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녀를 키우면서 사람이 가진 욕구의 성향을 알게 됐다. 남자아이는 기어다닐 힘만 있어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바닥보다 높은 곳만 있으면 거기가 침대든지 밥상이든지 어디나 올라가려고 한다. 반면 여자아이는 높은 곳보다 손으로 쥐는 것을 더 좋아한다. 장난감이나 숟가락이나 한번 쥐기만 하면 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남자는 지배욕이 강하고 여자는 소유욕이 강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배욕이나 소유욕이나 외형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고 봐야 한다.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성직이나 관직이나 높은 곳을 좋아하고, 많이 소유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높은 데가 좋아 보이고 많은 것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살아가는(생활) 데는 낮은 곳이 편안하고 소유도 적당한 것이 좋다.

 

속리산의 정상 문장대는 권력의 속성을 깨우쳐 주는 곳이다. 올라가는 데 3시간, 내려오는 데도 3시간 걸린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올라가지만, 가서 보면 바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15분 이상은 머물 수가 없다. 경사가 급하고 바위가 많아 내려오는 일도 수월하지 않다. 그래도 스스로의 의지로 내려와야지 타의로 떠밀려 내려오면 다치든지 죽든지 큰 해를 입는다고 하니 권력의 실상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정말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신앙인들도 예외 없이 높아지고 싶어 이전투구를 하고, 또 많이 가지려고 아귀다툼을 하듯이 싸운다. 그러나 정상에 가서 보면 바람 소리뿐 사람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고, 애써 모은 돈도 거추장스럽거나 비정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그러니 낮은 곳에 사는 이가 좋아 보이고 덜 가진 서민들이 오히려 부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권력의 정상도 잠시 있을 곳이지 오래 머물 곳은 못 된다. 시기하는 이들도 많고, 책임도 많고, 바람도 많고, 비판도 많다.

 

나도 40대 초에 9대 국회의원이 되어 10대까지 하고 객석(야인)으로 내려왔는데, 단하의 관객석이 그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정말 높은 곳은 불안하고 고독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케네디는 대통령 자리를 ‘사자 등에 올라탄 느낌’이라 했나 보다. 겉만 좋아 보일뿐 마음은 편치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명감이 있고, 권력의지가 있는 자는 부담스러워도 윗자리에 앉아야 하고, 하늘이 준 준엄한 사명을 충성스럽게 수행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객석에 앉아있는 국민은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권력의 자리를 이용해 자기 배나 채우고 불륜을 일삼고 겉멋이나 부리고 교만한 짓을 하는 자가 있으면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심판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객석에 있는 관객의 수준이 높아야 정치도 경제도 예술도 발전한다. 서민의식을 갖고 사는 낮은 자리가 객석이다. 낮은 자리에 있으면 떨어질 염려도 없고, 밀릴 이유도 없고 미워하는 이도 없다. 예수님도 가장 낮은 말구유로 오셨다. 모두가 이웃이고 친구이니 고독할 이유도 없다. 이해타산이 얽혀 있지 않으니 어느 편에 서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무대 위를 공정하게 보고 또 자세히 보고, 꼭 해야 할 말은 해주고 침묵해야 할 때는 입을 다물어 주고 잘하면 칭찬도 해주고 협조도 해주고, 그렇게 살아가면 정치의 매듭도 풀리고 경제의 물꼬도 트이고 침침했던 사회도 밝아질 것으로 나는 확실히 믿는다.

 

/새문안교회 은퇴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