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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됐지, 괜한 욕심은 왜 부려요?

[가을정취의 진수를 찾아서] 명지산 단풍과 버섯노인

2011년 10월 30일 (일) 23:36:12

이승철 시인

seung812@hanmail.net

▲ 불꽃처럼 새빨간 단풍과 고운 단풍이 물드는 주변의 산들

오래 전에 어느 정치인은 마음을 비우기 위해 산에 오른다고 했었던가? 그러나 정말 마음을 비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가을 산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산에 올라 마음을 비우는지는 모르겠으나 배낭을 채우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도토리며 알밤을 주우러 가는 사람들 말이다. 등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엔 나무 밑을 샅샅이 뒤져 열매들을 모조리 주워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다람쥐며 청설모 같은 산에 사는 동물들의 겨우살이 먹이가 되는 열매들을 사람들이 주워가기 때문에 동물들은 겨울 동안 먹이가 부족하여 살아남기가 어렵다 한다.

터무니없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정말 살기가 어려워 그런 것이라도 주워서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에 보태 쓴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주변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안타깝고 눈살 찡그리게 하는 풍경들이다.

얼마전 명지산 등산길에서는 다행히 그런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서울 청량리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현리에서 내려 상판리행 공영버스로 갈아탔다. 그런데 등산로 입구가 가까워질 무렵부터 길 주변이 자주 색다른 풍경으로 변하고 있었다.

▲ 노랗게 물든 나뭇잎도 여간 고운 모습이 아닙니다

▲ 개울가의 단풍은 또 다른 아름다움 입니다

도로 좌우편 가로수가 서 있을 자리에 수수와 조 등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추수할 때가 가까워서 제법 묵직해 보이는 수수와 조의 이삭들이 머리를 숙인 채 길가에 늘어선 풍경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정말 색다른 풍경이었다.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가을 날씨답지 않게 잔뜩 연무가 낀 하늘은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등산로 입구다. 입구 초소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나온다. 우리들이 명지산을 올라 승천사 쪽 익근리로 하산할 예정이라고 하자 상당히 먼 거리라고 한다. 초소 일지에 인적사항을 적어주자 산행안내 지도 한 장을 준다.

등산로는 편안한 편이었다. 그리 가파르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았다. 골짜기로 들어서자 졸졸 시냇물이 흐른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반갑기 짝이 없다. 며칠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어지간한 골짜기는 대부분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들이 고운 얼굴로 우리들을 반기는 것 같다. 역시 높은 산의 깊은 골짜기답다.

골짜기 건너 맞은편의 산도 희부연 연무 속에 어렴풋이 바라보이는 빛깔이 제법 고운 자태다. 우리들의 1차 목표는 귀목고개였다. 골짜기를 벗어나 약간 가파른 오르막길을 20여분 오르자 드디어 귀목고개다. 왼쪽으로 오르면 귀목봉이고 오른편으로 오르는 길이 명지산으로 가는 길이다.

고갯마루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간단한 간식을 들었다. 우리들이 쉬고 있는 근처로 다람쥐 두 마리가 뽀르르 달려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사라진다. 혹시 먹이라도 줄까봐 나타난 걸까, 아니면 가을 인사라도 하려고...잠깐 쉬는 사이 등이 서늘해진다. 이날도 낮 기온이 제법 높은 날씨였지만 역시 가을은 가을이다.

▲ 단풍이 물든 명지산의 주봉은 1257m로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입니다

▲ 길옆의 나무들이 오색단풍으로 고운 모습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능선길이다. 역시 길은 평탄하다. 그러나 단풍은 편차가 심했다. 어떤 나무는 아주 곱게 물들었는가 하면 어떤 나무들은 단풍이 들지 못하고 말라버렸거나 벌써 푸석한 낙엽으로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

산행에서 능선을 타고 걷는 것만큼 기분 좋은 길이 있을까. 더구나 가을 산행임에랴. 울긋불긋 단풍 고운 주변의 풍경뿐만 아니라 멀고 가까운 다른 능선과 산의 아름다움이 시야 가득 밀려오고 멀어지는 능선 길이야말로 역시 산행의 백미다.

그렇게 한 참을 걸었을 때 저 만큼 명지 3봉이 나타났다. 그런데 봉우리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였다.

"어, 저 노인 좀 봐, 버섯이 엄청나게 큰 것 같은데,"
능선 길에서 왼편으로 조금 비낀 길 아래 커다란 참나무 옆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노인의 무릎 앞에는 바나나 송이보다도 더 큰 버섯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 그게 버섯입니까? 웬 버섯이 그렇게 크지요?"
내가 노인 곁으로 다가갔다. 노인은 비슷한 크기의 버섯 두 송이를 따서 배낭에 넣고 있는 중이었다.
"이거요? 참나무 버섯인데 참 좋은 겁니다."
노인이 남은 버섯 한 개를 마저 배낭 안에 넣었다. 내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여미던 배낭을 다시 열어 보여준다. 정말 엄청나게 큰 버섯이었다.

