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유혈사태와 일본 대지진 같은 세계 각국에서 악재가 잇따르면서 요즘 지하벙커 상품이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본 원전사고를 계기로 자연재해 및 방사능공포가 커지면서 미국내 벙커업체들의 판매가 급증하고 예약 및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고 CNN머니가 보도했다. 한 벙커제작 업체는 중동 사태가 불거진 후 판매가 70% 증가했다고 밝혔단다. 가격은 최대 2000만 달러 즉 225억 원에 이르지만 이미 12기의 예약이 끝난 상태라고.

아파트 분양 광고는 많이 봤지만 지하벙커 판매라, 아주 생소하다. 민간용 대규모 지하벙커를 제작하는 또 다른 업체는 지난주에만 예약이 20배 이상 폭주했다고 전하면서, 미국 안에서 약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최후의 날’ 벙커 5개를 갖고 있으며 최근 1000명이 1년간 생활할 수 있는 초호화 벙커 제작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그 언에 뭐가 있을까? 와인 파는 곳, 병원, 제과점，기도실,애완동물 공간을 비롯해 만약을 대비해 구치소까지 갖췄다고.

지금 지하벙커가 가장 요긴한 사람은 카다피인 것 같다. 종적을 감춘 것으로 봐 튼튼한 지하벙커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서방 다국적군의 미사일이 카다피의 관저를 거의 완전히 부쉈다. 그러나 카다피가 다쳤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적다. 카다피가 공습 이후 국영TV와 전화통화 형식으로 메시지를 남긴 것은 그가 이미 안전한 곳으로 숨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카다피는 그동안 핵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지하벙커를 곳곳에 구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핵 공격에도 수개월 동안 생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전에 대비를 철저히 한 셈이다.

육중한 철문과 두꺼운 콘크리트, 철골 구조로 된 이 벙커는 복잡한 미로 구조여서 추적이 쉽지 않다. 내부엔 중앙 통제식 공기정화장치와 비상 발전소, 화재경보기, 물 공급 펌프이 설치돼 있다. 2개의 목욕탕과 수세식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갖췄고 비상탈출 사다리도 마련돼 있다. 카다피는 미국과 스위스 보안 회사들에 의뢰해 이 지하벙커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권력층의 벙커 구조도 궁금해진다. 지휘소나 핵무기, 핵시설, 군 지휘소, 주요 공장들은 수십~수백m 지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대한 지하도시가 있다는 것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생전에 했던 증언을 보면 "평양 철봉산 휴양소에서 남포항까지 땅굴을 뚫어 놨는데 이곳을 통해 유사시 김정일 일당이 중국으로 도주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실 북한의 땅굴 기술은 소련, 중국도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에도 지하 방호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또 북한의 연평도 도발 때에 이명박 대통령이 점퍼를 입고 지하벙커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여는 장면 많이 봤을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비서관을 지낸 양정철 씨가 청와대 지하벙커 이야기를 인터넷 상에 올려 화제이다. 청와대 지하벙커, 일단 복잡한 절차를 거쳐 들어간다. 입구 간이출입 철문 두께만 봐도 입이 떡 벌어진다. 메인 철문은 바닥에 설치된 레일로 움직여야 할 만큼 육중히다. 천장의 지표면 두께는 공중공격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떠한 공격에도 버틸 수 있도록 했다.

핵은 물론 화생 즉 화학이나 생물무기 공격으로부터 견딜 수 있는 자체 제독시설과 공기청정설비도 갖추고 있다. 규모도, 대통령 뿐 아니라 참모들과 청와대 직원들을 수용하는 대피시설로 지어진 것이어서 대단히 견고하다. 육해공군은 물론 경찰청 소방방재청 한국전력의 모든 상황 정보, 교통은 물론, 한반도 360km 반경 이내의 전투기 여객기 이착륙 정보도 손바닥보듯 알 수 있다. 한 기자는 “여기만 있으면 언론사 기자들, 출입처 안 나가도 모든 상황이 다 파악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다.

청와대만 있는 게 아니다. 정부 주요 기관과 군 지휘부는 핵 공격도 피할 수 있는 1등급 지하벙커를 갖고 있다고 한다. 1등급은 전국에 23곳뿐이어서 총 2만7000여 명, 즉 인구 1만 명 중에 6명만이 대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외부와 단절돼도 2개월 이상 자급자족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일반 국민이 피할 곳은 2, 3등급인 지하차도나 건물 지하, 지하철 역사밖에 없다. 거기서 얼마나 버티겠나.

요즘에는 부유층 사는 동네를 중심으로도 핵 대피시설이 갖춰지고 있다. 빌라 지하에는 50여명이 한 달간 핵무기를 피해 생활할 수 있는 벙커가 있다. 강화 콘크리트를 덧바른 철문은 무게가 1t이 넘고 두께도 일반벽의 4배가 넘는다. 벽체 곳곳에 방사능 오염 물질과 핵먼지 등을 걸러내는 필터와 공기순환 시설도 설치돼 방독면을 착용한 효과도 있다고 한다. 주택 건설 관계자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이상의 위력도 견디는 시설”이라고 설명한다.

이러다보니 유사시에는 힘없는 민초들만 거처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을까. 지난 해 연평도 도발 당시 전국의 방공호 시설의 실태가 소개됐다. 한마디로 열악했다. 화생방 공격 대비 기능을 갖춘 1등급 대피시설의 경우 민간인이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은 11곳 정도다. 수용인력은 1만2천명에 그치는 것으로 SBS가 보도한 바 있었다.

게다가 서울 안에서는 새 서울시청사가 건립돼야만 핵 피격에도 대비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진다고 한다. 현재로선 수도 서울과 인천·대구·충북 등의 지역에는 1등급 대피소가 단 한 곳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있다는 곳도 비상식량은 물론 취사시설과 통신기기, 구명도구가 없다. 잠시잠깐 피하는 곳 정도이다. 전면전이 발발하면 5000만 가운데 민간인의 경우 만 명 외에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