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 고려산을 물들인 진달래

꽃불이 났네 그려

산이 온통 불바다구먼

겨우내 얼어붙었던 산에

누가 꽃불을 놓았을까

산 아래 골짜기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꼭대기로 타오르는 불꽃

긴긴 겨울밤 가슴조이며

콩닥콩닥 뛰던 가슴

황홀한 희열로 번져

냉랭하던 얼굴 발그레 홍조로구먼

얼어붙어 차갑던 마음, 누가

저리 뜨겁게 달궈놓았을까.

꽃불이 났네 그려

여인의 가슴에, 저 산자락에

누가 뜬금없이 불을 질렀을까

식었던 가슴, 메말랐던 산록에

가슴 뜨거운 여인의 정염인양

훨훨 타오르는 봄날의 꽃불이여.

- 이승철의 시 <고려산 진달래> 모두

▲ 소나무와 진달래꽃

▲ 진달래와 여심

"산이 온통 불바다가 된 것 같구먼."

말없이 산을 오르던 친구가 불쑥 내뱉은 말이다. 정말 그랬다. 고려산은 산 한쪽 자락이 정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온통 붉은 빛으로 타오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있는 고려산을 찾았다. 이른바 수도권 최고의 진달래 명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평일인데도 찾아온 사람들이 많다. 평일인데 설마 어쩌랴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친구 3명과 함께 승용차를 몰고 강화군 하점면 소재 백련사로 가기 위해 산 아래 입구로 들어서자 길을 막고 차량들이 들어갈 수 없다고 막는다. 진달래축제에 따른 교통혼잡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할 수 없이 고인돌 유적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오르기로 했다.

백련사 입구에서 30여분 동안 올라가다가 왼편 능선길로 길을 잡았다. 산은 그리 높지 않은 해발 436m. 등산로도 완만한 경사로여서 여유롭게 오를 수 있었다.

▲ 이 아름다운 꽃 좀 보세요

▲ 온 산에 타오르는 진달래 꽃불

다시 30분 쯤 올라가니 군부대 아래 부서진 대피소가 을씨년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른편으로 군부대 철제 울타리를 안고 돌아가자 헬기장과 주차장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곳으로 가보니 이런 장관이 있나. 산 한쪽자락이 온통 불바다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예사불이 아닌 진달래 꽃불이었다.

"히야! 정말 장관이다. 역시 수도권 최고의 진달래 명산이 틀림없구먼."

그 황홀한 풍경을 보고도 감동이 없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너나없이 모두들 탄성을 지른다.

"정말 대단하네."
"우와! 저 꽃들 좀 봐!"
"저길 좀 봐? 온통 꽃불바다야!"

주차장 쪽에서 바라보다가 낙조봉 쪽을 향하여 잠깐 걸어가자 능선까지 활짝 꽃피운 진달래들이 아우성이라도 치듯 사람들을 반기는 모습이다.

"자! 우리들도 사진 좀 찍자고."

주변은 온통 사진 찍는 사람들이다. 꽃 앞에 서기도 하고, 꽃밭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혼자서 찍는가 하면 몇 사람씩 모여서 찍기도 한다.

"작년에는 너무 늦어서 허탕을 쳤는데 올해는 때맞춰 잘 찾아 왔네."

40대의 여성들 몇 명은 지난해에도 왔었는데 시기를 놓쳐 아쉬웠었다고 한다. 올해는 벼르고 별러 찾아 왔는데 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다고 활짝 웃는다.

▲ 진달래꽃의 향연

▲ 낙조봉의 진달래

평일이었지만 노인들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많았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등산객들도 많다. 멀리 지방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보인다. 여성들은 대부분 빨갛고 노란 등산복들을 갖춰 입어서 무리가 모여 있으면 또 다른 꽃밭이 되기도 한다.

황홀한 진달래 꽃무리에 취하여 천천히 걸어서 낙조봉에 올랐다. 고려산 헬기장에서 낙조봉으로 가는 4km 길은 대부분 능선길인데 오르락내리락 평탄한 길이 어서 모두들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더구나 대부분 부드러운 흙길이다.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서도 소나무 숲이나 길가에는 어느 곳에는 몇 그루씩의 진달래가 피어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두 군데의 지석묘 지역을 지나 낙조봉에 오르니 전망이 일품이다.

이 낙조봉에서 해거름의 석모도 앞 잔잔한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해넘이는 강화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전망이 사방으로 툭 트여 날씨가 맑으면 한강과 임진강은 물론이고 동쪽으로는 강화대교와 김포들, 서쪽으로는 석모도, 남쪽으로 마니산과 서해바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개성까지 보인다.

▲ 진달래 꽃동산

▲ 진달래가 만개한 산과 하늘

낙조봉에서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다시 되돌아 걸었다. 백련사 쪽 길가에 승용차를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능선 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오른편 산 아래 적석사 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저 사람들은 하필이면 왜 저 안에 들어가서 쉬고 있을까?"

지석묘 지역이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대지석묘들이 있는 곳은 관리자들의 명패가 세워져 있고 나무기둥으로 울타리를 세워 놓았다. 그런데 몇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가 쉬고 있는 모습이 일행의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정상부근의 헬기장을 거쳐 도로를 타고 내려오자 도로변 한 곳에 작은 연못이 보인다. 이 연못은 옛날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말에게 물을 먹이던 곳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백련사의 전설도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 필자와 일행들

"3년 째 등산을 함께 다니고 있지만 오늘 산행이 가장 좋았던 것 같은데."

3년 전부터 우리들과 함께하기 시작한 일행 한 명은 산 높이나 등산로도 우리들에게 적당할 뿐만 아니라 특히 진달래꽃이 정말 좋았다고 기분 좋게 웃는다.

온 산을 화려하게 물들인 진달래 명산 고려산. 일행들은 모두 만족한 모양이었다. 교동도 쪽 바닷가에 있는 작은 포구 창우리를 찾아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고려산 진달래의 감동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