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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따라가면 뱃길이 트일 것이오"

강화도 염하강 손돌목의 전설과 역사

2011년 05월 09일 (월) 13:42:08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 강화역사관 앞 화단에 만개한 붉은 철쭉

흔히 강화도를 일컬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말한다.

이 섬에는 그만큼 오랜 역사의 유정과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말 이 섬은 그 이름에 걸맞게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유적이 많고 오랜 역사의 체취가

진하게 배어있는 곳이다.

역사의 현장인 강화도의 유적지 몇 곳을 둘러보았다. 그곳에서는 우리 민족의 시련과

아픔, 그리고 끈질긴 민족혼을 불태우며 이 땅을 지키고 기나긴 역사를 이어온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었다.

맨 먼저 들른 곳은 강화역사관, 강화대교를 건너 잠깐 달리다가 유턴을 하듯 좌회전을

하여 들어가니 역사관이었다. 이곳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자원봉사자 문화관광해설사인 이정자씨의 안내로 역사관을 둘러보았다.

이 역사관은 행정구역상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갑곶리에 있으며, 1988년 9월에 문을

열었다. 전시실은 4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고대 석기시대 유물에서부터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항일운동까지 강화도 및 인천지역의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 역사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바다의 척화비

먼저 제1전시실에는 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의 조상들이 사용했던 돌도끼, 돌칼

유문토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2전시실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3,4전시실에는 몽고침입에서 병자호란 때까지 북방민족의 침략사와 함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서방세력과 충돌, 강화도조약, 한일합방 등 일제의 침략사, 그리고 1919년 3·1운동까지의 과정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길 보십시오, 이것이 고려 때 성을 쌓는 모습입니다. 처음 성을 쌓을 때는 대개 흙으로 쌓는 토성이었지요. 나중에 돌로 축성을 하였지만, 성 쌓기에 동원된 백성들의 애환이

담긴 "성쌓기노래"라는 것도 있었답니다. 여기 한 번 읽어보세요."

2층의 제3전시실에는 고려시대 성 쌓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었다. 자원봉사자인 이정자씨는 문화관광해설사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는 자상하고 멋진 안내와 해설을 해주고 있었다.

▲ 초지진 성벽 옆에 서 잇는 소나무들, 신미양요 때의 포탄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

"성돌이 무거우니 조심조심 운반하세. 서해바다 수평선에 오랑캐선이 오기 쉽다.

(중략) 장가든지 삼일 만에 성 부역엘 나왔드니, 몇 십 삭이 되었는지 자식놈이 찾아왔네.(중략) 부자상봉 지켜보던 성을 쌓던 인부들은 고향에다 두고나온 부모처자 생각나서, 하던 일을 멈추고서 통곡하며 눈물짓네"(하략) <성 쌓기 노래>의 일부분이다. 당시 성 쌓기에 동원된 백성들의 충성심과 함께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단긴 노래 가사였다.

역사관을 둘러본 후 초지대교 부근에 있는 예약된 식당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출발하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강화섬의 들 풍경은 지금 한창 모내기 준비에 바쁜 모습이었다.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하기 위해 평평하게 골라놓은 논들의 모습이 가지런하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미쳐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군요. 저는 강화군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는 자원봉사자 이정자입니다. 오늘 하루 동안 여러분을 모시고 정성껏 안내를 해드리고 문화유적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희 강화도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초지진 안의 조선대포, 홍이포

작년에 회갑을 지냈다는 이정자씨는 나이보다 훨씬 젊은 모습에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게 문화유적을 소개하고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멋진 봉사자였다. 가끔씩 우스갯소리도 섞어가며 수화동요를 가르쳐주기도 하여 그야말로 인기 만점이었다.

점심 후에는 초지진을 찾았다. 1971년 사적 제225호로 지정된 초지진은 조선 효종 때 강화유수 홍중보가 처음 설치하였다. 일백십여 명의 군관이 주둔하던 병영지로서 강화도의 유적지 진, 보, 돈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지금으로 보면 중대급이지만 인구나 군대 규모가 작았던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단위부대였다.

이 초지진에서는 1871년 미국의 로저스 중장이 이끄는 아시아함대가 침입하였을 때 필사의 방어전을 전개하다가 많은 희생을 치른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또 1875년(고종12)에는 외교문제로 생트집을 잡았던 말썽 많은 일본 군함 운요호와도 교전하였던 곳이다.

▲ 초지진 포구를 통해 바라본 강화해협과 초지대교

성벽 옆에는 당시의 전투에서 포탄을 맞은 자국이 선명한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어서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1973년에 복원된 성은 높이 4m 정도에 둘레 길이 100m쯤 되는 타원형의 돈대다. 돈대 안에는 조선말의 대포 1문이 포각 속에 전시되어 있는데 포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 홍살로 되어 있고 대포의 길이는 2.32m, 입지름 40cm라고 한다.

