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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의 선, 고궁에서 맛보는 우리 한옥의 멋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로 이어지는 지붕의 선과 건축미

2011년 09월 07일 (수) 10:39:18

이승철

seung812@hanmail.net

▲ 창덕궁 부용정, 작은 정자지만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를 모두 갖춘 팔작지붕 형 정자다.

우리 서울에서 고궁을 빼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그냥 삭막한 콘크리트의 숲,,,서울의 한복판에 삼림이 우거진 남산공원이 있기는 하지만, 도심에 자리 잡고 있는 고궁들은 누가 뭐라 해도 조금은 삭막한 대도시 서울의 보배가 틀림없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고궁들은 건축물의 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중국의 옛 궁궐에 미치지 못한다고, 그러나 우리 고궁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어느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운치와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게 된다.

지난 달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 속에 종묘와 창경궁, 그리고 창덕궁을 둘러 보았다. 가는 곳마다 숲 속에 파묻힌 고궁의 정취가 눅눅하던 마음을 산뜻하게 사로잡는다. 수백년 고목들과 연못이 있고, 옛 선인들의 체취가 묻어날 것 같은 건축물들이 우리들의 정서와 정말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리라.

▲ 종묘 강녕전, 큰 건물이지만 맞배지붕으로 이어진 형태다

▲ 창경궁 명정전의 옆모습, 추녀마루와 그 위의 잡상들 그리고 추녀의 선이 아름다움의 극치다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멋스럽지만 오늘은 궁궐의 지붕들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한옥은 일반 가옥들도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특히 궁궐은 다른 어떤 건축물들 보다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이 특별나다.

한옥의 지붕 형태는 맞배지붕과 우진각지붕, 모임지붕, 그리고 팔작지붕으로 구분된다. 맞배지붕은 지붕이 양면으로 경사를 이루어 사각형 종이를 반을 접어 八자 형으로 세워 놓은 것 같은 지붕을 말하는데 대개의 일반 가옥들이 이런 형태다. 궁궐 건물에서도 볼 수 있는데 건물의 폭이 좁은 회랑이나 길쭉한 형태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지붕 양식이다.

우진각지붕은 지붕 모서리의 추녀마루가 처마 끝에서부터 경사지게 오르면서 용마루에서 합쳐지는 지붕이다. 앞뒤에서 지붕면을 보면 사다리꼴 모양이지만 옆면에서는 삼각형 모양으로 보인다. 내림마루가 없고 용마루에서 추녀마루가 바로 이어진 형태로 창덕궁 돈화문이 대표적인 건물이다.

모임지붕은 지붕의 추녀마루가 처마 끝에서부터 경사지게 올라가 지붕 가운데의 한 지점에서 합쳐지는 지붕이다. 지붕의 평면 모양에 따라서 사각형인 경우에는 사모지붕이라 하고 육각형인 경우에는 육모지붕이라고 한다. 팔각형인 경우에는 팔모지붕이라고 하는데 용마루나 내림마루가 없고 추녀마루만 있는 지붕 형태로서 대개의 정자들이 이런 형태의 지붕을 갖고 있다. 창덕궁 애련지 옆에 있는 애련정도 이런 모습이었다.

▲ 창덕궁의 이 건물은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의 선이 기묘한 조화 속에 어우러져 있다

▲ 이름만큼이나 멋스러운 창덕궁 애련정, 모임지붕 형태다

팔작지붕은 우진각지붕의 윗부분을 잘라 내고 길쭉하게 맞배지붕을 얹어 놓은 것 같은 지붕형태다. 지붕의 정면은 사다리꼴과 직사각형을 합친 모양이지만 옆면은 사다리꼴에 삼각형을 올려놓은 모양이다.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를 모두 갖춘 지붕으로 대형 건물, 특히 궁궐의 건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지붕의 형태다.

우리 고궁의 궁궐 건물들은 대개 팔작지붕 형태인데 이런 형태야말로 한옥의 품위와 멋스러움을 가장 잘 표현한 지붕형태라고 할 수 있다. 용마루는 건물의 지붕 중앙에 있는 주된 마루다. 전통 한옥, 기와집의 지붕에는 틀림없이 용마루가 있다.

용마루는 지붕면의 앞면과 뒷면이 서로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 모양을 내기 위해 길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달리 종마루 또는 옥척이라고도 한다. 형태는 지붕 위 옥척 위에 기와를 켜켜이 쌓아 담장처럼 올리기도 하고 어떤 것은 쌓아올린 기와 표면에 백토나 석회를 발라 만들기도 한다.

▲ 왼편의 큰 건물은 팔작지붕, 오른편 나무 옆의 작은 건물은 맞배지붕이다

▲ 지붕과 추녀 쪽문의 조화

높이는 대략 20∼50cm 정도인데 이 용마루는 기와 건축물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서 예외가 거의 없다. 종묘의 강녕전 전각 위의 용마루는 하얀 백토를 발라 하얀 색의 선이 이어진 것이 특별한 아름다움이었다.

내림마루는 용마루에서 추녀마루로 이어지는 지붕의 옆면을 흘러내리는 마루다. 형태는 용마루와 비슷하지만 용마루가 수평인 것에 비하여 내림마루는 아래로 흘러내리는 형태라는 것이 다르다. 이 내림마루는 건물의 구조상 팔작지붕에만 있는 마루이기도 하다.

추녀마루는 당마루에 이어 추녀를 기와로 덮은 부분에서 위로 올라가 용마루나 내림마루와 연결된 형태다. 추녀마루의 맨 아랫부분은 추녀와 가지런한 선을 이루어 추녀의 선을 더욱 아름답게 하기도 한다. 추녀마루도 용마루나 내림마루의 형태를 갖고 있지만 특별한 것은 추녀마루 위에 세워져 있는 잡상들이다.

대개 여러 가지 동물의 형상을 한 잡상들은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로 만들어져 추녀마루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 잡상은 용마루나 내림마루에는 세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 잡상은 궁궐 건물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일반 건물에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흔히 볼 수 없지만 위치는 역시 추녀마루다.

▲ 담장 위로 보이는 지붕과 추녀의 멋스러운 선

▲ 창덕궁 팔작지붕들이 한곳으로 모아져 보이는 풍경

궁궐을 돌아보며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의 선뿐만 아니라 가지런하지만 추녀마루 끝이 약간 치켜 올라간 추녀의 선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때가 많다. 하늘을 배경으로 지붕 위에 지붕이 포개져 보이고 선과 선이 이어지는 그 우아한 풍치를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 추녀 끝으로 한 줄기 햇살이라도 비쳐 들어올 때면 그 또한 환상적이겠지만 추녀 밑 마루에 걸터앉아 비를 피하는 운치도 가히 일품이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 잠시 시간을 내어 가족들과 더불어 호젓한 고궁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조상들의 역사도 더듬어 보고, 궁궐 지붕의 선이 빚어내는 멋지고 아름다운 정취에 젖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창경궁, 층을 이룬 지붕의 모습과 추녀마루 위의 잡상들

울창한 숲과 운치 있는 연못. 그리고 그 연못가에 날아갈 듯 서있는 모임지붕 형태의 정자에 앉아 가족들과 오순도순 나누는 정담은 또 얼마나 예스러운 풍류인가.

서울의 고궁을 찾아 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전통 한옥 궁궐의 멋, 그 중에서도 지붕의 멋스러움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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