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몸이 아파도 매일 일터로 나가야만 하는 한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내가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내와 저의 몸과 역할을 바꾸어 주십시오. 저도 좀 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아내가 되고, 아내는 남편이 되어 깨어났습니다.

출근할 남편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 갈 준비를 시키고, 아침 식사를 하게 한 후에 점심을 챙겨주고, 학교에 데려다 준 후에 집에 오자마자 그 날 해야 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그 날 드라이클리닝 해야 할 옷을 세탁소에 맡기고, 오는 길에 은행에 들러 전기세와 전화세를 내고 마켓에 들러 저녁 식사거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자마자 침대를 정리하고, 집안 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었습니다. 벌써 아이들을 데려와야 할 시간이 되어, 급히 학교 앞으로 나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날 오후에 해야 할 일과 그 날의 숙제에 대해 옥신각신 아이와 다투었습니다. 그러나 최대한으로 친절한 엄마가 되기 위해 끓어오르는 화를 참았습니다. 아이들 간식거리를 챙겨주고 텔레비전을 보게 한 뒤 아이들 곁에서 옷을 다렸습니다.

오후 4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녁 식사거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마켓에서 사온 저녁 식사거리들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나물을 다듬고 국거리와 찌개 거리를 다듬고 준비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차려준 후 식구들과 그 날 있었던 얘기를 나누고, 그 후에는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정리한 뒤에 빨래를 접어서 넣고 아이들 숙제를 감독했습니다.

밤 9시가 넘자 아이들을 씻게 한 후, 잠자리에 들도록 했습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보낸 후라 이때쯤 되면 거의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루의 일과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남편과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불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늘 집에서 편히 쉬고, 나만 뼈 빠지게 일한다고 생각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젠 알았사오니 저를 다시 남편으로 돌려보내 주시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어제 하루 동안 많은 것을 배웠을 줄로 안다. 네 소원을 들어주마. 그러나 앞으로 10개월은 기다려야겠다. 어제 저녁 남편과의 잠자리로 인해 너는 지금 임신 중이다.”

우린 서로 참 모릅니다. 잘 안다고 하지만 실은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서로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하면서도 실상은 모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수많은 사람들은 딱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딱 둘입니다. 그럼에도 이 둘은 서로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그러니 이 둘의 관계를 벗어난 다른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사는 우리들은 서로에 대해 뭘 제대로 알겠습니까? 그저 늘 오해이고 편견의 연속입니다. 나이 60, 70이 된 부부도 이젠 서로에게 환할 것 같은데 아직도 싸우는 부부를 보면 ‘당신은 아직도 나를 모른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그 유명한 탕자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그 넓은 사랑과 어떠한 죄인도 돌아오면 다 용서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을 증언하신 복음중의 복음입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그 기록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단 한가지로 설명해 달라고 하면 꼽아 줄 정도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것을 조금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어느 아버지에게 아들 둘이 있는데, 작은 놈이 괘씸하게도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유산을 달라고 떼를 씁니다. 유산이란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주는 것인데,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계시는데도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달라고 떼를 씁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버지는 마침내 재산을 떼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것 챙겨 갖고 독립하겠다고 멀리 가서 허랑 방탕, 제멋대로 살다가 홀랑 다 까먹고 알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뒤늦게 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세상이 어디 만만한가요? 돼지보다 못한 비참한 처지에 떨어진 뒤에야 고향 집을 기억해 내고,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그 아버지는 둘째가 유산을 받아 갖고 나가는 그 순간부터 그 놈이 망할 것을 예상하고 늘 대문을 열어놓고 언제나 돌아오려나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어느 날, 저 멀리서 거지 하나가 나타나자마자, 저 놈이 바로 내 아들이다 판단하고 버선발로 달려가 맞이해 줍니다. 왜 거지를 보자마자 자기 아들이라고 했겠습니까? 예상했다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 아들의 신분을 이미 포기했다며 ‘머슴’으로나 받아달라는 알거지된 둘째 아들을 향해 무슨 소리냐 넌 여전히 내 아들이다 하며, 돌아온 둘째를 위해 잔치를 벌입니다.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성실한 첫째 아들, 자기 집에서 풍악 소리가 들려오자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가 자초지종을 듣고는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를 알고 아버지가 달려 나와서 들어가자고 했지만, 착하고 순종적인 줄로만 알았던 첫째 아들이 그 아버지에게 눈을 부릅뜨고 대듭니다.

