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3-15) 
 
1.
나는 장가를 27에 갔습니다. 집사람은 25살! 11평 아파트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딸을 낳고, 아들을 낳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몰라 쩔쩔 맸습니다. 요즘엔 인터넷 선생님이 계셔서 인터넷에 다 물어보고 키운다고 하는데, 우리 때는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한 밤 중에도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간 것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한번은 아이가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데, 건조하게 해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방안에서 물을 끓여 뜨거운 증기로 뽀얗게 해 주었는데 어머니가 와 보시더니 혀를 쯧쯧 차십니다. 열나는 아이를 열탕에 집어넣으면 어떡하느냐고 야단을 치시며 그러시더라구요. ‘세상에... 아이가 아이를 키우네.’
 
그랬습니다. 나는 아이 아빠이지만 아이였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아이가 울면 어쩔 줄을 몰라 했고,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더욱 당황하였습니다. 정말 아이가 아이를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하고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2.
요셉과 마리아, 나이가 얼마라고 생각하는가요?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보니까 예수님 당시에 결혼을 하는 이른바 정혼(定婚) 나이가 남자는 13세, 여자는 12세였습니다.
 
이 때 정혼을 하고, 1년 뒤에 정식 부부가 되는 결혼식을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식 결혼하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였기에 정혼을 한 사이이니 정상적이라면 요셉의 나이 13세, 마리아의 나이 12세, 조금 더 쳐 주어도 요셉 15세, 마리아 14세 정도입니다.
 
놀랍죠? 그러나 우리나라의 풍습을 보면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닙니다. 춘향이와 이몽령이 결혼한 게 몇 살인지 아십니까? 각 16세이고, 조선시대 결혼할 수 있는 법적 연령이 남자가 15세, 여자가 14세였습니다.
 
마리아, 우리는 성모라고 하기에 감히 상상도 못하지만, 실은 14,5,6세 정도의 아이에 불과합니다. 요셉, 말이 없지만 그 역시 15,6,7세에 불과합니다. 내가 결혼할 때의 나이보다 무려 10년이나 더 어린 사람들입니다.
 
이 어린 둘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만삭의 몸을 이끌고 온 것입니다. 그리곤 그 여행길이 너무 힘들었는지, 나귀 타고 흔들리며 온 것이 원인이었는지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렴 이 때 해산할 것을 미리 알고 그 만삭의 산모를 데리고 먼 길을 나섰겠습니까. 아직은 괜찮겠지 하고 먼 길을 떠났을 것이고, 불편하지만 조심조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그 3백리 길을 가는데, 결국은 해산의 타이밍을 당기게 되어 낯선 동네 베들레헴에서 해산하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어린 젊은이 둘, 정말 아이 같은 15세 전후의 젊은 부부가, 세상 물정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젊은 부부, 아니 어린 부부가 아기가 나오려고 할 때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발만 동동 구르며 베들레헴 길을 헤맸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래 그들은 따뜻한 방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마구간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추운 마구간에서 그 어린 부부는 해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베들레헴이 사람 사는 동네였으니, 그 어린 부부가 마구간에서 해산한다고 어쩔 줄을 몰라 할 때 몇 어른들이, 동네 부인네들이 찾아와 도와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야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부부가 어떻게 해산을 했겠습니까?
 
3.
그렇게 해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부부는 아기를 낳고는 꼼짝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게 좀 의아했습니다. 동방박사는 좀 지나서, 적어도 서너 달은 지나서 베들레헴에 나타났을 거라고 하는데, 왜 그 때까지 이 어린 부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아, 애를 낳았으면 빨리 호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일이지 ...
 
겁이 났을 것입니다. 갓 난 아기를 안고 어떻게 다시 그 먼 3백리 길을 갈 수 있단 말인가 했을 것입니다. 애가 조금 큰 다음에 가야지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식으로 말하면 그래도 백일은 지나고 움직여야지 했을 것입니다. 아기들은 백일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요즘엔 백일잔치를 잘 안 하는데, 예전에는 백일잔치 크게 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왜 백일잔치를 하는 걸까요?
 
한 어른 장로님이 내게 귀띔을 해 주시더라구요. ‘목사님, 예전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았습니다. 태어나서 얼마 못 가 세상 떠나는 아기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백일이 지나면 아기들은 그 뒤로 부터 쑥쑥 잘 자랐습니다. 그래서 백일이 되면, 넌 이제 살겠다 싶어 잔치를 벌여주는 겁니다.’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아기들은 백일이 지나면 낮밤을 가리고 변하기 시작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 어린 아기, 갓난아기를 데리고 어떻게 먼 길을 가겠는가 싶어 백일은 지나고 가야지 하는 심정으로 그냥 베들레헴에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동방의 박사들의 예방을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왜 예물을, 그것도 비싼 예물, 황금, 유향, 몰약을 주고 가는 걸까요? 받을 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간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4.
헤롯이 다시 등장합니다. 헤롯왕은 유대인의 왕으로 아이가 태어났다는 동방 박사들의 말을 듣고 동방박사들을 정중하게 보내며,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주어 자기도 가서 경배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2:7-8)
 
별이 나타난 때, 즉 그 아기가 태어난 때가 언제인지 자세히 물었답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그 아기에게 경배하고 싶다고 소재지를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천사들의 지시로 그냥 자기 조국으로 돌아갔고, 헤롯은 마침내 자기가 속은 줄 알고 광기(狂氣)를 발합니다.
 
