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세속 정부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성경을 기준으로 세속 정부를 가타부타하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게 본다면 눈으로 보이는 유형의 교회 공동체를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성경을 연관시켜 적용시킬 수 있는 단위는 사라지게 된다. 가족과 친척 중에도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이 존재하는 이상, 기독교적인 적용을 할 수 있는 집단은 남아 있지 않으며, 직장은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결국 성경의 말씀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은 한 사람 한 사람 개별 그리스도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밖에는 없어지게 되고 만다. 실제로 성경의 말씀이 이렇게 개인화된 것이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적용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을 좁디 좁은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의 창조주시라는 구약 성경의 고백을 오늘 우리의 고백으로 받을진대, 하나님의 주권과 원칙이 다다르지 않는 영역이란 없다.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권세 아래 놓여 있다면, 마땅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현실을 분석하고 평가하며 개선해야 할 것이다.

성경의 말씀을 개인의 영역으로 제한시키다 보니,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어차피 세상은 악하기 마련이고, 부패하여 심판으로 예정되어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위해 할 것이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오직 한 사람이라도 그 썩어져 가는 세상에서 빠져 나오도록 돕는 일, 달리 말해 전도해서 빼오는 일이 있을 뿐이다. 세상을 불타고 있는 집으로 여기는 한, 한 사람이라도 건져 내기 외에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종종 개혁적이고 예언자적인 소리를 외치는 이들 가운데도 여전히 세상을 불난 집으로 보는 견해는 고스란히 견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이 불타 없어지고 썩어질 것으로 보는 한, 그 집을 불타게 만든 그 집 주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일이지 않을까. 모든 것이 필요 없고 모든 논쟁도 필요 없고 어서 가서 한 사람이라도 건져내고 볼 일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문제는 세상을 불타 없어질 곳으로 여기는 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이 것이 세상이 곧 썩어 없어질 것이기에 세상을 개선하려는 모든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설 것이다(사 40:8). 세상에 있는 어떤 권력도 어떤 문명도 절대화시켜서는 안되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약속되고 선언된 것은 이루어질 것이며 영원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 땅에서 참으로 이루고 애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러 준다.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다면 아무리 강고한 체제라도 무너질 것이며 무너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체제를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세상을 추구하고 바라는 이들이기에, 누구보다도 그릇된 체제에 대해 강력하게 맞서고 거부해야 하는 이들이다. 자본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그 어떤 체제도 절대화될 수 없다.

신앙인들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역이며, 절대적인 것이 없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선다는 것을 기억할 때 교회이든 정부이든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평가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처음 본 발제자에게 제시된 주제는 “장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성서적 평가”이다. 여기서 굳이 대통령의 이름 앞에 “장로”라는 직함이 붙은 것은 그가 그리스도인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우선 제기되는 문제는 장로 대통령과 비기독교인 대통령 사이에 평가의 기준이 달라지는가 일 것이다. 원칙적으로 장로이건 아니건, 대통령을 평가함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고 할 것이다. 대통령이 어떤 종교를 가졌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대통령을 평가하는 것은 성경의 기준에 입각하여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장로”라는 직함은 대통령으로서 그의 통치가 그가 지닌 기독교적 신념과 얼마나 부합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데에 효과적이라고 할 것이다.

현 정권에 대한 성서적 평가라고 하지만, 여러 제약상 이 글이 그에 대한 전면적이고 체계적인 평가를 진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정부라는 점에서도 그러한 평가는 조금 이르기도 하다. 아울러 이를 위해서는 여러 통계 자료들이 필요 된다는 점에서도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한 발제자의 평가는 인상에 대한 비평을 넘어서기 어려울 듯 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기독교적인 안목 위에서 현 정권에 대한 평가들이 나름대로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원칙적인 면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재고해 보려고 한다. 즉, 정권 혹은 통치자, 통치 세력을 평가하는 성서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성서적 기준”이라고 표현했지만, 발제자의 여건상 구약 본문으로 국한하여 살펴보는 것도 이 글의 또 다른 한계임을 밝혀 둔다.

1. 거룩한 삶

하나님께서 그 부르신 백성들에게 명령하시는 삶은 한 마디로 “거룩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

