활은 인간을 망가뜨리는 바이러스다.” 우리의 일터에서는 매일 260명이 다치고 이 중 6명이 목숨을 잃는다. 한 해 9만7000명이 다치고 2100명이 숨진다. 요즘엔 4대강 현장에서 이런 과속 질주현상이 뚜렷하다. 다 잘 살자고 이러는 거 아닌가? 죽음에 이르는 과속, 생각을 달리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