그리곤, 돌아온 둘째, 즉 자기 동생을 동생이라 부르지도 않습니다. ‘이놈은 이제 자기에게 돌아올 남은 재산마저 축내려고 돌아온 음흉한 놈’이라고 판단합니다. ‘그 놈은 능히 그럴 놈’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버지의 사랑? 웃기는 소리, 아버지는 그동안 자신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 즐기라고 준 적이 없을 정도로 인색한 구두쇠였다’고, 남들은 몰라도 자기는 자기 아버지를 가장 잘 안다고 소리를 높입니다. 그동안 말을 안했을 뿐이지 자기 식구들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며 고집을 부립니다.

그리하여 모처럼 그 집안에 풍류 소리가 나다가 갑자기 어색함이 흐릅니다. 아들이 집을 나가 오랜 동안 허전하던 집안에 마침내 그 아들이 돌아와 생기가 돌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될 직전에 찬 물이 쫘악 뿌려졌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아버지의 사랑, 자식들이 모릅니다. 퍼주고 또 퍼주어도 더 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 자식들은 모릅니다. 그뿐 아닙니다. 자식들은 서로도 모릅니다. 그래서 늘 서로 다툽니다. 저 녀석이 나보다 뭔가 더 가져가지 않을까... 내게 돌아올 것이 엉뚱하게도 동생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 오랜 만에 왔는데 뭐 좀 가져갈 게 없나 ...

이들은 정말 서로 잘 모릅니다. 같은 핏줄이라고 여겨 으레 잘 안다고 여기지만 실은 서로 모릅니다. “내가 너를 낳았는데 아무렴 내가 널 모르겠니?” “걔? 내 동생이야. 내가 잘 알아.” “우리 아부지,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냐?”

식구들끼리, 가족끼리 서로 으레 잘 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말을 함부로 합니다. 상처를 줍니다. 아니, 그 사실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식구들을 가장 잘 안다고 큰소리칩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서로 모릅니다. 안다고 생각할 뿐이지 실제론 모릅니다. 그래서 대화를 해도 피상적이요 상투적이요 깊이가 없습니다. 상대방의 심연에 닿지 않는 자기 소리만 하다 끝납니다. 오랜 만에 만나서 반가운 대화를 한다고 하는데 뭔가 허전합니다. 그러기에 모처럼 만나 대화를 시작하면 늘 다툽니다. 그리곤 돌아올 때, ‘내 다신 오나 봐라’ 하면서 문을 나섭니다.

누구 이야기? 설 명절에 모이는 우리들의 집안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가만 묵상하다 보면 마치 명절에 모처럼 만나는 우리네 집안 이야기 같습니다.

정말이지 오랜 만에 만났습니다. 보고파서 만났습니다. 오고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고생하며 찾아갔습니다. 끌어안고 얼싸안고 그리 만났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얼마나 보고픈 얼굴들입니까!

그런데 반가움은 그 때 잠시 뿐, 조금 시간이 흐르면 갈등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다툼의 조짐이 보입니다. 그리곤 마침내 말을 함부로 합니다. 서로 짐스러워하고 귀찮게 여깁니다. 즐거움은 만나는 그 때 뿐, 조금 지나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 모릅니다! 서로 잘 안다고 아는 체 하며 말하지만 실은 잘 모릅니다.