애굽의 노예이던 이들을 건져 내신 하나님께서 이 새로운 공동체에게 당부하시고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부름 받은 이들의 거룩한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 레위기 19장을 살펴보면, 이러한 거룩한 삶은 단지 제사나 의식과 연관된 측면만이 아니라 농사와 이웃 관계의 측면을 포함한 삶의 전 영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19장9-10절은 농사의 수확과 연관된 거룩에 대해 일러주고 있다. 수확할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이 소유한 밭과 포도원이지만, 그 한 모퉁이는 수확하지 않은 채 남겨 두어야 하며, 수확할 때에 흘린 것들은 다시 줍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 땅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땅 없는 가난한 이스라엘과 그 땅에 몸 붙여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남은 수확을 하고 떨어진 것을 주워 그들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소유의 한 모퉁이를 땅 없는 이들을 위해 남겨 두는 것을 가리켜 레위기 19장은 동정이나 자선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거룩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확할 때의 거룩은 기도하고 수확하기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한 모퉁이를 남겨 두는 것에서 드러난다. 이 점은 15절에 있는 재판에 대한 규례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재판의 상황에서의 거룩은 무엇인가? 그것은 재판시에 해당된 사람들이 가난하건 세력 있건 그들의 배경이나 외모, 힘과 부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공의”로 재판하는 것이다. 구약 성경은 여러 곳에서 재판에서 내려져야 할 공정한 판결을 구부러지게 만드는 것이 외모와 뇌물임을 명시하고 있다(신 1:16-17 16:18-20). 당사자와 재판장 사이의 어떤 관계 – 혈연, 지연, 학연 …… - 도 이 재판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외모”를 보지 말 것의 실질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재판장에게 필요한 거룩, 하나님께서 재판 당사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거룩은 외모와 뇌물에 좌우되지 않는 공의로운 판결로 나타난다. 레위기 19장의 마지막 규례인 35-36절을 이 점을 확장시켜 적용하고 있다: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위 구절들이 다루고 있는 것은 상거래에 있어서 도량형 사용에 대한 것이지만, 첫머리에 “재판할 때”라고 시작을 하면서 15절을 연관시키고 있으며, “불의를 행하지 말고” 역시 15절에 있는 표현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즉 이 구절은 재판할 때 요구되는 거룩이나 상거래에서 요구되는 거룩이나 본질적으로 동일함을 표현한다. 재판시에 요구되는 거룩인 공의로운 판결은 상거래에서는 “공평한 저울”로 구현된다. 흔히 상인들이 물건을 사들일 때 사용하는 저울과 물건을 팔 때 사용하는 저울을 달리 하여 이익을 차지하였는데, 레위기의 말씀은 이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거룩은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동일한 저울과 추를 사용하는 것, 공평한 저울과 추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의 거룩은 장사하기 전에 기도하고 시작하고 장사하는 틈틈이 성경을 보며, 시간을 내어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그의 거룩은 공평한 저울, 공의로운 저울로 구현된다. 그리고 15절과 35-36절이 동일한 구조와 표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재판장이건 상인이건 상관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삶으로의 부름에 응답해야 하며, 그 거룩은 공의의 실현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려 준다. 누군가 올바르게 판결한다면 그는 착한 재판관이 아니라 거룩한 재판관이다. 누군가 상도덕을 바르게 지킨다면 그는 윤리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이다.

19장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제 우리의 주제인 통치 영역에 대해 생각해 볼 시점이다.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거룩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청와대의 주인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 교회는 일찍부터 청와대에서 찬송 소리가 울려 퍼지고 국사를 진행하기 전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시작하는 대통령과 국회 의원들에 대한 이상과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레위기 19장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들의 거룩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청와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응답해야 할 거룩은 매일 기도하고 성경 보는 것이 아니라, ‘공의를 실현하는 통치’이다. 그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순종한다는 것은 매일 전도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맡겨진 일들을 통해 공의를 구현하는 것에서 나타난다. 부연하자면, 공의의 실현이라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요즘 한국 교회의 참담한 실상들이 드러나면서, 거룩함을 회복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높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거룩 이해는 개인의 정결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면 통치자가 하나님을 닮는 거룩한 삶을 위해 실천해야 할 공의로운 통치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시편 72편이 알려 주고 있다.

2. 공평과 정의의 통치

시편 72편은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왕이 등극했을 때에 불려지는 찬송 혹은 기도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72편 전체를 기도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좀 더 세분하면 1절이 본연의 기도이고 2절 이하는 그 기도의 결과로 새로운 왕을 통해 이루어질 결과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다윗의 후예가 왕위에 올랐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슨 말로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인가? 달리 말해 새로운 왕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무엇인가?

1절은 새로운 왕에게 요구되는 사항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진술한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여기에서 “판단력”이라고 번역된 말은 히브리말로 “미슈파트”인데, 대개 개역개정판에서 “정의”로 번역되는 용어이다. 그리고 “공의”로 번역된 히브리말은 “츠다카”로, 앞에서 살펴본 레위기 19장에서 여러 번 쓰이던 단어이기도 하다. 즉, 새로운 왕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은 바로 “미슈파트와 츠다카”, 개역개정판의 일반적인 번역으로 하자면, “정의와 공의”이다.

