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너무 오랫동안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주일만 견디면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 11층은 에어컨 없이도 견딜 수 있었으나 금년은 아파트 바닥까지도 더운 기운이 전해온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 가장 괴롬을 겪는 교인들은 남자 교인들일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90년대 이전만 해도 남자 교인들, 특히 남자 중직들은 무더운 여름에도 정장에다 넥타이까지 착용해야 했었다.

내가 목회했던 교회에는 아주 엄한 장로 한 분이 계셨는데 찬양대원들이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은 것까지 지적하는 분이었다. 교회 중직 중에 정장을 하지 않고 예배에 참석한 분이 있으면 따로 불러다가 혼쭐을 내고는 했다. 그러므로 여름 양복이 없는 가난한 교우들 중에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교회마다 에어컨을 가동함으로 어느 정도 참을 만하지만, 스레이트 지붕과 브로크 벽이 전부인 초라한 교회당에서 몇 대의 선풍기로 견디면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고역이었다.

우리 교회는 그 장로 분이 돌아가신 후 당회에서 7월 8월에는 반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기로 결정할 때 누구 하나 반대하는 분이 없었다. 물론, 지나치게 강요된 복장 때문에 예배가 지겨운 시간이 되도록 만드는 것도 잘못된 모습이지만, 젊은 여자 교인들 중 보기가 민망한 야한 복장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모습도 눈에 거슬리는 모습이다. 하나님과 다른 교인들에게 예의가 담긴 복장이면 바른 예배 복장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삼복 더위에 잊혀지지 않는 것은 시골교회 목회 시절이다. 나는 1968년 신학교 2학년 때 시골교회 교육전도사로 부임한 후 나중에는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마석에서 십리길 들어가는 가곡교회였다. 당시 그 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낙후된 곳이었다. 목사 사택도 달랑 방이 둘 뿐이고 목욕시설 따위는 없었다. 그러므로 여름이면 엄청난 고역에 시달려야 했다. 양복도 지금처럼 품질이 좋은 것이 아닌데다가 선풍기 없이 설교를 하고 나면 와이셔츠가 젖다 싶이 했다.

밤이면 호롱불을 켜고 예배를 인도하고 나면 코나 와이셔츠나 그슬림이 묻어 있기 일 수였다. 70년대 초에야 그 마을에 전기가 들어와 환한 전등과 선풍기와 흑백 TV를 맛보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지만, 그 몇 년의 전기 없는 마을에서의 목회를 통해서 과거 선배 목회자들이 얼마나 고난 중에 사역했는가를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예전의 목회자들은 선풍기나 마이크도 없는 채 대부분 50분 이상을 설교하는 것이 상례였었다.

그러므로 춘하추동 똑같은 양복을 입고 오늘날 목회자에 비해 두 배의 시간을 들여 고함치듯이 설교하고 나면 이러한 폭염에는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선배들의 목회 시절에 비하면, 우리들은 전기, 컴퓨터, 전화, 승용차, 에어컨 시설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지금의 목회 환경은 너무나 복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감사의 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이렇게 조그만 날씨가 무더워도 마치 큰 억울함을 만난 듯이 불만지수만 높아가는 모습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이렇게 무더운 폭염과 잠 못 이루게 하는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어도 런던 올림픽에서 보여주는 한국 선수들의 승전 소식이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런던에서 연일 중계를 함에도 기대했던 메달들을 따지 못하는 패전의 소식만 들려왔더라면 이 폭염과 열대야 중에서 토해내는 불만지수가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폭염과 열대야 와중에도 나는 편안하게 올림픽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올림픽 게임의 대부분이 한 밤중에 중계되기 때문에 시무 중이었다면 12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로 본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보면 각 교회학교 여름교육행사와 각기관의 많은 행사들, 그리고 무더위 때문인지 돌아가시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이러한 폭염과 열대야 중에 담임목사는 물론이고 많은 교역자들의 고생은 더욱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 폭염이라고 해서 목회 사역이 감해지는 것이 아니다.

문득, 과거 여름 장마철, 어느 기관의 수련회 때문에 차량을 타고 이동하다가 길과 다리가 끊겨 갖은 고생을 하면서 늦게 도착했던 기억과, 폭염 중에 어느 교우의 선산에 올라 땀을 흘리며 하관식을 집례하던 기억이며, 장마로 인해 마장동과 사근동 저지대가 물에 잠기어 지하실에 세 들어 살던 교우들을 찾아가 함께 아파하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본 교회 교역자들은 이 무더위 중에 너무나 힘든 사역을 하고 있는데, 교회의 녹을 받고 있는 나는 편안하게 올림픽이나 즐기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스럽다.

여하튼 은퇴자가 누리는 특혜는 시간의 자유이다. 한 밤중에 깨어서 글을 쓰든, 자정이 넘어서 올림픽 중계를 보든, 그 다음날 늦잠을 자든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지난 주일인 8월 5일은 한국과 영국의 축구 시합이 있던 날이다. 새벽 3시인가, 중계가 있어 아예 포기하고 자정 쯤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온 아파트가 들썩일 정도의 고함 소리가 나기에 잠이 깼다. 열대야 때문에 모든 창문을 열어 놓았기에 그 고함 소리가 크게 들리었던 것이다. 새벽 4시경이었다.

알고 보았더니 한국이 영국에 한 골을 넣은 것이다. 그 때부터 열심히 축구 중계를 관전하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우리나라 축구가 영국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판의 오심(誤審) 때문인지 페널티킥을 당하여 동점이 되고 말았다. 왜인지 질 것 같은 마음에 TV를 끄고 눈을 감고 잠을 들려고 했다. 다시 온 아파트에 고함 소리가 울렸다. 다시 일어나 TV를 켰다. 우리 키퍼가 두 번째 당한 페널티 킥을 멋지게 막아낸 것이다. 이렇게 켰다 껐다,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면서 새벽을 보냈다.

결국 한국이 축구의 종주국인 영국을 이기는 쾌거를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 은퇴자가 누리는 특혜인 것이다. 시무할 때 같으면 주일날 새벽에 감히 할 수 있는 일인가? 늦은 밤에 잠들고 이른 새벽 깨어서 이런 식으로 보냈다면 주일날 여러 번의 예배 인도와 설교, 많은 회의들을 감당이나 했겠는가? 내일 새벽이면 강력한 우승 후보인 브라질과 시합을 하게 된다. 오늘 밤에도 11시 넘어서 잠이 들 예정이다. 바라기는 지난번 주일 새벽처럼 내일 아침에도 많은 고함 소리가 아파트에 울려 퍼졌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