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님이 다 해주실 거야”

이 발언이 나온 시점은 지난 대선 운동 기간 때였다. ‘어록’의 주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지지 세력이었던 ‘MB연대 아줌마부대’에 속한 김모 씨. 그녀의 이런 활동상은 지난 해 12월 22일 MBC TV <MBC스페셜>을 통해 방송됐다. 그런데 그때 그 장면을 갈무리한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이 ‘죽을 쑤는 상황’만 발생하면 인터넷에 급속하게 출몰한다. ‘지각없는 아줌마’라는 제목으로 말이다. 사실 요즘 ‘MB님이 다 해주실 거야’라는 얘기를 어디서 함부로 했다가는 최소한 눈총, 심하면 돌 맞음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경제 상황이 매우 나빠졌고, 그 원인 제공을 이명박 대통령이 했다는 다수 여론 때문이다.

▲ ⓒ 우엠다닷컴

그녀의 정치적 선택, 즉 MB를 지지함에 대해서 타박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녀는 도리어 ‘대통령이 누구인지’ 신경조차 안 쓰며 덮어놓고 정치인을 욕하는 사람보다는 낫다. 사실 김모 씨는 애들 차비, 남편의 일자리 걱정에서 벗어나고자, 그러니까 더 나은 세상을 이루고자 특정 정치인에게 희망을 건 것 아닌가. 또한 심정적 지지 정도에 그치지 않고, 그의 선거운동을 발 벗고 도운 것 아닌가. 적극적 결사의 표현은 민주주의의 소중한 열매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김모 씨의 한 겨울 멸사봉공은 매우 의미 있는 가치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해 보자. 정말 MB님이 다 해주실 수 있는 것을까. 맨 위 구멍이 주인을 잃었고, 맨 아래 단추는 남아버렸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대통령이 다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대통령을 봉건시대 절대 권력자로 인식하고 있음이다. 사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무한권력자’라는 인식을 지울 길이 없다. 앉히고 싶은 인사들 낙하산복 입혀 마음껏 투하하고, 입법부 다수의 힘을 기반으로 만들고 싶은 법을 다 만들고, 경찰·검찰·국정원·법원 등 공권력을 총동원해 저항세력을 거침없이 짓밟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인 MB님이 쓰고 있는 것이 요술 감투일까?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능’을 짚어보자. <위클리 경향> 779호의 한 부분이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외국과의 조약을 체결·비준(제73조)할 수 있고, 공무원을 임면(제78조)할 수 있다. 이렇게 대통령은 2만여 명에게 청와대, 정부, 정부산하단체, 공기업 등의 직장에 일자리를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의 1년 예산 규모가 200조 원이라고 할 때 대통령은 집권 5년 동안 10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또 대통령은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과 같은 권력기관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들 기관에서 나오는 정보도 독점할 수 있다.”

얼핏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이 권한으로 ‘없는 사람, 부요하게 만드는’ ‘가난한 사람, 꿀리지 않고 사는’ 김모 씨가 꿈꾸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점은 또 다른 문제이다. 지도자의 혜안과 바른 집행 결정이 변수가 된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 시국을 너무나 단조롭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겨레21> 713호를 보면 유시민 전 의원이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발언을 상기시킨 부분이 나온다. 유시민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본인부터 유세를 다니면서 '분식집 사장님, 장사 안 되죠. 내가 잘되게 해 줄게요'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수급 구조(영세 자영업이 만성적 공급 과잉 상태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는 미용실이나 분식집이 장사가 잘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경제현실을 도외시하며 환상만 줬다는 것이다.

‘대통령 만능주의’는 사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총수사면까지 해줬지만 투자 및 고용이 부진하다”며 연일 재계를 비판했다. 그렇다면 대통령 한 말씀에 재계가 움찔하며 투자할까.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 과거 관치금융 시대에는 ‘정부 말 들으면 떡이 나온다’는 법칙이 있었다. 정부가 “투자하라” 그러면 투자했던 것이다. 왜냐. 손실이 생기면 정부가 은행을 통해 메워주곤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외환위기를 겪은 뒤로 은행은 제 아무리 힘쓰는 자들이라도 뒷감당 안 해 주면서 손해 보라는 식으로 주문해봐야 들은 척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MB가 다 해주실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는 대통령 중심제에 기초해 있지만 대통령 만능제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모 씨의 기대'는 미안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꿴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옷을 뒤집은 상태에서 꿴 ‘대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이제 와 ‘왜 김모 씨를 구석에 모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왕 김모 씨 등에 의해 고양된 ‘정치 참여’의 열기를 이대로 사장시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두 마디 더 덧붙인다. 김모 씨. 다음에 또 누군가에게 기대를 거실 요량이라면 좀 더 공부하신 후에 카메라 앞에서 ‘XX가 다 해주실 거야’ 대신 ‘XX가 이것만은 해줄 거야’라고 하시기 바란다. 왜 고생하고 욕까지 먹는가. 

'여성신문'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 시사평론가, 한양대(안산)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