그러기에 명절에는, 모처럼 만났을 때에는 반드시 필요한 게 있습니다. 떡국 보다 더, 꼭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놀이 문화! 놀면서 서로를 알아갑니다. 아이들에게만 놀이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명절엔 가족 모두가 쉬는 게 아니라 놀이를 함께 해야 합니다. 윷놀이를 하든, 주사위 게임을 하든 뭔가 함께 할 놀이 문화를 가져야 합니다. 반갑다며 인사하고는 그냥 가만있으면, 줄 창 텔레비전만 쳐다보고 있으면 만남의 의의가 사라집니다. 서로 함께 움직이고 함께 하며 서로를 알아가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 집에 세배를 오는 청년들에게 나는 늘 빳빳한 천 원짜리 한 장을 세뱃돈으로 주곤 했습니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세배 오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 줍니다. 왜 주는가요? 그거 판돈입니다. 곧이어 나는 윷판을 벌입니다. 그리곤 그 돈을 다 회수합니다. 그거 다 회수하려면 얼마나 소리를 질러야 할까요? 때로는 홈그라운드 이점을 살려 고집도, 떼도 부려야 합니다. 그리곤 그렇게 서로 소리를 지르며 생떼를 쓰면서 웃으며 윷놀이에 열중하다 보면 서로를 알아가게 됩니다.

우리 집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오락기를 사달라고 떼를 써서 오락기를 사준 적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 열심히 하다가 가끔 나에게 와서 시합하자고 할 때가 있습니다. 당시 전자오락이라면 나도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라, 내 순서가 되면 여간해선 죽질 않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기다리다 지쳐서 옆에서 “아빠 죽어라, 아빠 죽어라!”합니다. 처음에는 별로 귀에 거슬리지 않았는데, 가만 듣고 있으려니 아들이 아버질 보고 “죽어라, 죽어라!” 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상합니다. 그렇다고 죽을 아버지가 어디 있나요? 더 오래 삽니다.

그런데 웬만큼 아이와 경쟁을 하듯이 몰두하다가 문득 자신을 보니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큰 어른이 애들이나 하는 전자오락을 아이에게 지기 싫어서 밤새 함께 큰소리치며 하고 있다니 ...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왜? 오락 자체는 유치한 것이지만 상대방은 내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행동, 시간들을 통해 나는 아들을 배우고, 아들은 애비를 배우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포옹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이번 설에, 함께 모일 때, 자신이 가족들을, 식구들을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잘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조카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고, 친척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아는 체 하며 넘겨짚지 마십시오.

설, 왜 설이라고 하는가요? ‘설’이라는 말은 ‘익숙하지 못하다’, ‘삼가다’는 뜻에서 왔답니다. 그러기에 ‘설익다, 어설프다’는 단어가 있습니다. 설! 새해 첫날이기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즉 새해가 시작되어 모든 게 새롭고 서툴다는 것입니다. 그전까지 알던 것은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툽니다. 그래서 때로는 설설 깁니다.

그전까지 알던 자식은 잊으십시오. 그전까지 알던 아버지, 어머니는 잊으십시오. 그전까지 알던 일가친척들은 모두 잊으십시오. 설날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툽니다. 서툴기에 조심스럽습니다. 서툴기에 상대방을 먼저 의식하게 됩니다. 먼저 큰소리치지 말고, 먼저 넘겨짚지 말고, ...

일명 돌아온 탕자네 설날은 이렇게 자기가 식구들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하는 이들로 인해 썰렁함이 집안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리하지 맙시다. 새롭게 맞이하는 가족들입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모두가 새롭게 새로운 기대와 축복의 마음으로 서투른 마음 자세로 만납시다. 조금 더 신중하게, 조금 더 친절하게, 조금 더 낮아져서 식구들을 바라봅시다. 진정한 소통이 있을 것입니다.

부디 함께 하는 시간과 행동들을 통해 이번 설 명절에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축복하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