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컨슈머(black consumer)', 이른바 '악덕소비자'가 요즘 화제이다. ‘악덕소비자'는 '구매한 상품을 문제 삼아 피해를 본 것처럼 꾸며 악의적 민원을 제기하거나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를 이르는 말이다. 주로 식품·유통업계에서 등장하는 악덕소비자는 식품이 변질됐거나 이물질이 들어갔다면서 업체에 보상을 요구하는 일을 흔히 저지르지?

제품에 하자가 없는데도 별 이유 없이 환불이나 교환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유형도 있다. 근거 없는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면서 반품·환불을 넘어 보상금을 요구하는 소비자도 악덕소비자로 분류된다. 악덕소비자는 기업의 매출과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터무니없는 민원으로 인해 판매 관리비가이 증가해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되는 것은 물론, 선량한 소비자들까지 악덕소비자로 의심을 당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 연말부터 이런 소비자 유형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휴대전화가 폭발했다며 허위 신고를 해 돈을 뜯어낸 한 남성이 법정에 서게 됐다. 사연은 이랬다. 지난해 5월,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이 모 씨는 한 소비자 단체에 피해 신고를 접수했다. 두 달 전 구입한 휴대전화가 충전 도중 갑자기 폭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언론에까지 보도돼 널리 알려졌고, 기업 이미지가 손상될 것을 우려한 삼성전자는 500만 원에 가까운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 사람,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사옥 등에서 자신이 폭발의 피해자라는 1인 시위를 무려 47번이나 벌였다. 하지만 이는 모두 보상금을 노린 이 씨의 자작극으로 드러났다. 멀쩡한 휴대전화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 마치 폭발한 것처럼 꾸민 거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명예훼손과 사기 혐의로 이 씨를 구속 기소했다.


얼마전에는 쥐식빵 사건도 있었다. 지난달에도 제빵 회사를 비방할 목적으로 식빵에 쥐를 넣어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김 모 씨가 구속 기소된 바 있다. 베이커리 업체의 최대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경쟁업체 빵집을 골탕먹이려 했다. 그러나 피해는 전국의 모든 제과점으로 번졌고, 결국 김 모 씨는 형사 처벌과는 무관하게, 몇몇 업주로부터 손해배상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서울중앙지법은 그 경쟁업체 빵집에게 10억의 배상금을 물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두 사람의 경우처럼 사기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해 집요하게 업체에 따지는 소비자도 있다. 이들은 일반 소비자들과는 달리 제품의 사소한 하자까지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거칠게 항의하고,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피해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들까지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다. 소비자 주권 시대이니 말이다. 따라서 악덕소비자가 아닌 까다로운 소비자에 대한 분리 대응이 필요하다. 까다로운 소비자들 가운데 순수한 의도로 불만을 제기했다가 기업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나쁜 소비자’로 돌변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소비자 중에 악덕 소비자가 있다. 대표적으로 환불 반품형이 있다. 일부 아웃도어 브랜드는 단체고객을 대상으로 10~20% 할인행사를 벌이곤 한다. 이때 고가의 고어텍스 재킷을 20~30벌 구입한 사람, 백화점에 입점한 동일브랜드 매장을 찾아다니며 환불받아 차익을 챙겼다. 어떤 사람은 단체구매를 들키지 않기 위해 영수증을 지참하지 않고, 백화점 매장을 찾아 “바보 같은 마누라가 똑같은 옷을 또 사왔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매장에선 영수증이 있어야 환불이 된다고 설득했지만 매장 내에서 큰소리를 치며 소란을 피우는 방식으로 환불을 받아냈다.

이런 소비자 앞에서 알면서 고개 숙여야 하는 기업의 고충은 크겠다. 기업 입장에서 기업 이미지 악화 때문에 이들 악성 고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그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악덕 소비자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 그 피해는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가는 것이다.

결국 없을 수 없는 까다로운 소비자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한 기업들의 대비 필요할 것 같다. 기업은 까다로운 소비자를 나쁜 소비자나 악덕 소비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직원들에게 민원 응대와 관련된 법률지식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하고, 임기응변 처방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해결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때그때 다르게 원칙 없이 처리한다면 까다로운 소비자를 악덕 소비자로 만들 수 있다. 악덕 소비자는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까다로운 소비자는 제품불량률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한편 악덕 소비자를 부추긴 것을 기업의 당당하지 못한 경영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논란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식약청·소비자보호원 등 정부 기관이 사건의 공개 여부부터 시작해 진상 조사, 보상 등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피해 소비자가 해당 업체에 직접 접촉해 금전적인 보상만 받고 그치면 근본적인 해결이 안 돼 같은 사건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악덕 소비자가 중립적인 기관을 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인터넷 등에 '이물질 사건'을 허위로 제기할 경우, 해당 업체는 막대한 피해를 본다는 말이다. 은폐가 상책이 아니다. 당당한 처신, 당당한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