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우근민 제주지사와 오랜 라이벌인 신구범 전 지사가 지역당을 만들 움직임이다. 당명도 있다. 제주창조당. 그런데 대한민국 정당법은 특정 지역의 당을 허용하지 않는다.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 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해 지역당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창당할 길이 막혔다. 그래서 신구범 전 지사, “지역당 창당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정당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기는 한다만, 기존 정당에 입당하거나 무소속으로 활동하면 될 일인데, 굳이 지역정당을 만들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구범 전 지사는 “역할 부재의 제주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도민생활과 지역에 터 잡은 주체적 지역당의 실현”이라고 강조한다. “제주의 정치는 언제나 중앙의 정치에 예속돼 있었고 도민들의 정치적 필요와 요구는 중앙적 사고에 따라 무시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로 인해 제주 정치의 자생력을 확보하거나 극복할 기회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런 식의 ‘풀뿌리’ 지역당이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2005년, 이듬해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북 옥천지역 시민단체들이 지역민을 대변하는 지역당을 결성해, 후보자를 내기로 했었다. 문제인식은 신구범 전 지사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정치현실이 ‘지방자치’라는 말만 있을 뿐 모든 게 중앙정치의 간섭과 줄 세우기의 연속”이라며 “이 같은 맥락에서 기존 정당과 차별화된 유권자 운동인 동시에 후보자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말 뿐이었다.

지방선거에 한해서 지역정당을 허용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회 지방자치발전연구회가 2007년 4월 28일 `정당공천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광역 또 기초의원을 중앙당에서 공천하면서 지방정치가 중앙에 예속되고, 공천비리가 끊이지 않는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정당'의 필요성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경기대 김익식 행정대학원장은 "지방선거에 한해 `풀뿌리 지역정당'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꼭 정당만 공천할 이유가 있나 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신라대 강경태 교수가 "현재는 전국적 규모의 정당만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정치가 중앙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될 위험성이 상존한다"며 "지역문제는 결국 기존정당의 정략적 정치에 매몰되거나 볼모로 잡혀버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민사회단체에도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에 이런 비슷한 모델이 있다. 일본은 지역정당 즉 로컬 파티라는 독특한 조직구조에서 나온다. 국회의원이 5명 이상이어야 하는 ‘정당’은 아니지만, 정치단체로서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모을 수 있다. 3300여명의 회원이 내는 회비도 있지만, 소속 의원들이 자신의 급여 대부분을 기부해 활동자금으로 쓴다는 게 특이하다. 시민단체가 사실상 정치세력화해서 운동을 정치 영역에서 실천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민단체의 정치 개입’이라며 문제 삼는 목소리는 없는가 보다. 이게 히트 상품이 됐으니 말이다.

얼마 전 실시된 나고야 시와 아이치 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지역정당 후보들이 집권당인 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민당 등 거대 정당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이기고 당선됐다. 그들이 간판으로 내세운 정당 이름도 정치적 지향 목표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감세(減稅)일본’ ‘일본 제일아이치회’가 정당명이다. 민주 자유 같은 거창하지만 추상적인 이념을 내건 정당명이 아니다.

왜 이런 변화가 오고 있을까. “기존 정치의 구태에 신물이 난 지방유권자의 반란”이라는 일본 언론들의 평가가 변화의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 구태 정치에 신물 나기는 한국 유권자가 일본 유권자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 정치의 변화도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추세가 될 것이다.

만약 신구범 전 지사가 헌법 소원에서 이긴다면, 즉 지역정당을 막는 정당법이 불법으로 규정된다면 우리 정치권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지역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중앙정치에 끌려다니지 않는 민의의 대변자 역항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반면 영남에 기반을 둔 한나라당,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처럼 정당 자체가 지역당 이미지가 짙은 중앙정당처럼 지역 이기주의의 구심점이 탄생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지우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