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카이스트 학생 넷이 과중한 학업부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큰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이런 가운데 4월 10일, 카이스트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있었다. 낮 4시쯤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 중인 박 모 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애들을 잘 부탁한다.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일단 최근 학생들의 거듭된 흉사와 연관이 있는지는 좀 더 수사해봐야 알 일이다. 그러나 학생이나 교수 행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 같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서남표 총장을 해임할 움직임이다. 4월 11일자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오는 금요일로 예정된 카이스트 긴급 이사회에 종합감사 결과를 제출하는 한편 총장 해임안을 안건으로 올리는 것을 교육과학기술부가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태와 연관한 해임은 아닌 것 같다. 카이스트가 건설 사업을 발주하면서 기부금 25억 원을 받고 단독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한 것과 교수 임용이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했다는 점을 문제 삼은 듯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서남표 총장이 결자해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4월 4일부터 교내에서 서남표 총장에게 ‘교육정책 개선, 학생과의 소통 강화’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진행한 11학번 이준혁 씨가 인터넷신문 <민중의소리>에 밝힌 말은 서남표 총장의 현재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인 시위 이튿날 총장을 만났는데. 학생들의 자살에 대해서도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명문대는 카이스트보다 학생 자살이 더 많다”고 했다고 한다. 지난 금요일 학생들과의 대화 자리에서도 경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굽힘이 없었다고 한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카이스트 출신 기자가 전한 내용은 충격에 가깝다. 카이스트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한다. 중국사도 동양철학도 일본어도.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번 한국어로 강의를 받아본 적이 있다. 정말 한국어로 강의 받는 것이 이런 건가 싶었다. 혁명이었다.” 게시판에는 “영어 강의를 한 번도 이해해본 적이 없다”는 말들도 올라왔다고 한다.

3.0을 넘지 못하면 최대 1500만 원을 내야 하는 구조, 징벌적 등록금제도가 말하자면 서남표식 경쟁의 상징이다. 이건 학생 뿐 아니라 학부모에게까지 재앙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많은 신문들이 서남표식 개혁에 찬사를 보냈었다.

학내 구성원 다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한겨레21> 기자의 이야기를 더 들어본다. 카이스트에 은어가 있단다. ‘장짤’. 학점이 3.0이 안 돼 징벌적 등록금을 내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걸 내면 우리는 마음속에서 ‘낙오자’가 된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 게시판은 ‘서남표 총장 파이팅!’을 놓고 추천 53, 비추천 43으로 막상막하다. 누군가 ‘정말 노력했는데도 학점이 3.0이 안 되면 카이스트에 붙어 있을 자격이 없다’고 글을 올렸는데 추천 50개가 넘었다고 한다. 학생들 상당수도 동의하는 경쟁 구조라는 이야기일까.

재작년 카이스트 축제 자리에서 남학생 둘이 캔의 ‘핸드폰 애가’라는 노래를 개사해 불러 주목받았다. 제목은 ‘카이스트 애가’이다. 가사 소개한다. “4학년이 되었는데도 학점이 안 나와. 그럭저럭 전공지식은 늘었는데 성적표엔 A말고 B, C, D만 가득해. 1학년 땐 C나와도 괜찮은 줄 알았어. 선배들은 고학년 되면 잘 나온댔어. 하지만 이게 뭐야. 1학년 때 그대로야. 재수강비 잔뜩 냈고 장학금은 못 받았어. 그나마 이번에는 학사경고 안 받았어. C- 받은 과목 재수강을 해보았어. 또 C-야! 나에게 평점 3.0은 멀기만 해.” 경쟁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글에 추천이 빗발치는 현실과 상이해 보인다. 무엇이 진실일까.

대학생들이 학업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 전두환 정부 초기에 졸업정원제가 도입됐다. 대학 졸업 정원의 30% 만큼 더 뽑아놓고 4년간 경쟁시킨 뒤 졸업 때 30%를 탈락시키는 제도라서 학생들은 끊임없는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다. 당시는 군부정권이라 대규모 시위는 감히 꿈꾸지 못할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건 직후 대학생들이 데모에 나섰다. 결국 정부는 두 손을 들었고 이 악명 높은 제도는 폐지됐다.

그래도 일각에서는 경쟁이 동기부여를 촉진시킨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스탠포드 대학의 저명한 경영학자 제프리 페퍼 교수의 연구는 회사에서 택하는 성과주의는 단기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오히려 마이너스임을 보여준다. 심리학자 알피 콘은 “설탕이 치아를 해치듯 경쟁은 인간의 자존심을 해친다”고 말한다. 그는 성과주의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극도로 단순한 작업에만 효과가 있다”고 결론 내린다. 콘은 학교에서 개인별 학습보다 집단적 협동 학습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페퍼와 콘의 연구는 외적 보상이 오히려 내적 동기를 해친다는 역설적 현상을 설명해준다.

사실 카이스트 뿐인가. 다른 대학에서도 상대평가 제도를 도입하느라 학생들 사이에 협동과 연대가 사라졌다는 말이 있다. 상대평가는 A는 몇 명까지, B는 몇 명까지 이렇게 상한선을 두는 구조이다. 절대평가는 상한선 자체가 없고. 이러다보니 모든 수강생이 잠재적 경쟁자가 되고, 학생들은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은 곧 내가 잘 못된다는 생각에 협동과 연대를 피하는 것이다. 오로지 이기주의자만 양삼하는 것이다. 남을 배려 못하고 팀플레이에 익숙지 않는 저 잘난 인재만을, 과연 기업은 원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협동학습으로 유명한 핀란드가 국제학력평가에서 계속 1등을 하고 있다. 우리가 가는 길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