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명박의 감성화법

이명박 대통령의 오늘 기자회견 서두엔 퍽 인상적인 멘트가 있다.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늦은 밤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라는 부분이었다.

우리 대통령들께서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면 항상 청와대 뒤로 올라가시는가 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인 2004년 탄핵 반대 촛불집회 때 청와대 뒷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후에 이런 술회를 했다. “한밤 중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그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봤습니다.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수준 높은 시민들을 상대로 정치를 하려면 앞으로 누구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이다. 어쨌든 대통령들께서는 우호적이건 우호적이지 않건 시민들의 촛불을 어떻게든 다 보고 있는 모양이다.

■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

오늘 이명박 대통령 연설 중에서 핵심적으로 주목되는 부분운, ‘미국 정부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지금 미국과 협상에서 이미 이 부분은 합의했다는 점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수전 슈워브 대표와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있게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풀이된다. 

오늘 이명박 대통령은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들여오겠다”라고만 강조했다. 그러나 쟁점은 또 있다. 우선 미국 업자들이 30개월을 추려내고, 그것을 미국 정부가 인정한다고 치자.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우리는 군소리없이 믿고 사야 한다. 미국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미국이 과연 믿을 만한 나라일까.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2003년 1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미국 쇠고기 수출업체들은 팔지 말아야 할 쇠고기와 뼈, 혈청 4887톤을 무려 335차례나 수출하려다가 우리 검역 당국에 적발된 적이 있었다. 또 2006년 10월부터 최근까지 수입할 수 없는 갈비통뼈를 9회 적발당했고, 등뼈를 2번, 다이옥신을 1번 해서 모두 12번 걸렸다. 게다가 미국 축산 육류업자들은 정부와 깊은 내통 관계에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런 상황인식이 모자랐던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믿어야한다”라고만 강조했다. 

쟁점은 또 있다.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는 들여오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게 영원히 그렇게 하겠다는얘기냐, 이 부분은 명확하지 않다. 지금 김종훈 본부장과 슈워브 대표 사이에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의 수출금지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이냐는 이른바 '시효' 문제와 수출금지 자율규제를 어긴 미국의 수출업자를 어떻게 규율할 것이냐는 문제를 놓고 소위 ‘기술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또 비록 30개월 미만이라 하더라도 말 그대로 광우병위험물질인 뼈, 내장 이런 것들을 다 들여오게 된다. 그리고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독단적으로 수입 중단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미국을 설득해야만 한다. 국민이 이런 협상에 납득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 알쏭달쏭 민영화

오늘 이명박 대통령도 "가스와 물, 전기, 건강보험 등은 민영화 계획이 전혀 없고 애초부터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공기업 개혁을 일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 하나 국민의사를 물으며 점진적으로 해서 민영화할 수 있는 것은 민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기업 민영화라는 표현을 쓰지 말고 ‘공기업 선진화’라는 표현을 썼다.

정리해보자. 가스, 물, 전기, 건강보험을 다루는 공기업 또는 공기관의 민영화는 없다, 다만 매각할 수 있는 공기업은 민영화보다는 선진화라는 개념이 더 맞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미묘한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오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기, 가스, 수도, 건강 보험 등 '4대 부문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면서도 "부분적인 위탁 경영 등 경영효율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수도 부문에서) 누수관리만 따로 떼어서 위탁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민영화의 전초 단계 아니냐는 해석을 낳지 않겠나. 어제 얘기와 오늘 얘기,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할 수 없지만, 뉘앙스는 분명히 다르다. 결국 민영화보다 구조조정·통폐합에 힘 실릴 것 같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