대포의 외형은 상당히 크고 우람해 보였지만 성능은 대단치 않아서 실제 전투에서는 별 위력이 없었다고 한다. 돈대 포구를 통해 본 초지진의 앞 바다는 마침 썰물이어서 넓은 갯벌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 물까지 합수하여 흘러드는 곳이라 하여 좁은 바다 해협이지만 염하강이라고도 불리는 해협 건너편에는 대명포구가 조용한 모습이고 초지대교가 날렵하게 쭉 뻗어 달리고 있었다.

▲ 광성보의 성문 안해루

광성보로 향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때의 격전지로서 애달픈 역사의 현장이지만 전망이 좋고 주변의 경치가 좋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바로 앞 언덕 위에 광성보의 성문인 안해루가 서 있다.

성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 쪽 길을 따라 용두돈대로 향하였다. 언덕위로 올랐다가 저 만큼 용두돈대가 바라보이는 내리막 길 옆에 신미양요 직후 미군이 촬영했다는 광성보의 옛 사진이 눈길을 끄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침략한 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조선군들의 참혹한 시체가 즐비한 사진이었다.

1871년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며 아시아함대 1230명의 병력으로 침범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하고 이 광성보에서 조선의 어재연장군과 290여 명의 조선군과 백병전을 전개한 장소다.

▲ 용두돈대

이 전투에서 현저한 무기와 병력의 열세로 어재연 장군과 290여명의 전 병력이 참혹한 죽임을 당하였는데 그 때 미군은 불과 세 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참 서글픈 역사의 현장이다.

용두돈대는 용머리처럼 바다 가운데로 불쑥 뻗어 내려간 바위 위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였다. 고려 때 몽골의 침략에 대비하여 최초로 세워졌으나 1679년에 축성되었다고 한다. 돈대 건너편은 김포 땅이며 이 부근의 해협은 물살이 세고 거칠어 옛날에는 항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었다고 한다.

이 해협을 손돌목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도 애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문화관광해설사 이정자씨가 손돌목의 전설을 이야기 해준다.

▲ 신미양요 때 전사한 무명용사 51명이 묻힌 신미순의총

"옛날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던 시기 고려의 고종임금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몽고군의 침략을 피하여 고종이 강화로 피난을 가는데 이 근처에서 뱃사공으로 유명한 손돌이라는 뱃사공에게 뱃길을 안내하게 했답니다.

그런데 배가 광성보 앞을 지나자 갑자기 뱃길이 막히는 것이었어요. 마음이 급한 왕은 손돌을 몽고군의 첩자라고 의심하고 처형하라고 명령했지요. 손돌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이곳의 지형이 원래 그런 곳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처형당하기 전 손돌은 뱃길 앞에 바가지를 띄워주며 바가지만 따라가면 저절로 뱃길이 트일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처형당했답니다. 왕은 할 수 없이 손돌이 가르쳐준 대로 따라갔는데 무사히 강화섬에 이르게 되었지요. 왕은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손돌을 바다건너 김포 땅에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주도록 했답니다."

이정자씨가 바다 건너편을 손으로 가리킨다.

"저 건너편에 숲이 우거진 곳이 보이시죠? 저곳에 지금도 손돌의 묘가 있답니다. 그런데 손돌이 처형당한 날이 음력으로 10월 20일 경인데 절기상으로는 소설(小雪) 무렵이지요. 그래서 이 무렵이 되면 손돌의 원한이 깊어 바람이 불고 추운 날이 오는데 이 추위를 손돌 추위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이 해협을 손돌목이라고 하는데 이날은 어부들도 배를 띄우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이 손돌목은 물살이 세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해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옛 전설을 이야기하는 이정자씨의 말을 들으며 해협을 바라보니 마침 밀물로 차오르는 돈대 아래 바닷물이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 손돌의 원한이 지금도 사무치는 듯 심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 고려궁터 안에 있는 외규장각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 아래에는 신미양요 때 전사한 무명용사 51명의 시신이 묻힌 신미순의총이 후손들의 무심한 발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즈넉하기만 하다. 다시 차에 올라 옛 고려궁터로 향했다.

사적 제133호로 지정된 고려궁터는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왕도를 강화로 옮긴 후 1270년(원종 11)에 화의를 맺고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 동안의 왕궁 터다.

고려궁은 철수할 때 불태워버려 남아있지 않고 옛터에는 당시의 건물 기단과 3단으로 된 돌계단이 남아 있었으나 뒤에 강화유수부건물이 세워져 오늘에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뒤뜰 언덕 밑에는 외규장각 건물이 반듯하게 서 있다. 바로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들이 탈취해간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던 곳이다. 얼마전에 영구임대 형식으로 되돌아온 우리나라의 귀중한 역사사료가 보관되었던 외규장각은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채 봄날 오후의 햇살만 내려 앉아 있었다.

"여러분 저는 이제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강화도를 자주 찾아주시고 많이많이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날의 강화도 문화유적 관광은 나이를 뛰어 넘은 멋진 문화관광해설사 자원봉사자인 이정자씨로 인하여 더욱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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