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 풍성한 인생을 향유한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자신을 위해서는 사용하지도 누리지도 못하고 순전히 다른 사람이나 일을 위하여 고스란히 다 던져주고 자기 인생을 희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채 순절을 하고, 순직을 하고, 순교를 하여 자신의 삶은 무로 돌리고 남을 크게 유익하고 남의 삶을 풍성히 해주는 그런 삶도 있습니다. 봉사하는 삶이고 희생하는 삶입니다. 놀랍게도 오늘 우리가 누리는 엄청난 특권은 남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분들이 남긴 유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6월 6일(수), 57번째의 현충일을 지났습니다. 그날 역시 어떤 분들은 초여름에 주어진 이 황금같은 공휴일을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으로 유용하게 사용한 분들이 많이 있었을 테지만 우리 남선교회 회원들은 생면부지의 보은 속리산 지역 사람들을 위해서 속리산교회를 중심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봉사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장로님들과 집사님들, 남선교회 회원들이 전기공사를 하고, 낡은 집에 도배를 하고, 의료 봉사로 환자를 치료하고, 영정사진을 찍어 주었고 특히 권사님, 집사님 등이 함께 가신 미용팀은 수많은 사람들의 냄새나는 머리를 만져 주고 파마를 하고 미용을 도왔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느냐?”고 삽시간에 소문이 퍼진 동네 여론들 때문에 그곳 교회 장로님들의 얼굴에는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습니다.

이날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현충일이었기에 우리의 봉사는 더 큰 의미를 줄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6.25전쟁 시 개마고원 장진호 전투에서 희생되어 60여년을 차디찬 동토에 묻혀 있다가 미국에 의하여 발굴되어 우리나라로 송환된 호국용사들을 대통령을 비롯한 군 최고 지휘관들이 거수경례로 정중히 맞았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중 고 (故) 김용수 일병은 18세의 나이로 “형님 저는 나라를 지킬 테니, 형님은 집을 지키시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학도병에 입대해 전선으로 떠났다가 주검으로 고국에 돌아왔고, 故 이갑수 일병은 34세의 늦은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를 뒤로 하고 전장에 뛰어들었다가 헤어질 때 일곱 살, 네 살이던 두 아이가 60대의 백발이 되어서야 태극기 덮인 관으로 고국에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발전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자부심으로 향유하는 우리 시대를 위해 그렇게 자신의 삶을 모두 희생한 것입니다.

깊은 산골짜기에 홀로 핀 들꽃도 아름답지만 잘 가꾼 정원에 피어 온 가족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는 꽃이 더 아름답습니다. 고고히 홀로 피었다가 지는 이름 없는 꽃보다는 온 가족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정원의 꽃이 더 유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 예쁘게 자란 나무를 자신의 정원에 옮겨 심고, 더 많이 보고, 더 오래 즐기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화려한 꽃, 무성한 잎으로 끝나는 나무보다는 주렁주렁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 결실까지 풍성한 나무를 더 좋아합니다. 더 유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의 삶 역시 그렇습니다. 혼자 잘나서 고고한 사람도 귀하고 훌륭하지만 남에게 덕을 끼치고 세상에 유용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더 귀한 사람일 것입니다. 생존 그 자체도 아름답고 거룩한 일이지만 나로 인하여 남에게 끼치고 남길 유용함은 더욱더 귀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봉사는 아름답고 희생은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로 인하여 영생을 얻었고, 공로 없는 죄인이 예수님의 희생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삶보다는 봉사하고 희생하며 사는 삶의 가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우리가 부름 받은 이유는 주님의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했습니다. 벌들은 종종 벌통을 떠나서 죽는다고 합니다. 벌이 병에 걸려 자신의 몸에 바이러스 수치가 높아지면 다른 벌들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고의로 벌통을 떠나 외롭게 죽어 다른 벌들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한다고 합니다. 자기희생으로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의 속성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희생의 십자가로 인해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의 봉사와 희생 때문에 오늘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희생이 있기에 자식들이 살 수 있고 선구자의 희생 때문에 역사가 이어집니다. 호국보훈의 달에 감사한 마음을 품고 봉사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죽어서 풍성해지는 생명의 원리입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