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당이 텅 비었습니다.
예배 시간인데도 텅 비었습니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냥 텅 빈 공간이기에
차마 메아리가 생길까봐 숨소리도 못 내겠습니다.
 
주보의 지면도 텅 비었습니다.
매주 예배와 소식들로 가득했는데
주보는 이제 흰 면이 더 많아졌습니다.
오타 났다고 종알거리던 때가 그리울 정도로
주보는 백지 ....
이제는 뭘 그려 넣어도 괜찮을 화판.
 
제 마음도 텅 비기 시작했습니다.
계속되는 묵상과 설교 준비들로
정신없이 돌아가던 기계가
갑자기 뚝 멈춰선 것 같이
제 마음은 고장 난 공장 같이
먼지만 풀풀 날리는 적막함 ...
 
그래요, 주님, 텅 비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텅 빔에 이상하고도 이상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은 불안함 ...
그런데 이게 반복되다 보니
그런 배짱이 생깁니다.
텅 비었으니 이제 채워주시겠구나...
 
주님, 채워주소서.
새로운 은혜로, 새로운 영성으로, 새로운 감성으로 ...
이 기회에 아예 새롭게 새롭게
전에 보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한 신령함,
그리고 신선함으로 채워주소서.
텅 빈 예배당에서 가득 채워질 것을 그려봅니다.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