동방박사들의 말을 들었던 그 때를 중심으로, 그 지역의 2살 아래 아기들을 다 죽이라고 명합니다! 사자나 곰 같은 맹수들이 그러지 않습니까? 남의 새끼들은 다 물어죽이지 않습니까? 왜? 미래의 라이벌이 될지 모른다 하여 애초에 새끼일 때 다 죽입니다. 헤롯이 그러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잠재적인 미래의 라이벌인 아기를 제거하기 위해 아기들을 다 죽입니다. 광기입니다!
 
이 헤롯의 광기가 시작되기 직전, 요셉에게 천사가 알려줍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에게 급히 애굽으로 피하라고 일러줍니다. 그러자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꿈에서 깨자마자 요셉과 마리아는 짐을 싸서 애굽으로 도망갑니다. 그리곤 애굽에서 헤롯이 죽기까지 머무릅니다.
 
5.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이 부분을 그냥 읽곤 했는데, 이번엔 대림절부터 성탄 본문 설교를 쭈욱 하다 보니 그 상황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기 때문에 고향으로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3백리 길을 가다가 아기가 잘못될 까봐 무서워서 베들레헴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속히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고 있었습니다. 아기가 크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만 더 크면 돌아가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3백리 길이 뭔가요? 그 몇 배의 먼 애굽으로, 그것도 외국으로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이 어린 부부가 느끼는 두려움, 공포감은 얼마나 컸을까요? 지금도 외국에 혼자 가게 되면 겁나는데, 이 어린 부부, 그것도 아기를 데리고 그 먼 외국으로 도망을 갑니다. 행여나 군대가 쫓아올까봐 두려워하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애굽으로 애굽으로 도망을 갑니다.
 
이들이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헤롯이 죽기까지 애굽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어린 부부는 무슨 돈으로 애굽에서, 외국에서 먹고 살았을까요?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재물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무슨 돈으로 애굽에서 버텼을까요? 해산한지 8일 만에 정결예식을 하러 성전에 올라갔을 때, 가난한 이들이 드리는 비둘기 두 마리로 제물을 드릴 정도로 가난한 이들이었는데, 그들은 무슨 돈이 있다고 애굽에서, 외국에서 버틸 수 있었을까요?
 
큰 재물이 있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주고 간 것입니다. 어릴 때 성탄 연극을 할 때 동방박사 역할을 한 적이 있는데, 어린 나이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맡은 역할은 첫 번 동방박사로 아기 예수님께 무릎 꿇으며 ‘나는 아기 예수님께 황금을 드립니다.’하는 역이었는데, 그 순간, ‘예수님은 이 황금으로 뭘 하셨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하신 게 아니라 예수님 부모는 황금으로 뭘 했을까, 팔자 고쳤을까 싶었습니다. 뭘 했을까요?
 
헤롯 왕이 죽을 때까지 그를 피해 애굽에서 사는 데 쓰였을 것입니다. 그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챙길 것은 다 챙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없다없다 하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여러분을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6.
그런데 말이죠, 요셉과 마리아, 이 어린 부부, 하나님의 뜻을 이해했을까요? 자기들에게 닥쳐오는 그 두려운 상황을 이해했을까요? 나 같으면 한 없이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예수,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라고요?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요?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고요? 이게 무슨 평화입니까? 이게 무슨 영광입니까?
 
우리는 살기 위해 야반도주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째서 이렇게 가만 계십니까? 왜 우리를 지키시지도 않고 맨날 도망만 다니게 하십니까?
 
우리를 보세요, 우린 이제 겨우 십대 중반입니다. 세상에 대해 우리가 뭘 안다고 우리를 이렇게 뺑뺑이 돌리세요?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 애굽으로 가서 숨어서 살라니요, 왜 그러십니까, 하나님? 내가 무슨 잘못을 그리 크게 했다고 .....’
 
난 참 많이 많이 하나님께 원망하고 따졌을 것 같습니다. 그날 밤, 숨을 죽이며 아기를 데리고 겁먹은 얼굴로 도망가는 그 어린 부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원망이 안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겁나고 무서운 야반도주의 길, 멀고먼 외국으로 피신하는 길을 나섰고, 거기서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요?
 
뚜렷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들에겐 무엇보다,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남편, 갓 태어난 사랑하는 아기! 지켜줘야 하는 아내, 지켜줘야 하는 남편, 지켜줘야 하는 아기! 여러분, 사랑하는 이와 같이 있으면 강해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같이 있으면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밥을 먹으며 마음을 나누고, 격려를 하면 세상은 만만해 집니다. 사랑하며 삽시다.
 