그러면 정의와 공의로 왕이 통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절 이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내용도 왕의 정의와 공의의 통치, 그리고 그러한 통치의 결과 라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2절, 4절, 12-14절이 왕의 통치를 표현하고 있다면, 나머지 구절들은 그러한 통치가 이루어지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그려주고 있다. 우선 왕은 어떻게 통치하는가?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2절)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꺽으리로다”(4절)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12-14절)

위 구절들은 왕에게 임한 정의와 공의에 입각한 통치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 세 부분의 구절들에서 공통되게 발견되는 것이 “가난한 자”에 대한 언급이다. 특히 이 왕의 나라에는 가난한 자 밖에는 국민이 없기라도 한 양, 왕의 모든 통치가 이 가난한 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는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궁핍하게 된 이들의 자손을 돌보며, 그들의 생명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박하는 이를 꺽는 것 역시 왕의 중요한 책무이다. 이를 위해서 그에게 권력과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가난한 자 외에는 국민이 없기라도 한 양,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의의 공의의 통치의 결과는 어떠한가? 평강(“샬롬”)이 피조 세계에까지 미치고(3,7), 백성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며(5), 열방이 이 왕 앞에 나아와 엎드리게 된다(10-11). 그의 영역이 넓어지며(8), 경제적인 풍성함이 넘쳐나게 된다(16). 왕의 올바른 통치는 외교적 대외적 관계의 변화까지도 초래한다. 구약의 왕들은 끊임없이 힘있는 열방을 의지하고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지만, 본문은 정의와 공의의 통치, 가난한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통치야말로 올바른 외교관계를 가져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열방이 엎드리며 영역이 확장된다는 것이 제국주의적인 영토확장과는 무관하다는 것은 17절에서 언급하는 바,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왕의 통치로 말미암아 열방이 복을 받게 된다. 17절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이러한 왕의 통치를 통해 실현되었음을 보여준다.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내신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9)

여기서 “의와 공도”로 번역된 표현은 개역의 보다 흔한 번역을 따르자면 “공의와 정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은 12장1-3절에 소개된 땅과 자손의 약속, 그리고 그를 인하여 열방이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 의와 공도, 공의와 정의를 행할 공간과 주체가 필요하기에 땅과 자손을 주시며,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그렇게 살아갈 때에, 그들을 통하여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복이 미쳐지고 넘쳐나게 된다. 시편 72편에서 보듯, 정의와 공의에 입각한 왕의 통치는 뭇 사람들로 하여금 그로 인하여 복을 받게 한다는 점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요약하면 왕의 직무는 가난한 백성들을 건지고 구원하기 그리고 그들을 괴롭히는 압박자들을 꺽기 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하시며 궁핍한 자를 위해 정의를 베푸시듯이(시 140:12), 왕도 하나님이 주시고 맡기신 권력과 힘을 가지고 가난하고 궁핍한 백성을 위해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72편은 레위기 19장의 확장된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왕에게 요구되는 거룩은 하나님을 본받아 정의와 공의의 통치를 행하는 것이며, 여기서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가난한 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그들을 억압하는 이를 꺽는 것으로 구현된다. 그러할 때, 경제적인 풍성함도 그들에게 임하게 되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다른 나라들이 이 왕의 나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 복음의 전파와 확산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시편 72편은 가난한 자를 위한 통치 권력의 사용이야말로 통치자의 핵심적인 덕목이요 사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할 때, 경제적인 번성이 함께 임하게 된다.

3. 사례: 여호야김과 요시야

예레미야 22장은 다윗 가문의 왕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에 대해 실제의 예를 들어서 언급하고 있다. 우선 2-4절은 원칙을 제시한다: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말라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삼하 7:16). 하나님의 영원한 돌보심과 지키심은 다윗의 후손인 왕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의와 공의의 통치”를 통해서 성취되고 보존된다는 것을 위 예레미야 구절은 명확히 하고 있다. 그리고 정의와 공의의 통치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시편 72편의 내용과 동일함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이어 예레미야 22장은 당시 유대를 다스리던 여호야김의 통치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불의(직역하면 ‘공의가 없이’)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정의가 없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렘 22:13)

여호야김의 통치의 특징은 한 마디로 ‘정의와 공의가 없는 통치’이다. 그리고 정의와 공의가 없다는 것은 제대로 품삯을 주지 않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왕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국책 사업에서 제대로 품삯이 지불되지 않았다는 점 하나로, 그 왕을 가리켜 불의와 부정이라고 규정하며 화를 선포하는 예언자의 선언은 지극히 인상적이다. 정의와 공의는 버려둔 채, 이 왕이 힘쓰는 것은 대대적인 건설 사업이다: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렘 22:14).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의 아버지인 요시야를 언급한다: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2:15-16)

여호야김은 대대적인 국책 사업이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한다 여겼겠지만, 예레미야가 보기에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것은 정의와 공의의 통치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어김없이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는 것이며, 예레미야 구절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즉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단지 사회적 실천이 아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레위기를 따르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다.

