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입니다. 또 한 차례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고, 귀성전쟁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래도 추석은 참으로 즐거운 명절입니다. 금년 추석은 주일날이 되어서 연휴를 즐기려는 이들에게 조금은 아쉽지만 개천절과 이어서 연휴로 쉬는 기업들도 많다고 하니 나름대로 명절의 여유를 누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도 주일은 본 교회에서 드리는 것이 당연하고 교인됨의 의무이지만 그래도 이번 추석만은 고향 교회에 가서 추석예배를 드리라고 권고했습니다. 고향 교회를 찾아가서 감사헌금도 드리고, 고향 교회 목사님께 선물도 드리고, 고향 교회 성도들과의 교제도 나누고 돌아오라고 한 것입니다.

추석을 단순히 조상들에게 차례(茶禮)를 드리는 날이나 이교적(異敎的) 명절로 보내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 기독교인들의 가족 사랑과 관계 회복의 기회로 삼아서 추석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추석 명절을 더 적극적으로 누리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장중(掌中)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의 모든 것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으로 해석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추석이든, 설날이든, 다른 어떤 명절이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가족이나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원래 명절(名節)이나 잔치(祝祭)는 제의적(祭儀的) 의미로 시작되었습니다. 추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유교 전통의 문화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추석이 조상에게 차례(茶禮)를 지내는 날로 발전되었지만 유일신 하나님을 섬긴 이스라엘 전통은 하나님께 드리는 수장절로 발전 되었습니다. 문화, 전통의 차이일 뿐 추수와 가을 수확이 자신들의 노력의 열매라기보다는 누군가의(조상이든, 하나님이든) 은혜라고 생각하여 추수를 감사하는 전통은 동일합니다. 다만 우주 만물의 주관자가 누구인지를 모르던 우리 동양 사람들은 그 은혜를 조상에게로 돌렸고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아는 이스라엘은 그 가을 추수의 은혜를 하나님께 돌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의 추수, 지난 한 해를 감사한다는 이 아름다운 전통을 잘 계승하고 우리에게 한 해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고 더 적극적으로 이 감사를 가족 사랑과 이웃 돌봄의 기회로 삼는 기독교 명절로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추석이나 명절은 단순히 먹고 즐기는 날이 아니라 제의적(祭儀的)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추수와 한 해의 무사함이 자신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하나님 혹은 조상)의 은혜라는 의식(意識)은 인간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오만(傲慢)이나 방자(放恣)함에 빠지지 않고 겸손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온 우주만물의 성쇠(盛衰)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하여, 곧 하나님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의식의 명철이나 축제의 본래적 의미는 선양(宣揚)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추석은 지난 한 해의 은혜와 모든 수확(收穫)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절로, 그리고 가족 사랑의 명절로 지켜져야 합니다.

명철이나 축제의 본래적 기능은 제의적(祭儀的)으로이었지만 그러나 이 명절(축제)의 사회적 기능 역시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추석을 비롯한 명절에 적극적으로 고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과 나눔의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부족했던 나의 어릴 적의 추석이나 설날은 매우 쓸쓸한 명절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친척들과 어울릴 수 없었고, 같이 뛰놀던 친구들조차 추석이나 설날만큼은 나를 이방인 취급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곧 추석이나 설날은 제사 드리는 날로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추석은 기본적으로는 신에게 드리는 제의적 의미의 날이었지만 그러나 또 하나 가족 통합의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절에는 평소에 무심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조금은 부족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조차도 이날은 가족이요 친지임이 확인되고 품어 줄 수 있는 ‘우리’ 라는 의식이 강화됩니다. 당연히 고속도로가 막히고 가는 길이 쉽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교통전쟁에 뛰어드는 이유는 단순히 동물적 귀소본능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 있고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 때문입니다. 생존경쟁에 시달리며 잊어버렸던 가족이나 친지에 대한 ‘우리의식’을 확인하고픈 정서적 요구 때문입니다. 자라온 고향, 어릴 적에 뛰어 놀던 그 동네에 대한 추억 때문입니다. 어쩌면 일 년에 한 두 차례 누리는 이런 가족통합의 힘이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정서적 안정을 갖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명절이 되면 인심이 후해지고, 음식을 나누고, 어른들을 찾아보고, 덕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 마음의 여유 역시 명절의 사회적 기능 중의 하나입니다.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시대적 어려움이 가득한 금년에도 어김없이 추석을 맞습니다. 이 추석을 통하여 좀 더 너그러운 마음, 여유 있는 생각, 그리고 한 해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 그리고 가족통합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교적 전통이 아니라 우리 기독교인들의 축제, 사랑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즐기고 누리는 추석, 우리들의 명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