그 어린 부부, 십대의 요셉과 마리아는 서로 사랑하며 의지하고, 세상을 이겨갑니다. 이 어려움의 끝, 그건 솔직히 모릅니다. 어떤 결론이 날지, 어떤 길로 이어질지 난 모릅니다. 그저 바람만, 나의 소망만 있을 뿐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지금 나는 이 어렵고 힘들고, 두려운 것들을 함께 이야기 하고, 그것들을 털어버리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만 있으면 결론이 어떻게 나든, 어떤 길로 가든 두렵지 않습니다. 혼자 있기에 두렵습니다. 사랑하며 삽시다.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가족들을 사랑합시다. 친구들을 사랑합시다. 교우들을 사랑합시다. 사랑하면 무섭지 않습니다. 교우들이 교회 오지 못하여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다가도 카톡으로든 문자로든 마음을 전해오는 교우들로 인해 다시 힘을 얻곤 합니다. 여전한 사랑을 서로 확인할 수 있다면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벅차고 두려워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그러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7.
그런데 말이죠, 왜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독생자이신데 어째서 태어나자마자 그 고생을 하게 하시는가요?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그러셨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올 해 우리는 여기까지 오는 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코로나 시작할 때, 사실 우습게보았습니다. 그 때 이런 카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한 바이러스 겁먹지 마세요. 곧 끝날 거예요, 그거 중국제예요.’ 정말이지 말 많고 문제 많은 중국에서 시작되었기에 며칠 그러다가 말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신천지로 확 퍼지더니 결국은 모든 관계가 단절되기 시작했습니다. 가게 문들도, 심지어 나라의 문들도 다 닫히더니 결국은 교회 문들도 닫히게 되었습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던 교회들도, 그 독재 시대에도, 그 무서운 억압의 시대에도 예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드리던 교회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비대면 영상 예배.... 아, 그 때 그런 인사문구가 있었습니다. ‘인사는 목례로 악수는 다음 주일에!’ 그렇게 잡고 싶었던 교우들의 손을 잡지도 못하고 쳐다만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다음 주일부터는 풀릴 줄 알았습니다. ....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인류의 어느 위대한 지도자도, 그 어떤 잘난 나라도 이루지 못한 것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의 모든 인류, 모든 나라가 동일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돈 많고 없고가 상관이 없었습니다. 강대국, 약소국, 고위직, 하위직 관계가 없었습니다. 최고의 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 대통령도, 영국 총리도, 프랑스 대통령도, 유명한 연예인도, 건강한 스포츠 맨도, ... 누구든 자칫하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격리가 되고,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심지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가 다 문을 닫고, 모든 사람들이 다 거리를 두고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를 거의 동일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이처럼 인류를 하나로 만든, 평등하게 만든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뭔가요? 2020! 어감(語感)이 좋아 잘 될 줄 알았는데,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올해는 정말이지 형통할 줄 알았는데, 기대를 흠뻑 안고 시작했는데, 두 달 정도 지나고 나서부터 우리는 모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졸지에 애굽으로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꽁꽁 닫힌 곳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렇게 낯선 곳에 버려져서는 이제 어떻게 살지, 이제 어떻게 되지, 언제나 풀릴까, 언제나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 이제 연말, 2020년의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우린 정말 어떻게 될까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아는 것 하나 있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두려움, 불편함과 어려움들이 나름대로 의미가 다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세워 가시는데 필요한 것들이라고.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염려와 걱정, 좌절과 공포, ... 모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도구라고 믿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 하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 그 어린 부부를,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독생자 아기를 야반도주하여 애굽으로 도망가 겨우 목숨 붙여 살게 했듯이 나는 굳게 믿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들, 코로나가 가져다 준 이것들도 결국은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낼 것입니다.
 
8.
애굽으로 가는 심정, 착잡합니다. 두렵습니다,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함께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깔려있습니다. 그러기에 현실이 걱정스러워도 감당할 만합니다. 갈수록 보고픈 성도들, 교우들에 대한 사랑이 커져만 갑니다. 따뜻한 한 마디 한 마디 그리움을 표현하며 함께 잘 이겨나가자는 사랑이 버티는 힘을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막연한 미래를 내다보며 가는 불안한 걸음, 거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가 깔려있습니다. 지금은 내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나 그러나 어떻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선한 열매를 맺으실 것이고, 그것들은 다 나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그 믿음과 기대감으로 불안한 앞길을 나아가고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 애굽으로 내려가는 심정, 우리의 심정이 바로 그러합니다. 백신도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나라에서 살게 됐지만 나는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 그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치유하는 광선이 충만한 그런 은혜 안에, 생명싸개 안에서 살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더욱 더 주님을 신뢰하며 함께 어려움들을 이겨나갑시다. 비록 애굽으로 도망가는 신세이지만, 곧 주님께서 가나안으로, 축복의 대지로 우리를 다시 끌어올리실 것을 믿습니다. 2020,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1, 새 해에는 새 은혜를 함께 흠뻑 누릴 수 있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