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의 화려함에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그러나 단풍은 곧 낙엽 되어 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늦가을이 되면 허전하고 스산한 기운이 듭니다. 더욱 외로움에 떨게 됩니다. 과거 없이 살던 시절에는 가을이 지날 때쯤 되면 연탄걱정을 하면서 겨울나기를 염려해야 했습니다. 햅쌀을 다락방에 올려놓고, 김장독을 채우고, 연탄을 잔뜩 부려놓아야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일러를 틀면 언제든지 따뜻한 물을 쓸 수 있고, 김치냉장고에는 다양한 김치들로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슴 한 켠에 외로움은 가시지를 않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혼자라는 생각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 누군가는 너무나 바빠서 눈길 한 번 주지를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위 사람들은 모두 의지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 그늘을 만들어주고, 때로는 따뜻한 아랫목을 내 줄 사람들을 찾습니다. 그럼에도 딱히 마음을 내려 놓을 사람이 없기에 힘겹고 무거운 삶입니다.


이제 나의 외로움을 덜어 줄 누군가를 찾지 말고, 누군가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고쳐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가 세상에 지친 사람에게 피난처가 되어주고, 한기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아랫목을 내 주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요! 그러면 가을의 외로움은 멀리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난히도 이해인 시인의 ‘그리운 등불 하나’가 생각나는 가을입니다.


그리운 등불 하나 / 시인 이해인


내 가슴 깊은 곳에
그리운 등불 하나 켜 놓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
언제든지 내가 그립걸랑
그 등불 향해 오십시오.
오늘처럼 하늘빛 따라
슬픔이 몰려오는 날
그대 내게로 오십시오.
나 그대 위해
기쁨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삶에 지쳐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는 날
그대 내게로 오십시오.
나 그대 위해
빈 의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가슴이 허전해
함께 할 친구가 필요한 날
그대 내게로 오십시오.
나 그대의
좋은 친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대 내게 오실 땐
푸르른 하늘 빛으로 오십시오.
고운 향내 전하는 바람으로 오십시오.
그리고, 그대 내게 오시기 전
갈색 그리운 낙엽으로 먼저 오십시오.
나 오늘도 그대 향한
그리운 등불 하나 켜 놓겠습니다...

/약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