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970년 가을에 결혼하였다. 결혼한 지 41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결혼한 햇수를 따져서 보석으로 이름을 붙이기를 “15년: 수정혼(Crystal), 20년: 자기혼(China), 25년: 은혼(Silver), 30년: 진주혼(Pearl), 35년: 산호혼(Coral), 40년: 루비혼(Ruby), 45년: 사파이어혼(Sapphire), 50년: 금혼(Gold), 55년: 에메랄드혼(Emerald), 60년: 다이아몬드혼 (Diamond)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루비혼을 넘어서서 금혼을 향해 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41년 동안 큰 갈등 없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춘천에서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으나 아내가 처음 교회에 나온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인도에 의해서였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방에 있는 대학을 같이 다니면서였다. 나는 당시 대학생들에게 혜택을 주던 학보병(學步兵)으로 입대하여 1년 반 복무하고 복학하여 4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아내는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가졌던 가장 큰 욕심은 대학 도서관에 있는 교양서적을 모두 읽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 탓인지, 아내의 말에 의하면 빌린 책의 대출카드마다 내 이름이 적혀 있어서 자연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반면 대학 졸업을 마치고 장신대에 입학한 후 본 교회에서 교회학교 총무직을 맡고 있었는데 아내가 맡고 있던 반은 언제나 모범반이었다는 데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아내가 맡은 초등학교 5년생 반은 언제나 출석률이 높았을 뿐 아니라 예배 시간이나 분반공부 시간에 꼼짝하지 못하도록 지도하고 있음에 놀라고 있었다.

신학대학 1년 2학기 때, 본 교회에서는 춘천 외곽지역에서 출석하는 교인들을 중심으로 개척교회를 설립하고 신학생인 나를 파송했다. 그 때에 처음으로 전도사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고마운 것은 주일 오후 시간에 틈틈이 아내가 와서 교회학교를 담당해 주었고 밤예배를 마친 후에는 집이 같은 방향인 탓에 호수를 끼고 생긴 뚝방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가운데 우리는 자연적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1980년 새해 들어서면서 실천학 교수의 소개로 마석에서 가까운 농촌교회에 교육 전도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평일에는 신학대학 기숙사에서, 토요일과 주일은 교회가 마련해준 사택에서 지내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으나, 편지가 우리의 소통의 수단이 되어 주었다. 주고받는 편지의 수가 더해가면서 진한 감정들이 글 속에 젖어들고 있었다. 우리는 3년의 사랑의 교제를 했고 각각 졸업 후에 1970년 초에 약혼을 하고 가을에 결혼을 했다. 그 때부터 가난한 농촌목회의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 농촌은 당시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몹시 낙후된 곳이었다. 그러나 나와 아내에게는 일생 잊을 수 없는 목회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것에서 신혼의 단꿈이 이루어졌고, 세 자녀가 태어났으며 거기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처음 담임목사가 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목회의 첫 사랑을 그 곳 교인들에게 아낌없이 부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떠난 지가 벌써 35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는 그것의 산천이 보다 아름답게 채색되어 자리 잡고 있다.

아내는 그 곳에서 십 오리 더 들어간 수동이라는 곳의 중학교에서 교사로 3-4년 근무를 했다. 시골중학교라 교사를 많이 채용할 수 없어 한 교사가 몇 과목을 담당해야 했는데 아내는 수학과 과학은 물론이고, 음악도 가르치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운동회 때는 마스게임이나 고전무용까지 지도해야 했다. 때로 만삭의 몸으로 늦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걸어서 퇴근할 때는 완전히 탈진되어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 탓인지 아이들이 자라서 지금 방송일을 하고 있는 것은,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모르는 사이에 태교(胎敎)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내가 사모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75년 늦가을에 홍익교회 부임한 때부터였다. 우리가 홍익교회 부임한 이후 가장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은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과제였다. 사실, 당시 홍익교회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어 보였다. 교회가 위치한 산동네의 반 이상이 한양대학교 부지로 거의 개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온통 쓰레기 천지였을 뿐 아니라 버스 주차장으로부터 10여분을 걸어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차로(車路)는 승용차 한 대 겨우 올라올 정도의 협소한 길이 전부였다.

그런데다가 교회당은 30여 평의 창고 같은 허술하고 낡은 건물에 불과했고 거의 7년 동안 성장하지 못한 탓인지 50여명의 장년 교인들이 형제자매처럼 똘똘 뭉쳐 있는 것은 좋으나 그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텃세가 새 신자들이 들어올 여지를 막아버리는 것처럼 내 눈에는 비취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교회 성장의 길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생각이 들 때마다 기도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서울 근교 산이나 집회 장소를 찾아다니며 기도했고 아내는 한 밤중에 교회당에서 철야하고는 했다.

마침내 교회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매주 등록하는 교인들이 증가하고 장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던 중고등부가 분립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100여 좌석이 부족하여 보조의자를 놓아야 할 정도로 교인들이 불어나 주일날은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잔치 기분 그대로였다. 자연적으로 우리는 늘어나는 교인들을 돌보는 일에 점점 바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당시 큰 딸 아이는 5살이었고 부임할 당시 안고 왔던 백일도 안 된 막내아들은 젖먹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막내 보다 한 살 위인 큰 아들은 춘천 부모님 집에 맡겼다가 3살 되던 해에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므로 아내는 가정 살림하랴, 낮에는 교인 심방하랴, 밤에는 교회당에서 철야하랴, 표현 그대로 눈코 뜰 새가 없을 지경이었다. 때로는 원거리 심방을 마치고 늦게 돌아오거나 후에 아내가 신유의 은사를 받아 환자 심방이 잦아질수록 아이들은 증조외할머니 손에 맡기고는 했는데 그 자녀들이 무탈하게 자라서 이제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자리를 굳혀갈 정도의 인물이 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대신 양육해 주셨다는 고백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감사한 것은 나와 아내는 동역자로서 팀웤이 잘 이루어졌었다는 점이다. 아내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무슨 일이든 진취적으로 일을 벌인다. 그러나 약점은 시작에 비해서 뒤끝이 약하다. 용두사미가 되기가 쉽다. 반면 나의 약점은 무슨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 너무나 소극적이고 모험적인 일을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짙다. 반면 장점은 한번 시작한 일은 꾸준하게 진행하고 마무리 지으려는 성실성이 있다. 경기로 말하면 아내는 공격수이고 나는 수비수와 같다.

이런 대조적인 성격 탓에 초기 목회 시에는 수없이 부딪히고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았다. 그 때문에 부부로서의 갈등이 일어날 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연륜이 깊어지고 교회 성장이 속도를 더해가면서 동역자로서 콤비가 되어가게 되었다. 서로의 부족을 보충해주면서 진행함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은퇴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다시금 젊음이 주어지고 과거의 시골교회 목회 7년과 빈한했던 산동네 목회 33년을 다시 하라면 도무지 감당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고난의 골자기를 지나왔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한 마디로 40년의 힘든 목회 과정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부로, 혹은 동역자로, 지금에는 절친한 친구로 맺어주셨기에 가능했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 부부는 가끔 한강 가의 산책로를 거닐거나 승용차를 몰고 숲과 들을 가로질러 달리는 긴 여행길 속에서, 혹은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눌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짝 지어 주신 천정배필(天定配匹)이기에 가정과 교회를 돌보는 사역에서 이만큼의 성과라도 거두지 않았겠는가?’라는 고백을 나눔으로 서로를 위로하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