▲ 명지산에 올라 버섯을 따는 정천환 노인은 올해 77세로 아주 정정한 모습입니다

▲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산

어디서 이렇게 큰 것을 채취하셨느냐고 물으니 등 뒤를 가리킨다. 노인의 등 뒤에 있는 참나무 아래 부분에는 어른 손바닥만 한 버섯들이 아직도 많이 붙어 있었다. 노인이 일어섰다. 아직도 이렇게 많이 있는데 왜 그만 따느냐고 물었다.

"이만하면 됐지, 더 따서 뭐 하우, 괜한 욕심이지."

남은 버섯이 많이 있는데 남겨 놓고 쓸 만큼만 채취하는 노인의 마음이 얼마나 여유롭고 넉넉한가. 버섯은 무슨 용도에 쓰는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이거 차로 끓여 마시면 아주 몸에 좋은 거예요, 저거 따다가 저 분들이랑 같이 차 끓여 들어봐요."

노인의 권유대로 몇 개의 버섯을 따서 손에 들고 일어났다. 아직도 버섯은 많이 남아 있었다. 노인은 산 아래 백둔리에 사는 정천환 노인으로 올해 77세라고 했다.

시장에 내다 팔 거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가끔 한 번씩 올라와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채취하여 차로 끓여 마신다는 것이었다. 같이 걸어보니 걸음걸이가 나에게 뒤지지 않는다. 비록 작은 체구에 초라한 모습이지만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노인이어서인지 아주 건강하고 편안해 보였다.

노인과 작별하고 앞서간 일행들을 부지런히 뒤따랐다. 일행들은 그 사이 명지 3봉을 지나 2봉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주봉은 어디야? 봉우리들이 자꾸만 우릴 속이는구먼."
일행 한 명이 꽤 힘이 드는 모양이다. 눈앞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주봉인가 하면 아니기를 몇 번인가 반복했기 때문이다. 주봉은 2봉을 지나서 얼마 가지 않아 나타났다.

명지산은 해발 1267m로 경기도에서는 화악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산이 험하지 않아 지구력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해볼만한 산이지만 우리들이 종주한 코스는 거리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 단풍골짜기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불상. 그리고 귀여운 다람쥐

▲ 억새무리 뒤로 보이는 승천사 일주문

정상에서 잠깐 쉬었다가 하산 길로 나섰다. 대부분 내리막길이어서 한결 수월하긴 했지만 무릎관절에 상당한 무리가 느껴져 조심스럽게 걸었다. 2시간을 걸어 익근리 골짜기에 접어들자 단풍이 화려해진다.

소금강에 버금간다는 아름다운 풍광에 단풍이 곱게 들어 그렇잖아도 더딘 발걸음을 자꾸만 붙잡는다. 암반 위를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며 바위 사이의 작은 소에 고인 물이 그냥 마셔도 될 것처럼 맑은 빛깔이다.

오색 단풍이 곱게 물든 골짜기를 타고 한참을 내려오자 승천사다. 절의 규모는 작아 보이는데 마당에 서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하얀 불상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 모습이 썩 어울리진 않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고 있었다.

절집을 둘러보고 나오는 입구의 돌담 위에서는 귀엽게 생긴 다람쥐 한 마리가 우리일행들을 전혀 위식하지 않는 듯한 여유로운 모습으로 먹이를 먹고 있었다. 요놈 좀 봐라 의젓하고 귀엽네 하고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자 그때서야 깜짝 놀란 듯 달아난다.

일주문 앞에는 억새무리가 어두워져 가는 승천사길을 안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오전 10시 50분에 상판리에서 시작한 등산이 어느 새 여섯 시간을 훨씬 넘기고 있었다. 익근리에 도착하니 저녁 6시 10분에 있는 가평행 마지막 버스를 40분 남겨 놓고 있었다.

민물매운탕을 시켜놓고 마주 앉은 일행들이 촉박한 막차시간에 맞춰 술잔을 기울이며 쌓인 피로를 풀어낸다. 매운탕 맛이 일품이었다. 일행들은 작정했던 것보다 많은 술병을 비운다. 산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어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 드디어 1267m 고지를 넘었구먼, 그런데 하루에 여섯 시간 반 산행은 너무 힘들다. 앞으로는 네 시간 이내로만 하자고. 산행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욕심이야, 이제 산행 욕심도 줄여야하지 않겠어?"

산행이 힘들었다고 투정하는 친구의 얼굴에 말과는 달리 만족한 표정이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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