덧붙이자면, 결국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의 후손 가운데 다시는 왕위에 앉을 자가 없으리라고 선언한다(렘 22:30). 다윗에게 주어진 영원한 언약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공의가 없는 통치로 인해 다윗의 왕위는 끝장이 나버리고 만 것이다.

4. 온 이스라엘적 관점과 평화

주전 722년 이래 북왕국은 멸망하고 역사에서 그 자취가 사라지고 만다. 남왕국 유다는 끌려갔던 땅에서 다시 돌아오게 되지만, 북왕국의 회복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본문들은 끊임없이 북왕국의 회복을 증거하고 있다. 다가올 새로운 날들을 선포했던 예언자들은 북왕국의 회복을 항상 염두에 두고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의 날을 증언한다(가령 렘 31장). 그래서 구약은 “온 이스라엘적 관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심판당해 멸망한 동족을 향한 구약의 뜨거운 관심은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동족 유대인들을 향한 애끊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바울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

남한과 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수 있다는 기대는 우리 시대에 이르러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분단으로 인해 가족이면서 평생을 다시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산 가족이 존재하는 현실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의 현실, 이제는 그분들마저 노령화되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이 현실은 비극이다. 교회마저도 분단을 당연시 여기고 북한을 적대시하며, 우리 교회의 기도에서 평화적 통일을 위한 기도가 점점 사라져 버린다는 점은 안타까움을 넘어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바울의 마음, 예언자들의 마음을 따라 온 이스라엘적 관점을 가지는 것은 현실성 여부를 넘는 문제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의 믿음의 근거로 고백하는 교회는 근본적으로 비현실적인 집단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온 이스라엘적 관점을 지닌다는 것은 서로 적대하던 남과 북이 연합하게 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예언자들이 바라고 기대하고 증거하는 나라는 더 이상 칼과 창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보습과 낫의 나라이다. 이에 대해 전하고 있는 이사야 2장2-5절을 보면, 보습과 낫의 나라의 기초는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좌정하셔서 다스리게 되면 보습과 낫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이 단락의 끝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말하는 4절이 아니라 5절이라는 점이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사 2:5)

즉 이 본문은 하나님의 다스리심만을 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실 그 날을 바라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 여호와께서 보이신 그 빛 가운데로 걸어갈 것을 권면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보습과 낫의 나라를 바랄찐대, 그 나라를 향해 오늘 우리가 살아갈 것을 권하고 있는 이 구절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권면이기도 할 것이다. 여호와를 그 하나님을 고백한다는 것은 이 땅에 임할 보습과 낫의 나라를 사모하며 그 현실을 향해 앞서 나아가는 발걸음을 통해 구현된다.

5. 장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평가

대통령이 장로라는 점은 대체적으로 그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임을 전제로 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건 생활에 힘쓸 일이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삶의 거룩은 개인 경건 생활로 구현되지 않는다. 그에게 대통령이라는 직분과 사명이 주어진 것은 명확히 정의와 공의의 통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통치는 대한민국 가운데 살고 있는 가난한 국민들을 위한 통치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현 이명박 정권은 전혀 구약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올바른 통치와 거리가 멀다. 다음의 예들은 현 정부에서 일어난 일 중 몇 가지의 예를 든 것이다.

지난 2009년 1월 19-20일 용산에서 일어난 처참한 사건은 현 정권이 가난한 자를 위한 권력이지 않음을 보여준 첫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왕에게는 가난한 자의 생명이 그리도 소중하건만(시 72:14), 이 정부에게는 강제로 진압해야 할 폭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의 목숨을 짓밟은 채 이루어진 평화는 평화이지 않으며, 그것이 경제 성장을 가져오지도 않는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져가는 현실: 지니계수는 2006년 0.285에서 2009년 0.294까지 높아졌다. 지니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는 높다. 이것은 가난한 이들로 더더욱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며,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사람들.

‘공공부문 공급축소-민간부문 공급확대-대출을 통한 수요충족’ 구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조성찬). 전월세비용의 인하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보다 쉽게 대출을 받아서 충당하도록 하는 정책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큰 빚을 지게끔 만드는 정책.

남북관계의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현실

피조 세계의 질서를 파괴하고 소수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4대강 개발로 상징되는 대형 토목 사업

교육 기회의 불균등을 갈수록 심화시키고 있는 교육 정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하나님께 바치고대한민국을 바치려는 대통령.

그리고 장로 대통령 정권에서 기세등등하게 발언하는 한국 교회와 여기저기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독교인들.

(생명평화마당 ‘장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기독교의 교회적, 성서적, 신학적 평가’ 3월 월례 포럼문 )

/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