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한국 나이로 나는 75세. 아내는 68세가 되었다. 이제는 아무리 노인이 아닌 척 행동해도 읍사무소나 병원에 가면 별 수 없이 노인 취급을 받는 나이가 된 것이다. 외양으로 보면 크게 노인티가 나지 않는 것 같은데 50대 나이에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 찍은 부부 사진을 보면 이렇게 젊은 때도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변해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면서 씁쓸한 마음이 고인다.

변우량 교수의 인생칼럼을 읽어보면 “60대의 삶을 초로(初老)라고 하지만, 질병만 없으면 70까지는 노인티를 내지 않고 청년처럼 행세할 수 있다. 그러나 70고개를 넘어서면 여기저기서 노인증상이 하나씩 나타난다고 한다. 대표적인 현상이 질병으로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 일이고, 고독감과 허무감으로 고향이 그리워지고, 교회나 산사(山寺)를 즐겨 찾게 되고, 동창회나 종친회를 기웃거리게 된다.”고 했다.

그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 우리가 노인기에 들어섰다는 대표적인 예가 대부분 잠자리에서 나타난다는 데 있다. 과거 시무할 때는 부부가 11시경에 잠들고 새벽 4시 경에 깨어서 새벽기도회를 나갔으나 지금은 취침과 기상 시간이 각각 다르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꼭두새벽에 각각 잠이 깨므로 서로의 잠을 방해하기 일 수이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여행할 때에 호텔이나 콘도같은 곳에 유숙할 때는 별문제 없으나 조그마한 모텔을 이용할 때는 불편을 느낀다.

또 하나는 TV채널이다. 나는 드라마를 좋아는 경향이 있어서 한 두 가지 드라마를 이리 저리 돌려보면서 시청한다. 그에 비해 아내는 뉴스와 좌담, 다큐를 선호한다. 그러므로 은퇴한 후에 나는 서재에서, 아내는 안방에서 각각의 TV로 마음껏 시청하는 것이 생활화 되므로 이제는 분방(分房)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때로는 홍익교인들에게 송구스러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과거 2006년도 고린도서를 강해하면서 분방하는 것이 옳지 않은 양 강조했었기 때문이다.

고전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하여 합의 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고 한 말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말씀의 강조점은 분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부부들이 분방함으로 성적(性的)인 면에서 시험을 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있었다. 문제는 나이가 연로한 부부들에게까지 그런 주장을 했었다는 점이다. 또한 지금도 부부가 각각의 자유로운 삶을 누리면서 분방할 수 있는 것은 부부끼리만 살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우리 부부가 공유하는 가장 즐거운 시간은 아침이다. 주로 빵과 떡으로 아침식사를 하면서 영화를 보는 시간이다. 거실에 큰 스크린을 비치하고 컴퓨터에서 다운받은 영화(한편에 몇 백 원 정도)를 가정용 프로젝터로 보는 맛은 굉장히 짜릿하다. 때로는 국내 극장에서 개봉전인 영화를 보기도 한다. 또 하나의 즐거운 시간은 외식(外食)이다. 가까운 상가에서 사온 김밥에서부터 싸고 맛있는 음식점, 제법 고급스러운 음식점 등이 주변에는 널려 있다.

한 마디로 은퇴 후에 삶의 맛은 아무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은퇴목회자 모임에 가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간은 70대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시무하면서 목회업무에 너무 시달리던 삶에서 벗어나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취미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변우량 교수는 “노후에 육신적 고통이 없어야 되고, 인간관계가 좋아 고독이 없어야 하고, 걱정거리로 고민이 없어야 노년이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노인기에 접어들면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밝은 면도 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자랑, 미련들이 점점 사라지고 주님을 향한 소망이 점점 크게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히려 교계에서나 정치계에서 권력욕에 매여지내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해 보일 뿐이다. 이제는 화려한 백화점에 가도 사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 몇 만 원 짜리 뷔페를 먹으나 김밥 한 줄과 오뎅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나 별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다만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다. “주님, 우리가 의지할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노년의 삶도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가오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옵소서. 겉사람은 비록 날로 쇠약해지오나 속사람은 날로 주님을 닮아감으로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향기만 나타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