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60이 넘고 목사이기도 한 나로서는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에게서 ‘기다림’이라는 말의 의미는 참으로 소박한 개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건 철없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도 합니다. 내가 자란 고향 마을은 읍내에서 대략 20여리(8km) 떨어진 경상북도 영주의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어릴 때 그 동네가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집이 촘촘히 붙어 있는 아랫동네는 세상에서 제일 큰 동네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산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5일마다 한 번씩 영주읍내에서 서는 장날을 늘 잔칫날처럼 생각했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은 별 볼일이 없어도 8Km가 넘는 먼 길을 걸어 장엘 갔고 아이들 역시 장에 따라가는 것을 최고의 나들이로 생각했었습니다. 당시 시골 아이들은 모처럼 외갓집에 가는 일 외에는 동네 밖 출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부모님들을 따라 시장엘 가면 그래도 그 맛있는 찐빵, 그렇게도 달콤하던 풀빵 정도는 얻어먹을 횡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럴 기회는 그야말로 횡재를 만난 날이나 가능하고 어린 날의 거의 모든 장날은 읍내시장엘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는 일이 일상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새 옷이나 고무신을 사오시기로 약속하신 날은 물론이지만 그러나 우린 무턱대고 시장가신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나는 늘 누나와 함께 장에서 돌아오실 어머님 마중을 나갔고 동구 밖으로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그야말로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어떤 날은 다른 이웃 아줌마는 다 돌아오는데 어머님만 늦게 오셔서 얼마나 애태우고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신작로까지만 마중을 간다고 나가지만 마음이 조급해서 자꾸만 자꾸만 읍내 쪽으로 가다가 보면 너무 멀리 가서 도리어 어머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다른 아이 엄마는 오시는데 우리 엄마가 오지 않을 때의 마음은 어린 마음에도 정말 야속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 멀리 산모퉁이로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었습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이 내가 첫 번 경험한 ‘기다림’이었고 지금도 ‘기다림’하면 늘 그때가 생각납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것을 기다렸습니다. 합격통지를 기다리고, 그리운 사람들을 기다리고, 그리고 수많은 시간을 기다림 속에서 살았습니다. 사실 산다는 것이 곧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를 믿고, 성경을 배우고, 목사가 되면서 참으로 절실한 기다림을 알았습니다. 그 기다림이야 말로 시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아들의 기다림에 비할 수 없이 절실한 기다림임을 알았습니다. 기다림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우린 2013년의 새해를 기다리는 절기로 시작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대림(待臨)으로부터 우리를 향해 베푸실 새해의 은총과 사명, 그리고 특히 우리 교회를 통해 새해에 열어 가실 하나님의 새 역사를 기다립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대림절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이 예수님의 구속의 사건을 따라 사는 삶이되기를 위함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주님의 왕 되심을 영광돌리고, 우리를 위한 주님의 수난과 부활에 참여하고, 주님의 승천과 더불어 임하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함입니다. 대림절 절기는 성탄 전 4주간을 말하며 이 기간은 소망과 정의,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로 지킵니다. 초대교회 때는 이 기간을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지켰습니다. 이때 세례를 준비하는 이들은 약 1개월간 매일 교회에 출석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준비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그동안의 신앙생활을 반성하며 기도와 참회함으로 이 기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대림절은 ‘겨울철의 사순절’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이 신앙적 새해가 되는 이 대림절을 예님과 함께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신앙을 다시 세우는 계절로 시작합니다. 초림(初臨)하신 주님의 성탄을 기념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동시에 재림(再臨)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로 지킵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의 보혜사로 오신 성령의 충만함을 기대함으로 지킵니다. 하루의 시작은 새벽에 있고 한 달의 시작은 초하루로 시작 되듯이 우리의 한 해를 대림절, 기다리는 절기로 시작 하는 것입니다.

나는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시장간 엄마를 기다리며 기다림의 개념을 배웠지만 이제 역사의 종말,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될 그 엄청난 새 역사를 기다리는 기다림으로 이 대림절, 2013년을 시작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영적준비의 미흡함을 돌아보면서 “오! 주여 어서 오십시오”라고 넘치는 기쁨으로 주님을 맞을 그날 준비하며 기다립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우리 신양의 모든 가족이 믿음의 손을 함께 잡고 감격의 기쁨으로 주님을 함께 맞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린 여기, 이곳에서도 한 가족이지만 천국에서도 가족이기를 바랍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