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떠나 왔습니다. 이제 각종 교회 여름사역이 끝나고 시간적 여유가 좀 있는 때이고 부교역자를 비롯한 직원들의 휴가도 거의 끝났기에 이젠 내 차례라 생각되어서 늦은 휴가를 떠난 것입니다. 사실은 휴가이기보다는 후반기 사역준비와 2012년도 목회를 계획하기 위해 일터를 떠나 사역을 조망하기 위한 시간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쉴 때는 그냥 마음 편히 쉬라”라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잔뜩 일거리를 싸 가지고 휴가지로 왔습니다. 일거리를 잔뜩 쌓아두고는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고 또 노는 것보다는 일하는 것이 더 익숙한 나는 일하기보다 놀기가 더 피곤할 것 같아서 놀더라도 일거리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내 습관이기도 합니다.

휴가를 떠나는 사람의 가장 큰 고려는 ‘어디로 갈까?’하는 휴가 장소 문제입니다. 고향을 찾아 그동안 소원했던 일가친척이나 친구를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 복잡하지만 강이나 바닷가로 혹은 유원지로 가서 피서객들과 휴가 전쟁을 한 번 치러 보는 것도 사람 사는 하나의 즐거움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휴가는 좀 다릅니다. 어디 조용한 산속이나 한적한 바닷가에 가서 기도도 하고, 말씀도 묵상하고, 또 그동안 읽지 못한 책들도 읽으며 영적 안식과 육체적 쉼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 그런 마땅한 장소가 나를 위하여 준비될 수 없으니 해마다 휴가를 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번 휴가는 참으로 좋은 휴가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우리 교회 K집사님께서 강원도에 마련하신 집을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깊은 산 계곡에 참으로 아름답게 지어진 2층 집, 집 앞에는 냇물이 흐르고 앞 뒷산은 가파르지만 그러나 울창한 숲으로 깊은 산중임을 실감케 하는, 산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집을 감싸고 있고, 집안 거실 소파에 앉아서도 짙고 푸른 산과 나무들을 훤히 볼 수 있도록 설계된 집, 가까이에 약수터가 있지만 그러나 며칠을 있어도 한 사람도 만날 수 없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곳입니다. 거기다가 충분히 넒은 공간은 실내에서도 심신의 여유를 갖기에 충분합니다. 나를 위해 잠자리도 먹을거리도 잘 준비해 주신 K집사님의 배려로 이번 휴가는 참으로 평안한 그리고 유익한 휴가인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료를 정리하고 강의원고를 만드는 일에 아주 좋은 일터이기도 하고 휴식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금년은 여기 우리 집사님의 시골집이 우리 교단 총회 100주년 기념 ‘목회매뉴얼의 집필 방향’에 대한 기본안이 만들어 지고 2012년의 목회 계획의 설계도가 만들어지는 거룩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독일 작센(Zaksen) 지방의 선제후(選帝侯) 프리드리히(Friedrich)의 바르트부르크(Wartburg)성(城)이 라틴어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의 성지(聖地)가 되었듯이 이번 여름에는 우리 집사님의 시골집이 내 2012년의 목회계획과 교단 목회매뉴얼 발간의 방향을 결정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의 강력한 제지로 답보상태에 있던 종교개혁이 루터의 바르트부르크 성(城)의 짧은 체류기간(약 10개월) 동안 라틴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함으로 인해 종교개혁을 다시 불붙게 했던 것입니다.

휴가도 그렇지만 사실 우리의 모든 삶은 내가 거한 곳에서 뭐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그 장소를 어떻게 쓰는가는 그 장소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그 장소의 가치 부여는 그 장소의 사용자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무용한 일, 혹은 불의한 일을 한다면 그 장소의 가치는 낮아질 것이고 그 장소에서 귀한 일, 중요한 일이 이루어졌다면 그 장소의 가치는 높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휴가 기간 내가 머물렀던 이 시간들을 유용하고 가치 있게 씀으로 내가 머물렀던 장소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우리 삶이 그렇습니다. 일 년 12달 모든 시간을 내가 거하는 모든 곳을 다 거룩하게 사용하고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현실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시간, 자신의 공간 그리고 자신의 직분과 직임,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가치 있고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책임 있는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건 비록 일을 쉬는 휴가기간에도 그렇습니다. 휴가를 잘 보내고 다음주에 여러분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